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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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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도시의 틈새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시에서 새로운 여백을 찾으려는 시도들

by 정다영 / 2016.08.09


온도와 습도가 최고점을 달린다. 휴가철이 왔다는 신호다.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좁은 땅덩어리에 모여 살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을 준비한다. 익숙한 공간을 버리고 낯선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겠다는 낙관적 기대는 여행을 이끄는 근원적인 힘이다. 하지만 매번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소모되는 기회비용은 우리를 망설이게 한다. 이 때문에 집에서 쉬거나 멀리 가지 않고 도시에서 여유를 찾겠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여름의 분위기는 우리를 달아오르게 한다. 익숙한 삶의 테두리 안에서라도 무언가 색다른 것을 즐겨야 한다는 각오가 생긴다. 특별한 이벤트, 독특한 장소를 열심히 찾아본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 안에는 무언가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아 보인다. 늘 보던 아파트와 무표정한 건물들만 빼곡하다. 도시와 건축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시선 사이에는 늘 삐걱거리는 균열이 있다.

 

그 균열을 외면하지 말고 찬찬히 바라본다. 최근에는 그것을 창조적으로 열어젖히는 시도들이 눈에 띈다. 고밀도 도시의 틈에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여백을 찾고자 하는 일이다. 그 여백은 도시를 천천히 탐색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명동 노점상

▲ 명동 노점상 ⓒ 노경

 

그냥 내버려두기만 했던 도시의 유휴공간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옥상과 골목 같은 공간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특히 옥상은 최근 ‘루프탑 파티’라는 이름으로 한여름의 운치를 즐기는 장소로, 젊은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본래 옥상은 창고처럼 기계설비와 잡동사니가 모인 너저분한 곳이었다. 녹색 방수 페인트로 기억되는 옥상이 약간의 개조를 통해 거듭나고 있다. 특히 이태원처럼 남산 조망도 가능하고 건축 밀도가 낮은 곳에서는 지상층보다 옥상이 임대료가 높을 정도다. 파고라, 벤치를 비롯한 이동식 구조물로 단장한 옥상은 도시를 조감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바라본 도시는 좀 더 풍요로워 보인다.

 

옥상을 유힉과 여가, 만남의 공간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 옥상을 휴식과 여가, 만남의 공간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davem_330 via Foter.com / CC BY

 

골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는 골목길의 향수가 없는 아파트 키드에게 이곳은 이색적인 장소다. 단지형 아파트에 익숙한 신체는 골목에서 곧잘 방향을 잃는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골목의 코너마다 간이시장이 열린다. 동네마다 작은 가게들이 합심해서 기획하여 골목을 축제의 거리로 만든다. 자기가 사는 장소를 직접 가꾸는 사람들이 늘면서 골목마다 작은 화단과 테라스가 생긴다. 길가에 면한 상가들은 여름이 되면 차양과 함께 테이블과 의자를 밖으로 내놓는다. 개인 SNS에는 이런 곳들에서 찍은 사진들로 한껏 개인의 여유와 취향을 과시한다. 욕망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해소될 수 있다.

 

정자동 카페골목

▲ 정자동 카페골목 ⓒ 노경

 

한편 다행스러운 것은 공공공간의 질과 양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사유화된 이 도시의 공간에서 자연은 살아남은 여백이다. 서울의 경우 강변 둔치에는 가족 단위로 레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강과의 접근성이 늘 문제시되었지만, 건축가들이 참여한 나들목 개선사업으로 이전보다 환경이 좋아진 편이다. 원터치 텐트와 같은 손쉬운 구조물로 그늘막을 만들어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산도 마찬가지다. 둘레길과 같이 정상으로 갈 수 있는 보행로가 많아졌다. ‘유아숲’처럼 약자를 배려해서 특별히 조성한 곳도 있다. 예전보다 도시 안에서 여가를 즐길 기회가 많아진 셈이다.

 

한강 고수부지의 풍경

▲ 한강 고수부지의 풍경 ⓒ노경

 

빈 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도시에서 새로운 여백을 찾으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최근 건축계의 움직임과도 연결된다. 더 이상 대규모의 개발계획이 불가능한 저성장 시대의 지금 건축은 그것이 자리 잡을 수 없다고 믿었던 도시의 틈새에 개입한다. 건축과 건축 사이 벌어진 틈에서 일어나는 게릴라 같은 행위는 건축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패치워크처럼 분절된 도시의 파편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려는 시도다. 기존 건물을 존중하며 확장하는 일, 가설 건축물로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는 일, 장소의 일시적인 점유를 통해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 모두가 이에 해당한다. 번화한 밤거리의 포장마차, 여가를 위한 둔치 위 텐트, 옥상의 파고라도 일종의 파빌리온(pavillion) 건축을 만드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파빌리온은 연회를 위한 천막과 같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임시적이고 가설적인 건축물을 뜻하는 파빌리온은 우리 도시의 분위기를 바꾸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최근 미술관을 비롯한 공공 기관에서 진행하는 파빌리온은 연극 무대와 같은 설치물로, 잠깐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서 유희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여름마다 열리는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이 그 대표적인 예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 작거나, 경제성이 떨어지거나, 영속적이지 못하다고 외면받던 일들이 젊은 세대 건축가들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작은 성과들이 권위를 인정받은 중요한 사건이 있다. 영국의 젊은 건축 디자인 그룹 어셈블(Assemble)이 2015년에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예술상인 터너상(Tuner Prize)을 받은 일이다. 고가도로 아래 버려진 공간에 가설 구조물(고가도로를 위한 폴리)을 만들어 영화 상영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탄생시킨 어셈블은 쓸모없다고 간주되는 공간들을 탈바꿈시켜 작업의 창의성과 사회성을 인정받았다.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6년 당선작 템플

▲ 젊은건축가프로그램 2016년 당선작 템플 ⓒ슈가소트페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재발견하려는 시도는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려는 것과 통한다. 그것은 내 삶을 일종의 긴 여행으로 간주하고 깊은 호흡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건축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최근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으로 주목받고 있는 삶의 태도들은 자조적인 도시 채우기의 다양한 방식을 뒷받침해준다. 내가 살아가는 장소를 직접 보듬는 일은 주어진 거주의 조건들을 긍정하고 이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도시의 틈새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위는 내 삶의 기운뿐만 아니라 사회의 참여도 끌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 우리가 실시간으로 마주하는 도시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 도시의 균열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건물 스케치

 

건축 여행 도시 정다영 디딤널
필자 정다영
정다영
(건축기획자)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에서 건축전문기자로 일했다. 201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아트폴리 큐브릭>,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아키토피아의 실험>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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