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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호와 삼한일통

-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

황윤

2022-12-20

그런데 당시 김부식이 사용한 삼국이라는 표현도 사실 삼한을 대신한 것이라는 사실. 9세기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문장가 최치원은 당나라 태사시중께 올리는 글에서 “삼한이 곧 삼국이며 마한은 고구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라 말한 적이 있었거든. 이는 곧 6세기에 본래 변한이었던 가야가 신라에 흡수되자......

 

 

드라마 <한국사기> 포스터 (출처: KBS)

드라마 <한국사기> 포스터 (출처: KBS)


 

우연히 2017년 KBS에서 방송된 “한국사기”를 다시 볼 기회가 최근 생겼다. 다큐 드라마를 표방한 해당 방송은 총 10화에 걸쳐 방영되었는데, 지금 눈으로 보아도 꽤 신선한 시도로 다가오더군. 무엇보다 다큐멘터리임에도 나름 사극처럼 연기가 들어가니 관람자 입장에서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 덕분에 2017년 방영 당시에도 여러 호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체 흐름은 한반도 선사시대를 시작으로 청동기시대, 고조선,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가 이룩된 시점까지다. 특히 마지막 10화는 제목이 “하나를 위하여, 문무왕의 꿈”이었는데, 이는 통일신라시대 신라인이 자신들이 이룩한 영광을 삼한일통이라 남달리 자부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참고로 삼한일통(三韓一統)의 뜻은 사실 간단하니 삼한이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이니까.


그런데 가만 살펴보니, 삼한일통과 현재 우리나라 국호인 대한민국이 동일한 한(韓)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분명 어떤 연결점이 존재하지 않을까? 사실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만들어진지 약 100년 정도에 불과한 국호이거든. 즉 삼한일통보다 훨씬 뒤에 만들어진 명칭이라는 의미.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대한의 연원을 살펴보면서 혹시 삼한일통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대한민국이 등장한 시점부터 시작하여 점차 과거로 이동해 보자.


고종이 세운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멸망한지 9년째인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세운 독립운동가들은 가장 먼저 국호를 정하기 위한 열띤 토론을 하였으니, 당시 신석우는 

 

“대한제국이 '대한'이란 이름으로 망했으니 새로 독립할 나라 역시 '대한'이란 이름으로 일어서야한다.” 

 

라 주장한다. 이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대한”에다 공화제를 뜻하는 “민국”을 더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해졌다. 이렇게 정해진 국호는 독립 이후에 정칙 국호로 이어졌기에 지금은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은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고종은 왜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고쳤던 것일까?

 

“우리나라는 곧 삼한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통합하여 하나가 되었으니,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하고자 한다. 또한 종종 각 나라의 문자(文字)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고 하였다. 이는 아마도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을 기다린 것이니, 천하에 공표하지 않더라도 천하가 모두 대한(大韓)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는 것이다.” 

 

 - 고종시대사, 고종 34년(1897) 10월 11일 -  


여기서 시점을 좀 더 과거로 올라가 보면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1897년 광무개혁과 함께 고종은 1대 황제로 등극한다. 이때 현재 한반도 영역이 과거 삼한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졌다 하여 큰(大) + 한(韓)을 합쳐 대한이라는 국호를 만들어 선포했지. 즉 삼한과 대한은 사실상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 헌데 국호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중 “종종 각 나라의 문자(文字)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고 하였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오래전부터 한반도 영역을 한(韓)으로 종종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반도 지역을 한(韓)으로 인식하는 역사는 조선전기 기록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



干戈盡化耕鑿居 (간과진화경착거) 전쟁 모두 끝나 경작하고 우물 파고 사니, 

崆峒麥熟桑麻閑 (공동맥숙상마한) 공동산(崆峒山)에는 보리 익고 뽕나무와 삼나무는 한가롭구나 

由來大德民慕羶 (유래대덕민모전) 대덕(大德)으로 다스리면 백성은 누린내를 사모하니, 

天與金尺君東韓 (천여금척군동한) 하늘은 동쪽 한(韓)나라의 임금에게 금척을 주었다네. 


