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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새롭게 들리는 〈나 어떡해〉

- 당신은 어떤'가요'-

신경숙

2022-01-04

당신은 어떤‘가요’는? 누구에게나 살면서 기쁘고 즐겁고 놀라고 슬프고 우울했을 때, 혹은 무심코 한 시절 건너가고 있을 때 가슴 한구석 갑자기 훅 들어와 자리 잡았던 노래 한 곡 있었을 터. 인생의 어느 순간에 우연히 만났지만 참 특별했던 자신만의 노래에 얽힌 추억과 이야기를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고자 한다.


옷자락을 꼭 잡고 놓지 않는 나를 돌아다보는 엄마에게 “무서워…”라고 하고 있는데 시계탑 근처에서 기차에서 내리는 새벽 손님들을 위해 식빵 사이에 계란 후라이를 끼운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리어카에서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그 새벽에 〈나 어떡해〉가 흘러나왔다. “못 믿겠어, 떠난다는 그 말이… 나 어떡해, 나 어떡해, 나 어떡해, 나 어떡해에에…”하면서 높아지는 그 고음을 나도 속으로 따라 부르며 나는 그 새벽에 이 도시로 들어왔던 기억…….



1977, 열다섯 혹은 여섯, 대학가요제, 대상



1977년에 열린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작, 〈나 어떡해〉를 부른 샌드페블스 모습 (이미지 출처: 문화일보)

1977년에 열린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작, 〈나 어떡해〉를 부른 샌드페블스 모습 (이미지 출처: 문화일보)



77년도라고 쓰려니까 막막한 느낌이 든다, 77년도라니… 그로부터 대체 세월이 어떻게 흘러간 것일까. 앞으로 몇 년만 더 흐르면 77년도는 50년 전의 일이 된다. 77년도에 대학가요제라는 것이 처음 생겼다 그해 대상작이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때 나는 열다섯 살이었다 아닌가? 열여섯인가? 이제는 이런 셈이 부질없이 느껴진다. 열심히 셈을 해도 한두 해쯤 어긋날 때가 잦다 보니 미리서 그때거나 그 다음해일 거야,라고 말하곤 한다. 열다섯인지, 열여섯이었을 때는 누군가 내가 스무 살 때라던가, 혹은 서른 살 때라고 하며 얘기를 시작하면 무슨 옛날 이야기 듣는 기분인데다 그 과거형이 잘 헤아려지지가 않았다. 나이 들면 다 저런가, 했었다. 나는 나중에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했었다. 늘 현재형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 했었다. 그런데 어느덧 나도 그때가 열다섯이었는지 열여섯이었는지,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있네.



시골집 마루에서 듣던 라디오에서 처음 접한 노래



트랜지스터 라디오

트랜지스터 라디오



그때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바로 진학하지 못한 채 시골집 마루에 걸터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는 일이 잦았다. 시골집엔 전화도 텔레비전도 없었다. 그저 라디오 본체와 커다란 건전지를 고무줄로 꽁꽁 묶어 놓은 트랜지스터라디오가 한 대 있었다. 그 라디오로 연속극을 듣고 노래를 듣고 뉴스를 들었다, 그게 외부 소식이었다. 또래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없는 시골 마을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무료한 고독의 하루였다. 그래서 참 악착같이 라디오를 끌고 다녔다. 마루에서 우물에 갈 때도 챙겨 들고 다녔던 기억. 11시 무렵이면 우체부가 왔다. 그 시간쯤 되면 목을 빼고 우체부를 기다렸던 기억도 난다. 정확히는 오빠가 나를 서울로 데려가겠다는 소식을 기다렸다. 밤낮으로 라디오를 옆에 끼고서.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의 가요 방송에서 〈나 어떡해〉가 흘러나왔다, 첫 대학가요제의 대상곡이라고 했다. 시골 마을에서 무심코 라디오를 듣고 있던, 중학교를 졸업한 열여섯 살 소녀였던 나는 〈나 어떡해〉의 전주곡이 흘러나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라디오로부터 떨어졌다. 전주곡이 너무 강렬해서 나는 리듬이 아니라 라디오가 고장이 나서 펑 터지는 줄 알았다. 완전히 처음 듣는 새로운 음악이었다. 라디오가 고장이 난 게 아니라 노래의 전주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소스라쳤던 전율. 어떻게 이게 노래일까? 기타 소리는 빠르게 튕겨지며 터지고 깨지고 치솟는 느낌이었다. 그때껏 들었던 노래들의 전주곡들과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나를 당황하게 하던 전주곡이 지나가고 흘러나오는 가사의 첫마디는 또 어땠던가. ‘나 어떡해’라니.



