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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입는 옷, 배냇저고리 : “세상에 처음 태어난 너에게 모든 걸 줄게”

장혜령

2016-01-15

처음 입는 옷, 배냇저고리

“세상에 처음 태어난 너에게 모든 걸 줄게”


‘배냇저고리’라는 단어는 참 생소하다. 언젠가 들은 적은 있는 기억이 전부인 한국의 다른 전통 문화와 마찬가지로. 그런데 10년 가까이 종로 인사동 길모퉁이 작은 건물의 3층에서 자리를 지키며, 갓 태어난 아이가 입을 전통 배냇저고리를 만들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녀는 배냇저고리를 두고, 이제 막 세상에서 삶을 시작하는 아이가 받는 최초의 선물과 같은 옷이라 말한다. 외희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밖에서 빛나는 한복을 짓겠다는 사람. 한복 디자이너 이외희를 만났다. (인터뷰 및 정리: 장혜령)


이외희 한복 디자이너
▲ 이외희 한복 디자이너


장: 어떻게 한복 만드는 일을 하게 되셨나요?
이: 지금 제가 40대 중반인데, 사실 저희 세대 때는 어른들이 요구하는 대로 사는 삶이 보통의 삶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삶이 참 맞지 않았습니다. 방황을 거듭한 끝에 학부에서 뒤늦게 복식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한복을 한 지는 12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배운 이후,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공부를 지속해 왔고요.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복식사 전공을 하고 있습니다. 뭘 하든 끝까지 파고들고, 처음부터 이해하고 싶어 하는 성격 때문에 오늘에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현재는 전통의 원형을 이해하면서도, 현대와 접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장: 한복 일 이전에도 많은 일을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특별한 선택의 계기가 있었을까요?
이:누구에게나 30대 초반 쯤, 인생에 있어 새로운 계기가 온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이 일이 맞을까, 혹은 안 맞을까, 여러분은 그런 거 혹시 안 느껴보셨나요? 누구에게나 반드시 그런 순간이 오거든요. 이 일을 정말 오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드는 순간이요. 저에게도 있었죠. 오빠와 학원을 하고 있을 때 였어요. 당시 부모님이 일본에 살고 계셨어요. 그런 이유로 일본을 오가며 문화를 접하곤 했는데, 어느 날 엄마 친구 분이 저에게 기모노를 입혀주신 일이 있었지요. 저는 교복자율화 세대예요. 요즘 나오는 <응답하라 1988> 바로 그 세대죠. (웃음) 그래서 일본 교복을 한번 입어 보고 싶다 말씀을 드렸어요. 그분은 일찍 결혼하셔서 이미 손녀가 있었는데, 교복 뿐 아니라 손녀에게 해주신 기모노까지 입어보라고 들고 오신 거예요. 기모노는 굉장히 값비싼 것이었고 또 귀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어르신이 하나하나 손수 그 옷을 입혀 주시는 게 아니겠어요. 기모노는 혼자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라, 입는 법을 배우러 학교에 다녀야 할 정도로 복잡한 옷이거든요. 또 한 가지 기억이 있는데요. 어렸을 때의 일이예요. 저희 조부모님은 한옥집에서 늘 한복을 입고 계셨어요. 할아버지는 서당 비슷한 걸 하셨거든요. 조부모님이 계시는 대구에 내려가면 할아버지는 항상 자전거 뒤에 저를 태우고 길을 달리셨어요. 할아버지의 등 뒤에서 도포 자락이 날리는 것을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어요. 하나의 계기나 사건이 아니라 이런 기억들이 저를 한복의 길로 이끌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장: 한복의 여러 복식 가운데, 배냇저고리에 특히 더 관심을 갖고 계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한복 하면, ‘탄생'에서 시작하는 배냇저고리와 ‘죽음'에 이르는 수의가 있지 않겠어요? 저는 삶의 전과정에 놓여 있는 그 모든 옷을 이해하고, 지어 보고자 하는 거예요. 그리고, 여전히 배우고 있는 중이기도 하지요.