 - 유호인, 황산가(荒山歌) 중 일부 -



평화를 누리는 백성의 모습 (출처: KBS)

평화를 누리는 백성의 모습 (출처: KBS)



조선 성종시절의 문인인 유호인(兪好仁, 1445∼1494년)은 <황산가>라는 시를 지었는데, 고려 말 이성계가 왜적을 상대로 크게 승리한 황산대첩을 묘사하다 후반부에는 전쟁이 끝난 뒤의 분위기를 위처럼 표현하였다. 전란이 마감되고 평화를 누리는 백성의 모습에 이어 “하늘은 동쪽 한(韓)나라의 임금에게 금척을 주었다”라는 내용이 그것. 이때 한(韓)은 다름 아닌 조선을 의미하거든. 이렇듯 조선 전기에도 한(韓)은 한반도를 부르는 또 다른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한(韓)을 중시하는 풍조는 과거로 더 내려가 고려 역시 보인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한반도의 역사서 중 삼국사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삼국시대 만들어진 원서가 사라진 지금 가장 오래된 한반도 역사서가 다름 아닌 삼국사기이기 때문. 한편 김부식은 고려 인종의 명에 따라 1145년 여러 문인들과 함께 삼국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이는 한 지역의 정통성을 잇는 국가가 이전 국가의 역사를 정리하는 문화를 따른 것으로 이에 따라 삼국(三國), 즉 고구려, 백제, 신라를 중심으로 한 역사서를 기술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김부식이 사용한 삼국이라는 표현도 사실 삼한을 대신한 것이라는 사실. 9세기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문장가 최치원은 당나라 태사시중께 올리는 글에서 “삼한이 곧 삼국이며 마한은 고구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라 말한 적이 있었거든. 이는 곧 6세기에 본래 변한이었던 가야가 신라에 흡수되자 이들을 진한, 즉 신라와 하나로 결합시킨 대신 신라와 함께하게 된 가야를 대신하여 고구려를 삼한으로 포함하려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렇듯 신라인들이 만든 삼한 = 삼국이라는 표현은 고려시대로 이어지면서 김부식은 삼국사기라 제목을 지은 것이니, 사실상 삼한의 역사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과거로 내려가면 후삼국시대를 통일하며 고려가 한반도를 통치하는 국가가 된 시기가 등장한다. 이때 태조 왕건은 자신을 도와 공을 세운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공신 명칭을 주었다. “삼한공신(三韓功臣)” 이는 곧 삼한을 통합한 고려에 적극 협력한 신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 이런 표현이 등장한 이유는 고려가 신라의 삼한일통 후 다시 분열된 나라를 통합했다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삼한일통 표현은 통일신라 직후부터 등장하고 있었으니.


“선왕 김춘추는 자못 어질고 덕망이 있었으며, 더구나 생전에 어진 신하인 김유신을 얻어 한마음으로 정사를 돌보아 일통삼한(一統三韓)을 하였으니, 이룩한 공적이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문왕 12년(692) -


가 그것.


여기까지 보았듯 신라가 주장한 삼한일통은 고려에 삼한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졌고 조선시대 역시 삼한 또는 한이라는 명칭이 종종 쓰였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이라는 국호가 만들어졌으며 더 나아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완성된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 삼한을 하나로 만든 신라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영향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삼한일통을 이룩한 문무왕에 대한 영상 표현이 여전히 매우 드문 점이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한국사기” 중 10화 - “하나를 위하여, 문무왕의 꿈”은 문무왕 본인이 내레이션을 한 것처럼 사건 하나하나를 설명하여 집중도를 높여주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이번 다큐 드라마를 넘어 앞으로 문무왕 시대를 장편 사극 드라마 또는 영화 등으로 상세히 표현해 주길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대한민국 국호와 삼한일통

- 지난 글: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숙종은 그저 여성편력이나 일삼던 왕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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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작가
역사 작가이자 박물관 마니아. 혼자 박물관과 유적지를 찾아 감상·고증·공부하는 것이 휴식이자 큰 즐거움이다. 대학에서는 법을 공부했다. 유물과 미술 작품에 대한 높은 안목으로 고미술에서부터 현대미술까지 관련 일을 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 교양을 대중화하고자 글을 쓴다. 삼국 시대와 신라에 특히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박물관 보는 법』 『컬렉션으로 보는 박물관 수업』, 『중국 청화자기』, 『도자기로 본 세계사』,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 등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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