전주곡에 충격, ‘나 어떡해’첫마디에 눈물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가나

나 어떡해 나를 두고 떠나가면

그건 안돼 정말 안돼 가지 말아


전주곡에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뻔했던 나는 내지르는 것 같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안 듣겠어 안녕이란 그 말을…’ 로 넘어갈 때는 마루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넋이 빠진 모습으로 〈나 어떡해〉에 빠져들었다. ‘나 어떡해’의 반복되는 후렴구는 한밤중에 천둥소리를 듣는 것처럼 겁까지 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대신 외쳐 주고 있는 듯했다.


나는 다음 날부터 그 노래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카세트도 카세트 테입도 없던 때였다. 그때 내가 노래를 배우는 방법은 라디오를 통해 처음 듣고 그 노래가 마음에 들면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노트에 가사를 받아 적는 것이었다. 한 번에 다 적지 못하니 띄엄띄엄 적어두었다가 다음에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또 나오면 빈 곳을 메꾸고 메꾸는 과정을 통해 가사를 익히고 리듬을 익혔다. 그렇게 익힌 노래들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느 때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안에서 흥얼흥얼 새어 나와서 멈칫하게 만들기도 한다.


고등학교 진학을 못 하고 무료하게 시골집 마루에 앉아서 우체부를 기다리다가 〈나 어떡해〉를 처음 듣고 자지러지듯 놀란 나는 다음 날부터 라디오의 가요 방송 시간이 되면 더 가까이 라디오 옆에 있었다. 서울의 오빠가 보내올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방송에서 그 노래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간절했다. 다행히도 〈나 어떡해〉는 첫 대학가요제 대상곡이어서인지 아니면 그때까지와는 다른 노래 기법 때문인지 인기가 많아서 자주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뒤늦게야 그 노래를 부른 그룹의 이름이 샌드페블스라는 것,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학생들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의 오빠에게서 그해 6월 11일에 서울로 오라는 편지를 받을 때까지 내 입안에선 시도 때도 없이 〈나 어떡해〉가 흘러나왔다. 못 믿겠어 떠난다는 그 말을. 안 믿겠어 안녕이란 그 말을. 나 어떡해, 나 어떡해, 나 어떡해, 나 어떡해…….



“나 어떡해”따라 부르며 살아낸 서울



1970년대 서울역 모습 (이미지 출처: 국가기록원)

1970년대 서울역 모습 (이미지 출처: 국가기록원)



그해 시골집의 모내기를 마친 6월 11일 밤 11시 57분 기차를 타고 나는 그 시골 마을을 떠났다. 종일 논에서 일한 고단한 엄마의 손을 잡고 신새벽에 서울역에 도착해 광장으로 나와 시계탑 건너편의 대우 빌딩을 처음 보았다. 서울도 처음이었고 서울역 광장도 처음이었으며 광장 건너편의 높다란 빌딩도 처음 대면했다. 괜히 주눅이 들어 성큼 앞서 걷는 엄마 옷자락을 꼭 잡고 놓지 않는 나를 돌아다보는 엄마에게 “무서워…” 라고 하고 있는데 시계탑 근처에서 기차에서 내리는 새벽 손님들을 위해 식빵 사이에 계란 후라이를 끼운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리어카에서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그 새벽에 〈나 어떡해〉가 흘러나왔다. “못 믿겠어, 떠난다는 그 말이… 나 어떡해, 나 어떡해, 나 어떡해, 나 어떡해에에…”하면서 높아지는 그 고음을 나도 속으로 따라 부르며 이 도시로 들어왔던 그날의 기억.


