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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빛을 보니?

- 당신은 어떤‘가요’ -

김연수

2023-01-12

그 노래는 옥상에서 만든 노래였다. 호랑이의 눈빛은 서쪽 전망대 쪽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뜻했다. 노을은 섬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와 철거가 예정된 풍력발전기 사이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섬의 여름은 끈덕지다. 구월이 지나도 한없이 늘어진다. 그렇긴 해도 빛이 성기어지는 어스름이면......



프랑스에서 태어난 알리스는 지금은 멕시코시티에서 살고 있다. 멕시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으니 국외로 나갈 일이 여의치 않은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만날 확률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알리스는 화가이고 나는 가수다. 덕분에 우리는 제주도 남쪽의 한 섬에서 함께 지내게 됐다. 그게 2021년 9월의 일이었다.


그 섬은 가오리 모양으로 생긴 섬이었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은 전망대다. 섬 중앙, 전망대가 있는 작은 둔덕의 높이는 해발 20.5미터다. 거기 서면 북쪽으로 제주 본섬과 남쪽으로 마라도가 보이고, 동쪽과 서쪽은 망망대해다. 전망대를 제외하면 높은 건물이나 지형지물이 없어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거리낌 없이 섬을 휩쓸고 지나간다. 레지던시 건물을 땅속에 지은 이유도 그 드센 바닷바람에서 찾을 수 있다.


땅 아래 있으니 갑갑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래봤자 1층 높이인 옥상에 올라서면 제일 먼저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다음에는 바다와 그만큼이나 광활한 하늘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어쩌면 나는 그 산과 바다와 하늘을 보려고 거기까지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리스와 오래 얘기하게 된 곳도 옥상이었다.

 


인사를 무시하는 사람

인사를 무시하는 사람



그 섬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점점 이방인이 되어갔다. 말하자면 ‘뉴욕의 영국인(Englishman in New York)’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나도 섬 주민들과 친해보려고 했다. 길 가다가 주민들을 마주칠 때마다 고개 숙여 인사했지만 주민들은 그런 내가 부담스러운지 시큰둥했다. 왜 그랬는지는 어촌계장에게 들었다. 섬 주민들은 어차피 떠날 사람에게는 마음을 주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촌계장은 서울에서 이주한 사람이라 그런 말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뒤부터는 나도 부러 인사를 하지 않았다. 골목길에서 서로 마주쳐도 우리는 데면데면 지나갔다. 마을 주민이겠거니, 혼자 온 관광객이겠거니 하며 서로를 짐작하기만 했는데, 그게 또 나쁘지 않았다. 그러자 섬은 서울의 한 거리와 비슷해졌고, 내 마음도 편해졌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섬 주위를 걸어다녔다. ‘뉴욕의 영국인’은 오랜만에 들은 스팅의 노래였다. 혼자 산책하는 섬에서 그 노래를 들으니 어쩐지 외로움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그 할머니를 만났다. 섬의 다른 할머니들과 마찬가지로 그 할머니 역시 전동차를 타고 골목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할머니의 전동차가 음악에 귀 기울이며 걷고 있던 내 앞을 가로막았다. 옆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내게 뭐라고 말을 붙여왔다. 잘 들리지 않아 이어폰을 귀에서 뺐더니 할머니는 “일본 사람이시오?”라고 묻고 있었다. 그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해 얼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가 일본 사람이면 그 말을 못 알아듣잖아요. 아니에요.”

대답하는데 웃음이 나왔다.

“한국 사람이면서 왜 그런 티셔츠를 입었어?”

곧 나는 상황을 이해했다. 내 티셔츠에 일본어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옛날에는 돈이 많지 않았어요. 그때 산 싸구려 옷이에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얘기까지 털어놓았다.

“그럼 일본말 할 줄 알아?”

“네. 조금은.”

“내가 저기 상동 골목 두번째 집에 혼자 사는데, 그럼 이따 저녁에 밥 먹으러 와.”

할머니의 갑작스런 식사 초대에 나는 당황했다.

“왜 저한테 밥을?”

“어차피 저녁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일본에서 나한테 온 편지가 있는데, 일본말이야. 어촌계장이 있으면 읽어줬을 텐데 지금 서울에 갔어. 그러니 밥 먹고 대신 좀 읽어줘.”

“아, 그게 근데…….”


내 일본어는 여행 가서 숙소를 찾아가고 식당에서 겨우 메뉴를 주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식사 후 잘 먹었다고 일본어로 말할 수는 있겠지만 편지를 읽고 해석하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당신 할 말만 하고는 그냥 가버렸다.

 

 

어촌계장은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십 대 여성으로 섬에서는 가장 젊은 해녀다. 나중에 그녀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할머니는 해녀 중에서도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상군 해녀였다. 지금도 그 마을에서 가장 오래 잠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저녁에 찾아가니 마당에 테왁 같은 잠수 장비들이 보였다. 마루 앞에 서서 계시냐고 물으니 안방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별생각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다가 나는 놀라서 자빠질 뻔했다. 할머니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지금 뭐 하세요?”

“보면 몰라? 거꾸리하잖아. 이걸 하면 허리가 덜 아파. 거기 앉아.”

할머니는 거꾸리라고 부르는 기구에 매달려 있었다. 다리를 고정시키고 뒤로 누우면 거꾸로 매달릴 수 있었다. 세상에 그런 기구가 있다는 걸 알고나 있었지 해도 떨어진 저녁에 느닷없이 사람이 매달린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거꾸로 매달린 채, 할머니는 내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가수라고 대답하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이름을 말했다.

