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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생각 : 인간 조건으로서의 우주

이성민

2017-02-02

인간 조건으로서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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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1958년 출간된 『인간의 조건』 프롤로그에서 “지구는 인간 조건의 바로 그 정수(精髓)다”라고 말한다. 바로 그 전 해인 57년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성공적으로 우주로 발사된 해였다. 한 미국 기자는 이를 “지구에 갇힌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걸음”이라고 표현했다. 아렌트는 이와 같은 비범한 표현 속에 내포된 “하늘 아래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의 어머니인 지구에 대한 치명적인 거부” 내지는 “인간 조건을 탈출하려는 소원”을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지구라는 인간 조건의 정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곳 지구에서 동료 인간들과 함께 진정 자유롭고 활동적인 삶을 실현할 수 있을지를 아름다운 글을 통해 제안했다.

그로부터 약 60년이 지난 지금 만약 아렌트가 살아 있다면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수도 있을 영화가 2015년 개봉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 알다시피 이 영화는 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이 동료 구조대가 올 때까지 화성에서 생존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단순한 공상과학 영화가 아니어서, 실제로 미 항공우주국 NASA는 화성으로 인간을 보낼 계획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실험이나 준비를 하고 있다. 화성과 흡사한 환경의 하와이 산기슭 돔에서 이루어진 1년에 걸친 화성생존실험은 이미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인류의 화성 거주가 실현되면, 인간 조건에 지구 말고도 화성이 포함될 것이다. 즉 인간 조건이 지구 밖으로 확장될 것이다. 우리는 지구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같은 말을 사용하듯, 확장된 인간 조건 하에서 ‘지구인’과 ‘화성인’ 같은 말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알다시피 <마션>이라는 영화 제목은 바로 ‘화성인’을 뜻한다.

물론 화성이 인간 조건에 포함되더라도 여전히 지구는 인간 조건의 바로 그 정수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렌트가 지구 위를 선회하는 인공위성과 인간이 거주하는 화성의 차이를 모를 수는 없는 일이다.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볼 때 그 지구에 거주하는 인류를 생략할 수 없겠듯이, 새롭게 열리는 우주 시대에 우리는 화성을 바라보면서 그곳에 있는 인류를 생략할 수 없을 것이다. 도킨스의 예상대로라면, 중력으로 인해 언젠가는 지구인보다 다리가 가늘고 길어질 화성인들 말이다.

 

영화 <마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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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이 동료 구조대가 올 때까지 화성에서 생존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영화 <마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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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간에게 우주는 상상력을 위한 공간이거나 가령 허블 같은 망원경을 사용한 관찰 탐구를 위한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우주는 인간에게 거주를 위한 공간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조만간 그것이 실현될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조만간 우리에게는 ‘서울시민’이나 ‘한국인’이라는 인식 말고도 ‘지구인’이라는 인식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지구인에게 어쩌면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를 위한 기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기회란 물론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우주 시대의 한 가지 의미다. 물론 처음에 그 기회가 평등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분명 처음보다 훨씬 더 평등해질 것이고, 화성 이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른 한 가지 기회는 지구를 떠날 사람이 아니라 계속 지구에 남을 사람들을 위한 기회다. 즉 ‘화성인’이 아닌 ‘지구인’을 위한 기회. 우리는 같은 가족이나 같은 마을, 같은 나라 사람들이 싸울 때, 같은 가족, 같은 마을, 같은 나라 사람끼리 왜 싸우냐는 말을 하거나 듣곤 한다.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싸우는 사람들이 같은 가족, 마을, 나라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가족, 마을, 나라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이 사는 행성이 더 이상 하나가 아닌 우주 시대는 아마도 ‘같은 지구인끼리’라는 말을 만들어낼 것이다.

아직 화성인이 없는 현재 ‘지구인’과 ‘인간’은 동일한 외연을 갖는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말이 인간을 뭉치게 할 수도 평화롭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은 가족이나 마을이나 나라 같은 집단을 가리키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에게 소속감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오로지 지구만이 유일한 인간 조건일 때, 인간은 지구를 위해 뭉치지 않는다. 오늘날 온갖 전쟁들 앞에서 UN의 무력함이 잘 보여지듯 말이다. 하지만 인간 조건으로서의 우주는 지구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영화 속에서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만이 제공해주었던 기회를 말이다.

 

 

지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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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의 우주 진출에서 불안스러운 미래를 예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렌트라면 어쩌면 그럴 것이다. 인간에게는 분명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밖을 바라보는 뿌리 깊은 성향이 있다. 이러한 성향은 문제 해결에 있어서의 무능력을 함축한다. 이러한 무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 다만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화성에 간다고 해서 그곳에 새로운 세계가 열릴까? 혹시 그곳에도 장차 미국이 있고 중국이 있고 일본이 있고 한국이 있게 되는 것 아닐까? 다시 말해서 집 안에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가서 잘 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그렇기에 우주 시대가 열어줄 새로운 기회들을 틀림없이 인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인간 조건의 바로 그 정수다”라는 아렌트의 말에 여전히 진리가 담겨 있다고 본다. 그것은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라는 유명한 말이 담고 있는 것과 유사한 진리를 담고 있다. 우주 시대는 밖을 향한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안을 향한 기회다. 그런데 그 안을 향한 기회란 다시금 지구인과 화성인이 대결하는 가운데 지구인을 뭉치게 하는 기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지구인이 지구인 스스로와 지구인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혹은, 말 그대로 직시하는― 기회를 의미해야만 한다. 우주의 시대는 새로운 지구의 시대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들처럼 저 우주를 한국인을 위한 새로운 기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인을 위한 새로운 기회로 재사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며, 보편성에 익숙해지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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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성민
이성민

철학자.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직을 접고 오랫동안 철학, 미학, 정신분석 등을 공부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세상, 어른들이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주된 관심사다. 저서로 『사랑과 연합』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슬라보예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를 비롯해 1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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