장: 한복 갤러리 외희를 운영하고 계신데요. 외희를 만든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이: 궁중복식연구원에서 한복 복식사를 배우던 몇 년 간의 과정에서 그곳에서 배우던 친구들과 함께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저는 계획적으로 삶을 사는 편이예요. 뭔가 계획을 하면, 그것을 꼭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지키지 않으면 제가 성격이 못 돼서(웃음) 스스로 좀 힘들어 하는 편이거든요. 저희 기수의 동기들 역시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이었어요. 뭘 하자, 제안하면 협업이 잘 되어서, 매주 박물관 가고 연구하고 조사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던 사람들이었지요. 처음에 그런 모임은 대단한 장소가 아니라 커피빈 같은 카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갤러리 외희를 오픈하기 전에는 그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과 일을 시작한 거랍니다.
배냇저고리부터 해서, 아이들 복식으로 전시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저의 제안으로, 저를 포함해 3명이 석주선 박물관의 어린이 복식을 전부 만들게 되었는데요. 2008년 경, 함께 민속 박물관과 고궁 박물관을 매주 다니면서 공부하고 함께 치열하게 준비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 나무와 자라다’라는 전시를 그렇게 오픈하게 된 거죠. 여기서 ‘아이(我爾)는 '나와 너’라는 뜻의 단어로 볼 수도 있고, 또 '우리 아이들'이란 뜻을 내포한 단어로 볼 수도 있어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던 한복 업계의 선생님들도 이 전시를 방문하셨답니다. 지금의 갤러리, 그리 넓지 않은 이 공간에, 그렇게 많은 명사 분들이 오셨던 거예요. 아이들 복식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전시하는 게 당시의 한복 업계에서는 신선하게 비춰졌던 같아요. 설립에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은 외희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장: 배냇저고리를 엄마들이 직접 만들어 주는 DIY 제품을 만드셨잖아요.
이: 한국은 빨리 성장을 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일본을 자주 다니며 보니까, 일본의 유행 경향을 흡사하게 쫓아가는 거예요. 문화의 감성이 보이지 않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일찍이 저는 감지를 했어요. 그들은 수년 전부터, 자기 손으로 옷을 만들어 아이에게 옷을 지어주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우리나라가 그런 모습으로 바뀌는 듯 합니다. 느림의 미학이 이제 한국에서도 중요해졌죠.
2005년경 부터 배냇저고리 DIY 문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엄마들이 아이에게 직접 만들어주는 한복을 한번 해보자. 그런데, 그때는 그 생각이 대중들에게는 많이 공감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에서야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 거지, 그때 당시에 전통 배냇저고리를 DIY 한다고 말하면, 주위에서 반응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왜 대중들에게 그렇게 배냇저고리를 알려야 하느냐는 반응도 있었죠.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오랜 시간 한곳을 바라보고 일하니 지금에서야 많은 사람들이 제가 만든 배냇저고리를 카피 하기도 할 정도로 알려졌고, 엄마가 생애 첫 선물로 아이에게 전통 배냇저고리를 지어 준다는 것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닌 게 되었죠.

 

외희 전통 배냇저고리 DIY 세트
▲ 외희 전통 배냇저고리 DIY 세트

 

