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뭔가를 하는 척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 것이다. 걷기는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 즉 호흡이나 심장 박동에 가장 가까운 의도적 행위이다. 걷기는 노동과 무위 사이, 존재와 행위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걷기는 사유와 경험과 도착만을 생산하는 육체노동이다. 다른 일들을 해내기 위해서 거닐던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소로가 말했던 의미에서 절실히 해야 할 일에 다시 손댈 수 있었고 걷기에 대해서 사유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는 움직임은 사유 속을 지나는 움직임을 반향하거나 자극한다. 내적 이동과 외적 이동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음은 일종의 풍경이며 실제로 걷는 것은 마음속을 거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이란 원래부터 거기 있던 풍경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유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보자면 걷기의 역사는 사유의 역사가 구체화된 것이다. 레베카 솔닛, 『걷기의 역사』 , 김정아 옮김, 민음사, 2003, 12~13쪽.
걷기는 사색을 열어가는 향연이다. 가장 좋은 생각들은 걷기 중에 떠오른 것들이다. 내가 날마다 서울의 서교동 골목들을 걸을 때 나는 길과 자아와 함께 육체를 뒤섞는다. “푸르른 저녁이면, 오솔길로 걸어가리라”(알뛰르 랭보, 「감각」). 걷기는 감각의 연마를 통한 육체의 재발견이고, 육체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사유의 향연이다. 장석주/시인
(기획자문위원)시인. 인문학 저술가. 『월간 문학』 신인상에 당선해 문단에 나오고,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입선하여 시와 평론을 겸업한다. 스물 다섯에 편집자로 첫 발을 내딛은 이후, 13년 간 직접 출판사를 경영한 바 있다. 1993년 출판사를 접은 뒤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방송진행자로도 활동했다. 시집 『몽해항로』, 『오랫동안』, 『일요일과 나쁜 날씨』 를 포함해 『마흔의 서재』, 『새벽예찬』, 『일상의 인문학』,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등 다수의 저서를 냈으며 최근 필사에 관한 저서인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을 썼다.
[한 페이지 필사] 걷기의 뜻
장석주
2015-12-10
한 페이지 필사
‘꼭꼭’ 마음으로 읽고 ‘꾹꾹’ 손으로 써보는 시간
걷기의 뜻
아무것도 안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뭔가를 하는 척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 것이다. 걷기는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 즉 호흡이나 심장 박동에 가장 가까운 의도적 행위이다. 걷기는 노동과 무위 사이, 존재와 행위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걷기는 사유와 경험과 도착만을 생산하는 육체노동이다. 다른 일들을 해내기 위해서 거닐던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소로가 말했던 의미에서 절실히 해야 할 일에 다시 손댈 수 있었고 걷기에 대해서 사유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는 움직임은 사유 속을 지나는 움직임을 반향하거나 자극한다. 내적 이동과 외적 이동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음은 일종의 풍경이며 실제로 걷는 것은 마음속을 거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이란 원래부터 거기 있던 풍경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유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보자면 걷기의 역사는 사유의 역사가 구체화된 것이다. 레베카 솔닛, 『걷기의 역사』 , 김정아 옮김, 민음사, 2003, 12~13쪽.
걷기는 사색을 열어가는 향연이다. 가장 좋은 생각들은 걷기 중에 떠오른 것들이다. 내가 날마다 서울의 서교동 골목들을 걸을 때 나는 길과 자아와 함께 육체를 뒤섞는다. “푸르른 저녁이면, 오솔길로 걸어가리라”(알뛰르 랭보, 「감각」). 걷기는 감각의 연마를 통한 육체의 재발견이고, 육체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사유의 향연이다. 장석주/시인
(기획자문위원)시인. 인문학 저술가. 『월간 문학』 신인상에 당선해 문단에 나오고,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입선하여 시와 평론을 겸업한다. 스물 다섯에 편집자로 첫 발을 내딛은 이후, 13년 간 직접 출판사를 경영한 바 있다. 1993년 출판사를 접은 뒤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방송진행자로도 활동했다. 시집 『몽해항로』, 『오랫동안』, 『일요일과 나쁜 날씨』 를 포함해 『마흔의 서재』, 『새벽예찬』, 『일상의 인문학』,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등 다수의 저서를 냈으며 최근 필사에 관한 저서인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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