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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협업

우리 몸은 크게 두 가지 신경계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이다. 생리학자들은

장근영

2017-08-01

삶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협업


뇌모양 사진

 

우리 몸은 크게 두 가지 신경계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이다. 생리학자들은 교감신경계의 기능을 “싸우거나 도망치는 것(Fight or Flight)” 이라고 말한다. 즉, 직면한 문제를 전력을 다해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교감신경계가 작동하면 맥박이 빨라지며 혈압이 높아지고, 혈액이 피부와 소화기관에서 뇌와 근육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혈액순환이 활성화되면서 중추신경계의 기능도 강화된다. 주의력이 높아지고 시각이나 청각 등의 감각도 평소보다 예민해진다. 생명을 위협하는 천적이 나타났을 때, 그 앞에서 도망치거나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반면에 부교감신경계는 에너지 충전을 담당한다. 이 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있을 때는 모든 것이 교감신경계 때와는 정반대로 작용한다. 맥박수와 혈압은 낮아지고, 혈액은 소화기관과 피부로 이동하며, 주의력은 분산되고 신체 감각도 상대적으로 둔해진다. 덕분에 몸은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먹은 것을 천천히 소화시키면서 몸에 영양분을 비축하여 앞으로 벌어질 다른 큰 일에 대비할 수 있게 된다. 피부의 혈액순환이 좋아진 덕분에 외부의 감염물질을 막아내는 1차 방역기관으로서 피부의 기능도 활성화되어 전반적인 면역력이 좋아진다. 결과적으로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있을 때 몸은 건강해지고, 심리적으로 삶에 대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을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틀로 보면 조금 달리 보이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는 건 대표적인 부교감신경계의 시간이다. 맛을 충분히 음미하고, 소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매운 음식은 미각과 소화기관에 강한 자극을 주어 교감신경계를 소환한다. 소화를 잘 하려면 맥박이 느려져야 하지만, 매운 음식을 먹으면 맥박이 빨라진다. 그렇다면 매운 음식을 즐기는 한국인의 식사시간은 과연 제대로 된 휴식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침대위의 베개들

 

이 두 신경계의 또 다른 특징은 각각 서로를 배척한다는 점과 무한정 계속 흥분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어떤 쪽이든 최대한도로 흥분한 이후에는 제풀에 지쳐서 사그라든다. 그래서 밤중에 운동을 하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부교감신경계가 관장하는 수면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지만 아예 지칠 때까지 운동을 하면 오히려 더 쉽게 잠잘 수 있다. 매운 음식을 먹는 이유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매운 음식으로 교감신경계의 흥분을 최대한도로 높인 다음에 잠시 몸을 편하게 해줌으로써 일과 휴식의 경계선을 더욱 뚜렷하게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신경계의 관점에서 보면 일과 휴식은 각각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의 활동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 모두 우리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처럼, 일과 휴식 역시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이 없이는 휴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휴식이 없는 일은 지속될 수 없다. 특별히 하는 일 없는 사람들은 그 할 일 없는 일상을 휴식으로 느끼지 못한다. 어떤 이는 지루함으로, 어떤 이는 불안이나 좌절로 느낄 뿐이다. 진정한 휴식은 일을 필요로 한다. 휴가를 가는 과정도 따지고 보면 일과 휴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휴가지를 선택하고, 여정을 예약하고, 휴가지까지 오고가는 과정 자체는 그 중 하나라도 잘못되거나 어긋나면 휴가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에서 분명히 긴장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다. 그 일들 사이에 넋 놓고 느긋하게 보내는 시간들이 끼어 있기 때문에 휴식이 되는 것이다.

 

책상위에서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

 

반대로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일제 강점기 노랫말처럼 직원들을 혹사시키는 회사는 직원들의 근무 능률을 떨어트린다. 휴식이 없으면 일의 집중력이나 효율이 낮아질 수 밖에 없고, 결국 일을 하는 것도 휴식을 취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OECD 가입국 중에서 가장 길지만 노동 효율성은 가장 낮은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휴식의 결여는 더 심각한 비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운전하고 있는 모습

 

근래 대형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참사가 연이어 벌어진 일이 있었다. 그 중 한 사건의 버스기사 운행일지를 통해 해당 기사가 사고 직전까지 하루 18시간씩 이틀을 연이어 근무했음이 드러났다. 물론 중간에 하루의 휴식이 주어지긴 했다. 하지만 잠은 저축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들 아시리라. 또한 사람이 하루 종일 잠만 잘 수도 없지 않은가. IT 업계에서는 언젠가부터 제품개발 과정의 막바지에 개발자들에게 휴식없는 야근을 강요하는 소위 ‘크런치 모드’라는 관행이 일상화되면서 과로사하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얻는 IT 인력들이 속출하고 있다. 휴식의 결여가 이와 같은 비극을 불러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회사들이 여전히 같은 관행을 따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그런 사건들로 인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회사가 얻는 이득보다 적기 때문이며, 문화적으로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휴식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은 휴식을 위해 존재하며, 휴식은 삶이 지속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이 당연한 사실이 사회적으로도 모두에게 당연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Stress / Syndrome / Psychology / Emotion / Mentality /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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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장근영
장근영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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