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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토리아 : 불, 요리, 과거와 미래

“인류의 시대는 00 이후로 나뉜다”라는 문장을 자주 접하게 된다.

박찬일

2017-07-25

불, 요리, 과거와 미래


불

 

“인류의 시대는 00 이후로 나뉜다”라는 문장을 자주 접하게 된다. 00에 대입할 낱말은 아주 많다. 아인슈타인(원자탄 제조), 에디슨(전기), 메이플라워호(미국의 탄생)… 당신도 하나 넣어보라. 우리 인생에 대입해도 된다. 결혼, 출산, 친구. 나는 ‘불’을 넣고 싶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적이었을 호모 에렉투스가 아마도 ‘적극적’으로 사용했을 불 말이다. 물론 호모 사피엔스도 불의 덕을 엄청나게 보았다. 불은 인류의 혁신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다. 스스로 피우고 끄며 관리할 수 있는 불은 주거 생활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게 했다. 더 추운 지방에서의 거주가 가능해졌고 그 결과 이동 거리가 늘어났다. 사냥터가 넓어지고, 짐승과 같은 적을 방어하기 유리해졌다. 주거공간의 온도가 높아져 쾌적해지면서 인구도 증가했을 것이다. 따뜻한 공간은 가정적이고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신생아의 생존율을 높인다. 아마도 의복이 덜 필요할 수 있었으니, 노동력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류가 미각을 느끼고, 음식을 효과적으로 소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불은 소금과 더불어 맛을 정점으로 끌어내는 최고의 선택이다. 이 두 가지가 우리에게 맛이라는 쾌락을 제공했다. 생쌀과 누룽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생쌀을 씹어서는 좋은 맛을 얻을 수 없다. 당은 있으나 캐러멜라이즈 효과와 마이야르 반응을 얻어내기 어렵다. 열 또는 갈변이 일어날 만큼의 조건이 있어야 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불에 지지고(캐러멜화), 당과 단백질의 아미노산이 반응을 일으키면(마이야르 반응) 우리는 누룽지를 생쌀보다 맛있다고 느낀다. 수도자들이 더러 생쌀을 씹는 건 미각의 쾌락을 통제하려는 의도이다. 다시 말해 일부러 맛없는 음식을 취함으로써 득도에 방해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을 억제하는 행위다. 쌀은 물론이고, 고기 같은 단백질과 지방의 결합체는 불에 더 민감하다. 생고기와 구운 고기는 전혀 다른 맛을 낸다. 보통 타르타르(달단족, 또는 타르타르족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생고기 요리의 일반적 이름)는 구웠을 때 질겨지는 부위를 부드럽게 먹기 위해 선택하는 조리법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소스를 동반한다. 부드럽게 씹히기는 하되, 맛 그 자체는 대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르파치오’라고 부르는 육회 요리도 마찬가지다. 카르파치오가 최초로 등장한 베네치아의 식당 ‘해리스 바’의 조리법을 보면, 쇠고기 안심에 열 가지 가까운 양념이 들어간다. 우스터소스, 마요네즈, 올리브오일, 아미노산이 듬뿍 든 파르메산 치즈, 소금, 후추… 쇠고기 안심이 날로 먹었을 때는 그다지 맛있는 재료가 아니라는(혀에 전해지는 쾌락이 약하다는) 증거다. 그래서 인류의 99퍼센트는 쇠고기 안심을 구워 먹는다. 캐러멜라이즈와 마이야르 반응을 기대하면서.

 

1) 돌솥밥


2) 카르파치오

▲1) 돌솥밥 / 2) 카르파치오


최초의 요리장은 아마도 불을 다루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날고기를 먹던 시절에는, 우리가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여러 장면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인류에게도 벌어졌을 것이다. 사자나 하이에나, 독수리가 육식을 하는 장면 말이다. 그들은 내장과 고기를 씹어서 맛을 느낀다. 그러나 진짜 ‘맛’은 불고기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불을 자유롭게 보존하고 이용하기 전에는 인류도 그랬다. 요리장은 불의 위력과 효과를 잘 아는 사람이었을 테고, 아마도 제사장을 겸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의 요리장은 일일이 요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요리를 지시하고 감독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은데 선사시대의 요리장도 비슷한 성격이었을 것이다. 불을 통제하고, 요리법을 감수하며, 음식을 분배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직책이었을 것이고, 제사장을 겸하는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는 현대의 한국에서 할아버지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수 구매 리스트를 작성하고, 요리를 진행시키며, 맛을 보아서 오케이 사인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실질적으로 집안을 통제하는 어머니(며느리)도 이때만큼은 아주 공손하고 소극적으로 변한다. 농담이지만, 제사장은 어떤 식으로는 현대에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제사가 끝나면 다시 어머니가 권력을 되찾는 집이 대부분이겠지만.

