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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생각 : 아이와 일

이성민

2017-03-02

아이와 일

 

1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어른 없는 사회』에서 80년대 일본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회 변화를 이렇게 서술한다. “노동이 아니라 소비가 인간의 일차적 활동이 되었습니다.” 알다시피 한국이 일본보다 10년 늦게 온다는 통설이 있다. 이 통설을 적용해 보면 아마 이런 일이 한국 사회에서는 90년대에 발생했을 것이다. 소비가 인간의 일차적 활동이 되었다는 말은 본격적인 경제 활동을 하는 어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치다는 “소비자 마인드를 내면화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요즘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낮은 가격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아주 어릴 적부터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감각을 그대로 교육의 장으로 가져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들은 교육상품(그들은 학점과 자격, 졸업증서를 교육상품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을 최저 가격(즉, 최소의 학습 노력)으로 획득하는 것을 의무라고 믿게 됩니다.”

 

우치다 타츠루, 『어른 없는 사회』, 민들레

▲ 『어른 없는 사회』 우치다 타츠루, 민들레

 

교육이 상품이라면 학생은 그것을 구입하기 위해 무엇을 지불할까? 우치다는 교육상품을 구매할 때 아이가 ‘학습 노력’을 지불한다고 말한다. 학습노력이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돈인 셈이다. 그런데 원래 이 학습 노력은 돈이 아니라 일로 간주되었다. 영어에서 ‘work’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일’인 공부를 뜻한다. 또 아이들이 집안일을 도와주려고 하면 이렇게 말하는 부모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집안일은 신경 쓰지 마. 네가 할 일은 공부야.” 이처럼 공부 내지는 학습 노력은 예전에 아이들에게 돈이 아니라 일이었다. 공부가 돈의 위치에 있게 되면, 즉 시장 원리가 학교교육에 들어오면―즉 국가가 사적인 기업이 되듯, 학교가 학원이 되면―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치다는 이렇게 말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비용 대비 효과를 견주게 되면 교육은 ‘끝’입니다. 원리적으로 생각하면, 그 경쟁은 ‘학력 제로’로 졸업장을 손에 쥔 아이가 승리자로 칭송 받는 게임이니까요.” 소비나 시장의 관점에서 볼 때 학력 제로는 최저 비용을 의미한다. 학교의 관점에서 볼 때 학력 제로는 우치다의 말대로 교육의 끝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도 한 번 생각해 보자. 소비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일이라고 할 때, 공부가 원래 아이들의 일이라고 할 때, 이것은 다만 교육의 종언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일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2

 

이 마지막 질문은 참으로 이상한 질문처럼 들릴 수도 있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일(공부)이 사라졌다고? 아이들의 현실을 알고 하는 소린가? 오늘도 학교가 끝나면 다시 학원에 가서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분명 아이들의 현실이 안타까운 사람일 것이다. 그가 만약 부모라면 공부하느라 지친 자기 자식의 모습이 안타깝고 안쓰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힘든 모습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그 힘든 일의 중지에 대한 소망을 함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힘들게 학원을 다니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경우일 것이다. 아무리 안타까워도 부모는 여전히 아이를 학원에 보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들이 힘들게 학원을 다닌다는 사실이 역시 안쓰럽기 때문에 아마도 아이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세계에서 일이 사라졌다는 주장에 반발할 사람도 대다수의 집안에서 아이에게 일이 사라졌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집안일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가령 가끔은 그래도 아이가 집안일을 한다는 말은 별 의미가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청소나 정리 정돈 같은 집안일은 습관 형성에 이르지 못할 때 개인의 인격 성장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안일이 아이의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아이가 어쩌다 마지못해 집안일을 한다거나 어느 날 마음이 발동해서 집안일을 한다는 사실에 의해 침해되지는 않는다. 예전에 아이들은 집안에서 가령 동생을 돌봐야 했으며, 청소와 정리정돈을 해야 했으며, 자기 운동화나 실내화를 직접 빨아야 했고, 심부름을 해야 했다. 즉 집안에서 할 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아이들의 세계에서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경험은 사라지고 있다. 따라서 학교나 학원에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집안에서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일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세계에서 일이 사라진다는 말의 한 가지 의미는 혹시 아이들의 세계가 축소된다는 것 아닐까?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일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확보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청소를 하면 내가 깨끗하게 만들고 정돈한 방이나 집이나 마당이 보람과 더불어 있게 된다. 운동화를 빨면 내가 빤 운동화가 보람과 더불어 있게 된다. 그런 것들이 있는 세계는 분명 내가 직접 성취한 세계며, ‘나의 세계’라고 주장할 수 있는 세계다. 부모는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아이의 ‘나의 세계’는 아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나의 세계’를 가져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성인이 되어 ‘나의 세계’를 갖는 것이 가능할까?

 

 한 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아이와 돋보기로 나비도감을 보는 아이, 그리고 옆을 응시하는 아이

▲ © {studiobeerhorst}-bbmarie

 

3

 

하지만 집안에서 아이들의 일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것은 학원에서의 공부(일)이 늘어난 것이기에 아이들의 세계에서 일의 총량은 결코 줄어들지 않은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바로 이 지점에 우치다를 다시 데려오고 싶다. 아이의 주된 세계는 가정과 학교다. 그렇다고 했을 때 우치다는 바로 그 학교에서 어떻게 교육이 사라졌는지를 지적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다만 교육이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세계에서 일이 사라지는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의 세계는 학교만이 아니라 ‘학교 + 가정’이므로, 우치다의 주장은 아이의 세계에서 일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 전 가정에서도 아이의 일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우치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일은 아이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아이의 세계에서 일이 사라진다는 말은 바로 그 세계 자체도 사라진다는 말이다. 오늘날 일이 없는 존재인 아이들은 세계 없는 존재다. 예전과는 달리 오늘날 집안일은 온전히 부모의 몫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몫은 공부다. 예전에 아이들은 집안일도 하고 밖에 나가 놀기도 했지만 공부도 했다. 노는 것이 재미있으니 공부는 하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기 싫은 집안일이 있으니 공부가 편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로 공부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밖에 나가 놀지도 않고 집안에서 일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공부는 무엇일까? 미국의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비교 대상으로 사모아의 청소년을 연구했다. 미드는 사모아의 청소년들이 집안일을 많이 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가령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 아니라 아이들의 몫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학교를 운영하게 되면서 큰 변화가 찾아왔다. “해마다 몇 달씩 정부가 학교를 운영하게 되면서 이제 이 아이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집 밖에서 보내게 된다. 어머니가 집에 머물며 자식을 돌보아야 하고 어른들은 자질구레한 일상 일을 하고 심부름을 해야 하는 이러한 생활방식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사모아 토착 가구의 완전한 해체를 초래한다.” 알다시피 오늘날 여기 한국에서도 자질구레한 일상 일을 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다. 그리고 사모아의 아이들처럼 이곳의 아이들도 학교에 간다. 아마도 사모아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습노력’을 지불하는 게 아니라 공부(일)을 했을 것이다. 즉 토착 가구는 완전히 해체되었어도, 아이들은 여전히 ‘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아이들의 일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지금 해체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혹시 공동체 자체 아닐까? 마지막 희망은 가정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 말이 점점 더 거짓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는 마지막 희망이 학교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일본과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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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성민
이성민

철학자.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직을 접고 오랫동안 철학, 미학, 정신분석 등을 공부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세상, 어른들이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주된 관심사다. 저서로 『사랑과 연합』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슬라보예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를 비롯해 1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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