장: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어려움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일에 회의감을 느끼신 적은 없나요?
이: 3년 전 쯤이예요. 내가 왜 이걸 하는 걸까? 굳이 왜 대중들에게 전통 배냇저고리를 알리려 하는 걸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인데,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저 자신과 엄청나게 싸움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 와중에, 북촌 한옥길을 가다가 우연히 외국인 임산부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발견한 일이 있었습니다. 뜬금없이 적혀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어, 대뜸 “거기 뭐하는 곳이예요?”라고 물었죠. 임산부들이 먹는 수입 엽산제를 판매하는 제약회사라 하더군요. “저는 한복을 만드는 한복 디자이너고요. 우리의 전통 배냇저고리를 어떻게 알려보고자, 이곳에 전화를 했는데요. 거기 대표님과 미팅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그랬어요. 전화받으신 분은 정말 황당했을 거예요.
어떤 것이든 절박하게 끈을 잡고 싶었거든요. 2005년에 일을 처음 시작하고자 했을 무렵, 밤을 새면서 일기에 적어둔 글귀가 있었어요. '병원에 납품을 하고 싶다.' 그런데 병원 납품을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하지만 배냇저고리에 관한 처음의 그 생각들을 한번도 놓지 않았던 거고 그런 과정에서 이 모든 것들이 연결이 된 것이었죠.
“연락을 주시면 감사할게요. 그리고 부탁드립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날 전화를 끊으면서도, 사실 전화가 다시 오리라는 기대를 크게 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전화가 왔어요. 너무 재밌죠?(웃음) 당시 저희 직원이 둘이었는데, 셋이서 바리바리 배냇저고리를 싸들고 그곳에 갔답니다. 세 시간 동안 이사님과 대화를 나눴어요. 그분이 제게 던진 말은 잊을 수 없어요. “길을 나가서 한번 사람을 잡고 물어보세요. 열에 열 명, 전통 배냇저고리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착각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게 될 거 같나요? 사람들은 다 모릅니다. 당신은 아무도 모르는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장: 속상하셨겠어요. 그런데도, 또 찾아가신 건가요?
이: 한복하는 사람이 왠 청바지를 입고 있냐고 핀잔을 하셔서, 다음날 한복입고 다시 그분을 찾아갔죠. 세 번째 갔을 때는 그분이 엷게 웃으셨어요. 어쩌면 그 긴 시간은 그분만의 사람에 대한 평가 방식이었던 거예요. 그러곤 우연에 우연이 이어졌습니다. 그분이 어쩌다, 산부인과로 유명한 한 병원에 이런 희한한 사람이 있다 말을 하셨는데, 그쪽에서 저에게 연락을 하신 거죠. 그때가 연말이었는데,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제가 가기 전까지는 기업 단위가 아닌, 민간에서 산모 교육이나 제품을 팔거나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곳의 마케팅 팀장님이 제 열정을 보셨고, 그렇게 병원 안에서 1달간 배냇저고리 전시를 하게 됩니다.
의사, 산모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서 혼자 전시 설치를 하는데 하고나서 정말 펑펑 울었어요. 수익이 나지도 않는 일인데 내가 도대체 이걸 왜 하고 있는 걸까, 싶어서 말이예요. 그런데 이후에 좋은 평가가 있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한 달 더 전시를 연장하자는 제안이었죠. 그러곤 취재도 받고 좋은 일들이 이어졌답니다. 그곳 병원 내에서 최초로 올 초부터 유료 강의까지 개설하게 되었고, 앞으로 국내에서 가장 이름난 산후조리원에서 전시를 하게 될 예정입니다. 저는 갤러리가 아닌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전통 배냇저고리 문화를 접하게 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10년 전쯤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생각을 밀고 오는 데 여기까지 정말 딱 10년 걸렸네요. 정말 신기한 것은, 그때 일기에 적어두었고 간절히 염원했던 것들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아직도 확인해보고 싶어요. 끝까지 갔을 때 어떤 결과가 이루어질지요.