 

꼬치


그릇들

 

불은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냉장고와 같은 역할을 겸했다. 날로 먹어야 하는 재료들, 특히 사냥한 고기는 한겨울의 추운 날씨가 아니라면 오래 보관할 수 없었다. 인간의 위장은 음식을 한번에 먹고, 그 영양을 체내에 축적하는 버릇이 있다. 우리가 비만과 중성지방 과다에 시달리는 건 그 시절부터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의 결과다. 그러나 매머드를 잡았다면(대개는 죽은 걸 주웠을 가능성이 크지만) 한 인류 집단이 그것을 다 먹어치우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테다. 얇게 포를 떠서 말리는 것도 하나의 보관 방법이었으나 고기가 부패하기 시작했다면 달리 방도가 없었다. 먹고 배탈이 나서 죽거나 하는 경험을 통해 그 위험성을 인지한 인류는 그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불을 다루면서 어느 정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일정한 정도로 부패한 고기는 잘 구워먹으면 소화시킬 수 있었고, 영양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식중독을 일으킬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냉장고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우리는 찬장에서 부패하기 시작한 국이나 반찬, 밥 등을 다시 끓여서 먹는 경우가 흔했다. 이것 역시 세균이 열처리를 하면 죽는다는 과학의 세례를 받기 전부터 오래도록 인류가 체득해온 방법이었다. 한마디로 불은 소독효과가 뛰어났다. 1970년대까지 여전히 의사들도 상황에 따라 주사기를 불에 쐬어 소독하여 재사용하는 방법을 썼을 정도니까.
많은 학자들은 불이 인류의 현재를 가져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말한다. 월급이나 인터넷보다 더 큰 공헌이라고 말이다. 그들이 가리키는 불의 공헌은 인지 능력의 향상이다. 우리가 인수분해와 미적분을 하게 된 것도 불 덕분이라고 한다. 불로 익힌 음식물은 소화가 잘 되었고, 더 많은 영양분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냥 똥으로 배출될 영양분을 머리로 보냈다. 알다시피 인간의 머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몸을 쓰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또는 게임만) 하는 경우에도 금세 배가 고파지는 이치다. 더 많은 영양을 공급받은 두뇌는 더 커지고 똑똑해졌다. 그래서 원자탄과 인터넷, 나아가 사기(詐欺)와 협잡을 만들기에 이른다.

 

빵

 

불이 인간의 지능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건, 시간의 탄생과 관계 있다. 씹는 시간을 줄인 인간은 그렇게 얻은 시간을 ‘궁리’하는 데 썼다. 그런 궁리가 어떤 내용이었을 지는 우리가 상상해볼 여지가 많겠다. 불은 미각의 발달도 가져왔다. 사냥한 고기, 채집한 곡물류와 견과류, 과일 등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구운 아몬드는 생것보다 훨씬 더 맛있다. 고기는 물론이고, 지은 밥과 생쌀의 차이는 말할 필요도 없다.
토기의 발달을 촉진한 것도 불이었다. 토기를 만들어 음식재료나 물건을 보관하는 것은 초기의 사용법이었다. 점차 토기를 불에 올려도 깨지지 않고, 가는 금이 생기지 않게 제조하여 수분이 많은 음식물을 가공(대개는 곡물을 빻아서 물을 넣고 끓여 먹기)하는 데까지 발달하기 시작했다.

곡물가루에 물을 첨가하여 두었더니 스스로 부풀어 빵의 발견을 유도한 것도 결국은 불의 역할이다. 그것을 더욱 부풀리고 겉은 바삭하게 구워 맛있는 음식물로 만든 것도 일정 크기로 짜여진 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빵이 서양 문명의 주춧돌이 된 것은 이처럼 불의 복잡 미묘한 영향력 아래 놓이면서부터다. 빵으로 인해 죽을 만들어 먹는 시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죽은 고정형이며 보수적이고 소극적이다. 빵은 변질되지 않고 ‘모바일’한 성격을 지닌다. 만들어서 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운반도 쉽다. 필요할 때는 베개로 써도 된다. 그다지 무겁지도 않은데 맛은 좋다. 전쟁과 원정을 촉발한다. 인류의 역사가 요동칠 수 있었던 것은 빵의 발견과 발전에 기댄 바가 클 것이다. 서양이 동양을 누르고 세계사의 주인공이 된 배경에도 빵의 역할이 상당했으리라고 보인다. 죽(밥)과 빵은 그렇게 동서 인류 사이의 거대한 골로 존재한다.

인류는 요리한다. 거기엔 불이 필수적이었다. 모던 요리도 결국은 불의 지배력 아래 놓여 있다. 수비드니 분자요리니 하는 것도 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생식은 세련된 도시생활이나 반대로 의도된 원시적인 내핍, 극단적으로는 극도의 종교적 수도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것은 반(反) 요리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불이 갖는 속성, 즉 태워 없애며 한정된 자원의 소비라는 불안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리의 미래는 아주 큰 혁명적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쾌락을 필요로 하는 한, 불로 하는 요리라는 속성이 변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당장 양념을 입혀 불에 구운 스테이크 맛을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와인잔, 음식, 숟가락 , 포크 일러스트

 

  •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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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의 발견
  • 맛의쾌락
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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