직업 훈련원? 조금 다른 이름이었을 수도 있다. 밤기차를 타고 나와 동행했던 엄마는 독산동에 있던 그곳에 나를 두고 자꾸 뒤를 돌아보며 시골로 다시 내려갔고, 오빠는 그곳에서 내가 여러 기술을 익히는 몇 개월 동안 주말마다 면회를 왔다. 되짚어 보면 그도 겨우 스물셋이었던 때다. 스물셋의 오빠는 열여섯의 여동생을 주말마다 직업훈련원에서 데리고 나가서 서울의 밥을 사 주었다. 돼지 불고기일 때도 있었고 만둣국이었을 때도 있었다. 오빠는 ‘산업체특별학급’이란 이름을 단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산업체에 취직을 먼저 해야 해서 이런 과정을 겪는 거라고 일러 주었다. 그렇게 몇 개월간의 연수를 마친 나는 구로동에 있던 스테레오 회사 A라인의 1번으로 취직을 했다. 스테레오를 만드는 컨베이어 벨트는 쉼 없이 돌아가서 내 맞은편으로 당도할 때는 완성품이 되어 있었다. 내 맞은편은 검사실이었다. 검사원은 품질이 제대로 완성되었는지를 시험하곤 했는데 그가 스테레오의 볼륨을 올릴 때면 소리가 커지고 줄일 때면 소리가 작아졌다. 나 어떡해, 는 그때도 자주자주 흘러나왔다. 그가 볼륨을 높이면 나 어떡해, 는 외치듯이 높아졌고 그가 볼륨을 줄이면 나 어떡해, 는 자지러들 듯이 작아졌다.



앞으로도 계속될, 도리 없는 상실감들을 메워 줄



상실감

상실감



그렇게 몇 개월 후에 나는 드디어 고등학생이 되어 오후 5시면 학교에 가기 위해 회사의 A라인 1번의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곤 했다. 그때마다 내 입속에서 습관적으로 흘러나오던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가나.’ 세월이 흘러서 가끔 그 노래를 일부러 찾아서 들어볼 때가 있는데 들을 때마다 나 어떡해, 는 새로운 의미로 들린다, 처음 들었을 때 같은 충격은 아니지만 지금 들어도 막 지어 내놓은 새 노래처럼 현재형을 느끼며 동시에 세련미를 느낀다. 오래된 옛 노래 같지가 않다. 들을 때마다 수많은 의미들을 잃고 또 잃고 하면서도 살아가는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게 한다. 열여섯이었을 때 기다려야 했던 것들, 잃어야 했던 것들. 그때는 그게 가장 큰 고통이고 상실이었을 테지. 그로부터 사십 몇 년이 흐른 후에도 발밑에는 딛고 나아갈밖에 도리가 없는 상실이 켜켜이 기다리고 있음을 느낀다. 살아 있는 한 잃어 버릴 수밖에 없음을 실감하는 나날들. 그랬구나, 그렇기도 한 것이었구나. 〈나 어떡해〉를 나도 모르게 불러 보곤 했던 수많은 세월을 돌이켜 보니 나 어떡해, 나 어떡해…라고 노래를 따라 외치고 나면 메울 길 없는 어느 틈을 그러라지, 두고 보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같았구나. 너덜너덜하게 해진 마음이 여며지는 것도 같았구나. 그것에 의지했던 것이구나.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구나, 싶다.



[당신은 어떤‘가요’] 지금도 새롭게 들리는 〈나 어떡해〉

- 지난 글: [당신은 어떤‘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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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소설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 우화」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소설집 『겨울 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 『오래전 집을 떠날 때』 『딸기밭』 『종소리』 『모르는 여인들』, 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리진』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아버지에게 갔었어』, 짧은 소설집 『J이야기』 『달에게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자거라, 내 슬픔아』와 한일 양국을 오간 왕복 서간집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등이 있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을 비롯해 41개국에 번역 출판된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작품들이 영미권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 등에 출판되었다. 국내에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호암상 등을 받았으며, 『외딴방』이 프랑스의 비평가와 문학기자가 선정하는 ‘리나페르쉬상’을, 『엄마를 부탁해』가 한국 문학 최초로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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