 

외희 전통 배냇 액자
▲ 외희 전통 배냇 액자

 

장: 아이들의 탯줄을 보관하는 배냇(저고리) 액자 키트를 제작하기도 하셨는데요. 그건 어떤 건가요?
이: 예전에 나눔행사로 전통 배냇저고리 프로그램을 했었습니다. 전통 배냇저고리를 매개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준비를 많이 해왔어요. 그를 통해, 목표가 없이 방황하는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죠. ‘너의 미래의 아이에게 줄 옷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메시지가 담긴 액자 만들기를 많은 청소년들과 전통나눔 워크숍의 형태로 진행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또 만들어진 배냇 액자를 입양되는 아이들에게 기부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반 청소년 뿐아니라 다문화가정, 새터민 등 다양한 환경의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기원에 관한 의미를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피소드 하나가 문득 생각나네요. 아이가 셋인 엄마가 있는데요. 배냇 액자를 만들어서 벽에 걸어뒀던 거예요. 아이에게는 “엄마와 너 사이를 연결해주는 탯줄이 여기에 있어.”라고 설명해주었고요.
영국의 경우, 엄마와 아이 사이 아빠가 탯줄을 가위로 직접 잘라줌으로써 하나의 가족이 완성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죠. 탯줄이 여기 보존되어 있다는 자체가 ‘우리 가족이 모두 여기에 있다’는 의미가 되는 셈이예요. 아이들은 배냇 액자를 볼 때 마다, 가족구성원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될 거예요. 보통 탯줄 보관을 아무렇게나 하는 경우가 참 많은데요. 이렇게 해두면, 보관도 쉽고요.

장: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이:외희에 와서 배울 수 있는 분은 여유가 있는 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DIY 제품을 만들고 동영상을 올려서 여유가 없는 분들도 집에서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배냇저고리에 이어 앞으로는 돌복 DIY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사실, 대중화되는 만큼 다른 기업 등에서 허락 없이 무단으로 카피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두려워하면, 시작도 할 수 없죠. 하지만 저는 반가워요. 경쟁사가 생기는 일이 좋은 일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어린이 돌복에 관해,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고요. 이 옷이 어떤 때에 입는 옷인지 알 수 입게 하는 책 말이예요. 그렇게 일을 만들어가면서 저에게 배운 사람들에게 다시 일이 돌아갈 수 있게끔 공정을 만들고 싶고요. 또 한복을 자주 못입는 현실에 조금 더 전통적인 교육으로서 다가가는 것이 전통을 이어 가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는 만큼 한복의 깊이를 알아볼 시기도 않을까 싶습니다.

장: 그럼, 어떤 한복을 만들고 싶으세요?
이:내가 입고 싶은 한복, 실용적인 한복, 그러면서도, 한 벌 한 벌에 의미와 이야기를 담은 한복이요. 어떤 여인이 어떤 이유로 저 저고리를 입었을까를 상상하게 되잖아요. 원형의 의미를 풀고, 현대적으로 입을 수 입게 만드는 것이 저의 소망이예요. 그리고 수업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한복 속에 담긴 그 메시지를 나누고 싶죠. 이런 게 사회공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웃음) 로드샵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에 솔깃한 적도 있었지만, 10년을 해보니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를 완벽히 해본 뒤에, 그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다.

장: 선생님에게, 한복 만드는 일의 내적인 의미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이:누군가 물은 적이 있어요. 너는, 사는 데 기준이 뭐니? 제 이름 참 독특하죠. 외희. 바깥에서 빛난다. 우리의 전통에서 바깥에서 빛나고, 우리의 아이들이 바깥에서 빛나는 데 이제는 제 삶의 기준, 그리고 목표가 있는 거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 정도 되었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직접 수의를 해드렸죠. 배냇저고리에 "처음 태어난 너에게 모든 걸 줄게.”란 의미가 담겨 있다면, 수의는 그 맞은편의 지점에 있어요. 하지만 저는 태어남과 죽음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옷을 통해서, 한 사람의 탄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역사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저에게 의미가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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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령

작가. 에세이스트. 네시이십분 팟캐스트 제작자. 2012년 1월부터 지금까지 네시이십분 팟캐스트 라디오를 제작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 분야의 의미있는 책과 그 작가들을 소개해왔다. 라디오라는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예술가들과 독자들을 연결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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