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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의 서가 : 천만 광년을 여행하는 SF 소설들

김병희

2016-08-10

천만 광년을 여행하는 SF 소설들


여행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책 속 행선지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여행서가 있다. 수많은 여행 안내서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은 책 속 그곳으로 가볼 수 있다. 이 반대편에 『걸리버 여행기』부터 『파운데이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같은 여행기가 있다. 우리는 (아직) 떠날 수 없는 여정을 담은 책들이다. 전혀 새롭다는 점에서, 갈 수 없는 여행이 더 흥미롭다.


모든 것은 파운데이션, 아시모프에서 비롯됐다


파운데이션아이작

▲ 파운데이션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그는 초공간을 통과하는 도약에 대비하여 몸을 고정했다. 도약은 보통 행성 간 여행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현상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항성 간 여행에 필요한 유일한 수단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으로 보인다. 대개 우주 여행에서 광속을 초월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너무 오래되어 잊혀 버린 인류 역사의 여명 이래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과학적 지식의 단편이었다. 이 사실은 인류가 살고 있는 가까운 행성 사이를 왕래하는 데도 몇 년이 걸린다는 점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제는 초공간을 통과하여 한순간에 은하계를 횡단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파운데이션』 중

아이작 아시모프의 대작 시리즈,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첫 권 『파운데이션』이 출간된 건 1951년이다. 위에 인용한 문단은 이 『파운데이션』의 도입부인데, 심리역사학의 대가인 해리 샐던을 찾아 가알 도닉이 제국의 수도 트랜터로 떠나는 장면이다. 가알의 여행으로 시작한 이 대작은 등장인물들의 여행기로 채워져 있다. 아마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먼 거리를 여행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합계를 내봐야겠지만, 일곱 권에 걸쳐서 등장인물들이 여행하는 거리는 천만 광년을 훌쩍 넘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표적인 거시경제학자이며 저서와 함께 『뉴욕 타임스』 칼럼으로 유명한 폴 크루그먼은 어린 시절 이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읽고 심리역사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아직 지구에는 심리역사학 전공이 없어서 가장 비슷해 보이는 경제학을 택했다. 해리 샐던은 은하 기원 11988년에 태어나서 12096년에 죽었다. 15,000년 동안 발전한 은하제국은 수십억 개의 항성과 행성에 사는 100경 명의 인류를 통치한다. 수도인 트랜터에만 400억 명의 인구가 산다.

해리 샐던은 절정기의 은하제국이 500년 내로 몰락할 것이며, 지금 상황대로라면 3만 년 이상의 암흑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제국의 몰락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 암흑기를 줄이기 위해 ‘백과사전편찬위원회(foundation)’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국 수도의 반대편, 우주의 끝에 설립될 이 파운데이션은 은하제국의 지식을 집대성하는 데 목적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설립자인 해리 샐던은 파운데이션이 그저 백과사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을 미리 알고 있다.

일곱 권으로 이뤄진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대략 세 개의 인상적인 우주 여행을 담고 있다. 1권부터 3권은 트랜터에서 우주의 끝으로 옮겨간 파운데이션이 수 세대에 걸쳐 제2 파운데이션을 찾아 트랜터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4, 5권은 파운데이션 설립 500년 후 그 리더 가운데 하나인 골란 트래비스가 지구를 찾아 떠나는 여행기다. 6, 7권은 1권 이전의 이야기, 즉 해리 샐던의 젊은 시절을 다뤘다. 시리즈 전체가 해리 샐던의 여행과 모험으로 채워져 있다. 모든 여정에는 놀라운 반전과 의미심장한 결말이 있다.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영국식 유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 김선형, 권진아 옮김 | 책세상


『파운데이션』이 은하제국의 멸망에서 시작한 것처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지구 멸망과 함께 시작한다. 말라빠진 샌드위치와 주택 철거 예고에 고통받는 평범한 영국인 아서 덴트에게 친구 포드 프리펙트는 엉뚱한 말을 한다. 자신이 베텔게우스 출신의 외계인이며 지구는 곧 파괴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보곤인들은 우주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지구를 없애야 하고, 이미 통보가 됐다는 안내, 버튼 한 번 누르는 것으로 제 할 일을 한다. 아서 덴트는 ‘수건을 챙기라’는 친구의 충고에 따라 수건 한 장을 챙겨 은하수 히치하이킹을 시작한다. 더글러스 애덤스는 자신의 남다름을 여러 방면에서 보여준 작가다. BBC의 ‘닥터 후’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하고, 짬짬이 『마지막 기회라니』 같은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마지막 기회라니』는 멸종 위기종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인데, 외딴 섬에서 악천후를 견디며 생전 본 적 없는 새를 찾는 상황에서도 엉뚱한 유머는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이런 엉뚱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화성인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법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로저 젤라즈니 지음 |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어느 날 뉴멕시코 상공에 화성인의 우주선이 착륙한다. 『화성 침공』과 달리 화성인은 지구를 정복할 의도가 없었다. 지구의 저명한 시인인 갤린저는 화성인의 언어를 익히고 경전을 번역하기 위해 화성으로 파견된다. 석 달 남짓 계획으로 화성의 신전을 오가는 동안 그에게는 뜻밖의 사건이 생기고, 화성인들과 그 경전에 담긴 비밀을 알게 된다. 『파운데이션』이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비해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의 여행은 동네 산책에 가깝다. 1광년도 안 되는 화성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SF소설에 대해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비해서는 가장 거리가 먼 작품일 것이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달린 독자 리뷰들에는 유난히 ‘시(詩)적인’ ‘아름다운’ ‘SF소설답지 않은’과 같은 평가가 많다.

우주여행이 곧 다가올 미래의 일이라는 기사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조그만 탐사선 하나를 태양계 바깥으로 날려 보낸 걸 생각하면, 즐거운 우주여행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마냥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가끔 불가능한 일을 상상할 때 더 신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 더글러스 애덤스, 로저 젤라즈니는 그 가운데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이다. 우주여행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과 함께 떠나는 것이다.

책장 위 책과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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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병희
김병희

(예스24 도서사업본부장)고려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마쳤다. 석사 논문은 2,500년 전에 죽은 사람에 대해서 썼다. 2001년에 인터넷서점 예스24로 첫 출근한 이래 서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학창 시절 철학자 외엔 중요한 저자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서점 일은 철학 외 다른 과목의 보충 수업인 셈이다. 부끄럽게도 사들이는 책에 비해 읽는 건 여전히 턱없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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