“잘 모르겠네. 유명한 가수는 아닌가봐.”

할머니가 말했다. 당신이 모르시면 다 무명가수, 라고 하기에는 이곳이 너무 외딴섬이지 않나요, 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자기 노래도 있어?”

“그럼요. 앨범도 몇 개나 있는데, 두 번째 앨범은 대중음악상도 받았어요.”

사람을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사족까지.

“그럼 한 곡 불러 봐.”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거꾸로 매달린 그 얼굴이 어쩐지 무섭게 보였다. 갑자기 노래를 불러보라니. 무슨 노래를 부르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얼마 전에 만든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 싶었다. 

 

여전히 불타오르는 호랑이의 눈빛과 

항상 떠나고 싶은 갈대 바람 같은 마음 

들꽃 사이로 불어와 소녀의 귓가에 앉아 

어딘가 돌고 돌다 내 마음을 흔드네

 

 

태양

태양

 

 

그 노래는 옥상에서 만든 노래였다. 호랑이의 눈빛은 서쪽 전망대 쪽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뜻했다. 노을은 섬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와 철거가 예정된 풍력발전기 사이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섬의 여름은 끈덕지다. 구월이 지나도 한없이 늘어진다. 그렇긴 해도 빛이 성기어지는 어스름이면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한층 시원해졌다. 이곳이 떠나온 곳이었는데도 나는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왜 이런 것일까, 떠나온 뒤에도 왜 또 이다지도 떠나고 싶은 것일까 싶은 마음에 흥얼거린 게 바로 그 노래였다.


노래하는 동안, 태양은 지평선에 반쯤 가려졌다. 그리고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알리스가 서 있었다.


“멋지다. 너의 노래야?”

내가 가수라는 걸 아는 알리스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목은?”

“저 노을에 대한 것인데…….”

그러다가 어떤 프랑스어가 떠올랐다. 즉흥적으로 그 말을 제목으로 삼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은 ‘벨 에포크’야.”

“가사도 프랑스어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런 제목을 붙였어?”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벨 에포크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전쟁이 떠오른다. 프랑스어 벨 에포크란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1914년 전까지 유럽이 평화를 누리며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으로 번성했던 시절을 회고적으로 말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고적으로’라는 말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이어지지 않았어도 전쟁 전의 유럽이 그토록 평화롭고 풍요롭게 기억될 수 있었을까? ‘회고적으로’라는 말은 그 뒤에 일어난 끔찍한 일, 즉 전쟁을 겪고 난 뒤에야 그 시절이 제대로 보였다는 뜻이다. 벨 에포크를 살아가는 사람은 그 시절이 벨 에포크인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때가 행복했네. 나중엔 지금의 내가 훨씬 그립겠지’라는 가사도 거기서 나왔다. 한 번의 인생이란 살아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죽은 뒤에야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잘 살고 싶다면 이미 살아본 인생인 양 살아가면 된다.


이 모든 말들을 알리스에게 다 전달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짧게 대답했다.


“전쟁과도 같은 시간이 이제는 다 끝났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붙였어.”

“전쟁은 끝났다. 좋다. 한 번 더 불러줄 수 있겠어?”

“물론이지.”


나는 그 노래를 한 번 더 불렀다.


마지막에 남겨질 것들이 나의 기억뿐이란 걸 

조금 일찍 알았더라도 변하진 않았을 거야.

 

 

노래를 다 부르고 나자 할머니는 이제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읽어달라고 말했다. 아직 뜯지도 않은 편지였다. 겉봉에는 한자로 적힌 성과 함께 히라가나로 ‘かおり[카오리]’라고 적혀 있었다. 사전에는 ‘좋은 냄새’라고 나와 있었다. ‘좋은 냄새’가 보낸 편지는 뜻밖에도 한글로 적혀 있었다.


“할머니, 이건 할머니도 읽을 수 있어요. 한국말로 적혀 있어요.”

“이렇게 하고 어떻게 읽어? 네가 읽어 봐.”


여전히 거꾸로 매달린 채로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편지를 읽었다. 


할머니에게 

어머니 대신 한국어로 편지를 쓰는 것은 힘들었다. 

당신이 사는 바다에는 방향이 없습니다. 사방이 모두 같다. 그러나 태양이 떠오르면 방향이 나옵니다. 빛의 방향입니다. 

난 당신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서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나는 당신을 생각한다. 이제 당신도 빛을 향해 서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나와 같은 빛을 보니?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카오리는 빛 쪽으로, 태양 쪽으로 향하려고 한다. 할머니도 빛을 향해 태양을 향한다. 다음 우리는 지금 연결한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엄마의 장례식은 잘 끝났다. 지금 긴장을 풀어주세요. 


- 외손녀 카오리 드림 -


 

편지를 다 읽고 보니 할머니가 거꾸로 매달린 채 울고 있어 나는 얼른 할머니를 바로 세웠다.


그러자 언제 울었냐는 듯이 거꾸리에서 내려온 할머니는 말했다.

“저녁 먹자.”

 

※ 이 글은 픽션이며, 내용 중 등장하는 노래 가사는 알레프의 ‘조금 일찍 알았더라도(Finale)’입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나와 같은 빛을 보니?

- 지난 글: [당신은 어떤‘가요’] 밤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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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가
소설가. <이토록 평범한 미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등의 소설집과 <일곱 해의 마지막>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밤은 노래한다> 등의 장편소설과 <청춘의 문장들> <시절일기> <지지 않는다는 말> 등의 수필집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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