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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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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

휴식,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시간

by 박태근 / 2017.08.17

 

 

‘휴식’이라는 단어가 입말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고 글말에만 남은 까닭은 궁금하지도 않다. 자의든 타의든 휴가는 떠나기 마련이지만 휴가에서도 휴식을 찾기란 쉽지 않은 형편이니, ‘휴식’이라는 말의 생경함은 어쩌면 현대인의 일상감각이라 하겠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모처럼 맞는 휴가철이니 평소보다 가벼운 몸과 마음을 채우라며 여기저기서 추천도서 목록이 쏟아진다. 물론 꼭 휴가철에 읽으라는 말은 아닐 테고, 휴식이 아니라도 휴가를 떠나는 것 처럼 읽든 말든 추천은 하고 싶다는 마음일 테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겠다. 이 글 또한 마찬가지다. 제목만 들어도 기분이 한결 나아질 휴식 같은 책을, 그 책에서 딱 한 꼭지만 골라서 소개할 참이니 ‘바쁜 휴가’ 중이라도 잠시 눈과 귀를 열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이, 사막의 날


피곤한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갈 용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책 표지 정희재 갤리온
▲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정희재 l 갤리온

 

휴식에도 계획이 필요하다? 무엇을 하며 쉴지 생각하며 벌써 피곤해지는 상황을 떠올리니 처량하기 그지없다. 정희재의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는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수십 가지 방법을 전하는데, 그 중에서 ‘하루쯤 마음 가는 대로 해 보기’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눈을 뜨니 괜히 휴가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 회사에 적당히 핑계를 대고는 종일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어제 휴가를 왜 썼지’ 생각하며 다시 출근길에 나서는 꿈을 꾸다 출근길에 나서는 직장인이라면 꼭 시도해보길 바라는 이 하루를, 독일에서는 ‘사막의 날’이라 부른단다.

굳이 방법을 설명하자면 무작정 집을 나와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기차역이 보이면 기차를, 버스가 보이면 버스에 올라서 내리고 싶은 곳에 내려 또 그렇게 걸리는 대로 하루를 지내면 된다. 그런데 왜 사막의 날이냐고? 사막에서는 걷거나 쉬는 일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데다, 방향을 제대로 알기 어려우니 방랑에 적합한 장소라 여겨 그렇게 이름 붙이지 않았을까 싶다. 일어나는 순간 이미 잠들 때까지 일과가 가득 찬 하루라면, 그리고 그런 하루의 연속으로 별다른 휴식을 즐길 여유도 없다면, 딱 하루라도 ‘사막의 날’에 빠져보길 권한다. 아직도 이유 없는 하루 휴가를 망설이는 이들에게는 이 책의 세계관을 한 마디로 정리해 전해드리며 용기를 건네고 싶다. “괜찮아, 대세에 지장 없어.”


빈둥거리지 않는 자들의 이름, 바보


게이른 자를 위한 변명 책 표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민음사
▲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l 민음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이름보다는 작품이 유명한 작가인데 대표작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보물섬』이다. 물론 이후 그의 대표작은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이 될 게 분명하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느냐고? 이 책을 시작하는 첫 단락을 읽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모두가 돈벌이 되는 직업에 종사해야 하고 이에 불참할 경우에는 책임 모독죄를 묻는 법령에 위촉되어 거의 열광적으로 노고를 기울여야 하는 바로 요즘 세태에, 충분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주위를 돌아보며 즐기자고 주장하는 다른 편의 외침은 허세와 허풍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리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게으름이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층의 독단적 규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일을 하는 것이다.”

19세기 말에 벌어진 상황이 오늘까지 변함없이 이어지니 역시 너무 게을렀던 게 아닌가 싶어 잠시 반성도 하게 되지만,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선견지명이다. 물론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도 있을 텐데, 정답은 지금처럼 게으르게 지내면 된다 라는 것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추구하니 그렇지 않은 다른 이를 얕잡아 보는 독단론자에게 “오히려 당신이야말로 습관적인 일을 할 때를 제외하면 살아 있음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 며 게으르지 않은 삶의 비루함을 전한다. 게다가 “책을 아주 열심히 읽는다면 생각할 시간은 거의 없지 않느냐”며 썩소를 함께 날리는 멋짐이란, 바쁜 일이 폭주하는 와중에도 될 일은 된다며 빈둥거려본 이들만이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아닐까 싶다.


드디어 떠났다, 나에게 전념하기 위해


휴가지에서 읽은 철학책 표지 장 루이 시아니 쌤앤파커스
▲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 장 루이 시아니 l 쌤앤파커스

 

우여곡절 끝에 휴식을 찾아 휴가를 떠났다. 빈 시간을 채울 무언가를 찾으려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그럴 여유가 있다면 다소 어리둥절한 제목인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 53쪽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를 펼쳐보자. 프랑스의 철학자 장 루이 시아니는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기로 택한 우리에게 한가로움을 누리고 그 혜택을 맛볼 수 있을 시간이라고는 일 년 중 오직 이 때, 휴가철뿐”이라 말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너무 자명한 이야기가 오히려 너무 어려워져 새로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여름, 햇살, 해변, 바다가 있는 이곳에서 한가로움의 철학을 시도해보자고 제안한다. (물론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응원한다.)

그는 오늘날 ‘존재한다’는 말이 ‘활동한다’ ‘과잉으로 활동한다’는 의미로 쓰인다고 지적하며, 과잉활동을 바탕으로 성공한 삶을 측정하다 보니 결국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나는 흥분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뀌었다고 비꼰다. 여기에서 드디어 ‘나’가 등장한다. 휴식, 여유, 한가로움은 모든 걸 잊기 위함이 아니라 “있는 힘껏 나 자신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붓기 위함”이라 말하며, “나 자신에게 전념한다는 것은 권태와 슬픔, 분함, 탐욕 등의 신기루를 거부하는 일이며 건강한 나르시시즘”이라 덧붙인다.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휴가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다니. 비로소 마음 편히 휴식에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8월 휴식 사막의날 바보
필자 박태근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일명 ‘바갈라딘’으로 불린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 MD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목소리를 전하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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