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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의 서가 : 광장의 풍경 - 서점, 카페 그리고 목욕탕

김병희

2016-10-13

광장의 풍경


서점, 카페 그리고 목욕탕


“우리 서점에서는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뭘 사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누구에겐가 어떤 책의 내용에 대해 묘사를 하면 

다른 사람도 함께 듣고는 그 책을 사기도 했다. 몇몇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서로 책을 권하기도 했다.”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솔빛길

 

광장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미 너무 광활하다. 하지만 단지 넓은 마당을 광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무척 조그맣기도 하다. 사람들이 모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작아질 수 있다. 또 주변에 있는 것들에 따라 달라진다. 시장으로 통하는 골목이 연결돼 있기도 하고, 뾰족 첨탑의 성당이나 둥근 지붕의 모스크가 자리 잡고 있기도 할 것이다. 남유럽의 도시라면 하나씩 가지고 있을 피아자(piazza)나 플라자(plaza)와 가장 비슷한 한국의 풍경은 아마 복덕방, 문방구, 전파상, 철물점 그리고 책방이 연이어 서 있는 동네 사거리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에 아마 목욕탕이 하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 솔빛길

▲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 솔빛길
  

모든 일은 짧은 입찰 공고문에서 시작됐다. ‘목재 서가 180m, 책 120m, 금전등록기와 각종 서점 설비, 배송용 차량’이 포함돼 있다는 입찰 공고였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독일에서 문학비평가로 일하던 페트라는 컴퓨터를 켜고 세 문장으로 이뤄진 이메일을 보냈다. 대략 생각해서 결정한 입찰 금액도 전달했다. 얼마 뒤 공증인이 회신 메일을 보냈다. 일금 4만 유로를 지참하고 낙찰받은 주소로 오라는 안내문이었다. 페트라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당장 집으로 와. 그 서점 우리가 낙찰받았어. 제길! 우리가 서점을 하나 샀단 말이야.”

서점을 낙찰받은 후 페트라는 함부르크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은 가장 좋은 정장을 입고 회사에 가서 사직서를 냈다. 서점을 인수할 돈과 새 단장할 돈, 그리고 빈에서 살 집을 구했다. ‘한 번도 마이너스가 아니었던 적이 없는’ 통장에 7만 유로가 넘는 돈이 들어왔다가 나가고, 못 한 번 제대로 박아본 적이 없던 사람이 공사장 총괄 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크리스마스 전에 연다’는 걸 목표로 닥치는 대로 해결하면서 문을 연 서점은 이제 그들의 집이자(서점 위층에 집이 있다) 직장이 되었다.
문학비평가로 일했고 추리소설을 쓰기도 했던 사람답게 페트라는 책을 그냥 쌓아두지 않았다. 가게에 들른 손님에게 소설을 강권하고, 서점 면적에 비해 지나치게 유명한 작가를 초청해서 낭독회를 열고, 책 소개 팸플릿을 만들어 발송하기도 했다. 그렇게 꾸려나가는 서점은 지나가던 사람이 공사를 돕고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직원이 되는, 특이한 가게가 되었다. 별 계획 없이 문을 연 서점을 근근이 운영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책은 덜컥 수백 부 주문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책이야말로 손이 많이 가는 데 비해 버는 돈이 적어도 힘들다는 마음을 잊게 만드는 책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판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서점은 직원을 도제 방식으로 교육한다. 2년 동안 서점에서 일하고 나면 직원으로 일할 자격을 얻는 것이다. 동네 서점이 동네 사람들의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이 이즈음이다. 얼굴을 알고 함께 사는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계산대 안쪽에 서서 책을 나르고 계산을 하고 가끔은 책을 권하기도 한다. 또 그 사람의 이웃이 어느 날 찾아와 ‘휴가 중에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도 한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찾아갈 일 없는 서점 이야기를 읽을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을 뽑아 드는 사람에겐 ‘추억의 서점’이 하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점이나 책방이 제목에 들어간 책에는 이유 없이 끌릴 수도 있다. 혹시 언제인지 모를 미래엔 서점을 차리고 싶은 생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추억의 서점’이 있다. 이 책을 읽을 마음이 생기는 것은 그 사거리 서점 때문이다.


『커피 한 잔 더』야마카와 나오토 지음, 그림 | 세미콜론

▲ 『커피 한 잔 더』야마카와 나오토 지음, 그림 | 세미콜론

 

이 커피 이야기는 ‘융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시작한다. 자꾸 커피 내리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남자, 늘 커피를 맛있게 내려주던 여자, 이제는 혼자 커피를 내려 마셔야 하는 사연이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다.
커피, 카페를 그리고 설명하는 만화가의 펜 놀림이 독특하고 집요하다. 하지만 주연은 커피가 아니라 사람들이다. 유쾌하고 기괴하고 슬픈 사연들이 커피를 매개해서 모인다. 카페란 그런 곳인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어진다’는 리뷰가 가장 많이 달리는 책이다. 만화 속 등장인물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커피를 마시기 때문인데, 거꾸로 처음 간 카페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도 이 책이다. 이 카페에 모인 사람들, 커피를 내리고 있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저 사람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도 모두 이 책 때문이다.

 

『낮의 목욕탕과 술』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그림 | 지식여행

▲ 『낮의 목욕탕과 술』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그림 | 지식여행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동네 공중목욕탕은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다. 개인적이면서도 무척 공개적인, 그러면서 이상한 곳이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다. 정해진 기호가 붙은 굴뚝이 멀리서도 보였다. 저자 구스미 마사유키는 『고독한 미식가』로 잘 알려진 만화가다. 혼자 먹기 위해 돌아다니는 특이한 이야기에 이어 낸 책이 낮에 맥주 마시고 목욕탕 간 이야기다. 출간도 특이하지만 많은 독자가 찾아 읽었다는 게 더 특이하다.
애초에 왜 이렇게 많은 목욕탕을 돌아다녔는지 궁금하지만, 일단 혼자 밥 먹고 맥주 마시고 목욕탕에 누워 있는 것이 저자의 특이한 취향이라고 해두자. 낮에 막 문을 연 목욕탕 10곳을 ‘경험’했고 근처 맥주를 파는 식당과 묶어서 책으로 냈다. 놀랍게도 목욕탕 안 사진도 함께 실었는데, 벌거벗은 사람들의 사진은 아니고 로커나 특이한 장식품들이다. 저자가 만화가인 게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벌거벗은 사람 몇 명은 그림으로 그렸다. 지금은 찾기 힘든 목욕탕 풍경이 정겹다.


책장 위 책과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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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병희
김병희

(예스24 도서사업본부장)고려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마쳤다. 석사 논문은 2,500년 전에 죽은 사람에 대해서 썼다. 2001년에 인터넷서점 예스24로 첫 출근한 이래 서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학창 시절 철학자 외엔 중요한 저자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서점 일은 철학 외 다른 과목의 보충 수업인 셈이다. 부끄럽게도 사들이는 책에 비해 읽는 건 여전히 턱없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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