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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고 있는 것

-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

이민진

2022-10-05

내가 찾고자 하는 게 책에 없다는 걸 알면서 계속 타인의 삶을 엿보고, 내가 마주한 혼돈을 쓰고 있다. 

그렇게 소설적 순간을 경험하며 삶을 느끼는 감각을 되찾아가고 있다. 

이 순간에도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일상의 고유한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하여. 

 

 

 

삶의 방향을 잃다

당신의 일상은 규칙과 습관으로 돌아간다. 주중에는 종일 직장에 있고, 주말에는 밀린 청소를 하고 가끔 친구를 만난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월급날이 된다. 새 옷과 학원, 무미한 일상에 추가할 수 있는 것들이 떠오르지만, 동시에 얼마 전에 한 부모님과의 통화가 떠오른다. 당신은 하고 싶은 것들을 미루고 적금을 붓는다. 그 돈으로 작은 위기를 무마하며 일상을 이어가던 어느 날, 낡은 아파트 수도관이 터진다. 업자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천장을 살피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 당신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얼마 안 가 다른 게 고장 날 텐데. 그 사실을 의식하자 모든 게 지겹고 버거워진다. 당신은 끼니를 거르고, 친구와의 연락을 무시하고, 지저분한 방안에 누워 주말을 탕진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모자를 눌러 쓰고 밖으로 나가지만, 가야 할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 복잡하게 얽힌 지하철 노선도를 바라보던 당신은 발길을 돌린다. 이불과 꿈,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곳으로. 그렇게 당신의 삶이 멈춘다.

 

혼돈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 하는 시기의 문제다.

- 룰루 밀러, 정지인 옮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 출판, 2021), 15쪽

 

부언하자면 혼돈은 인생에 몇 번이고 찾아올 수 있으며,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때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세운 질서—일상부터 인생의 목적, 방향성, 가치관 등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혼돈과 함께 찾아온다. 철학적인 난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요청이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왜 무의미한 삶을 지속해야만 하는가. 인생의 방향감각을 잃고 멈춰버린 자신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한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각 (출처:UNSPLASH)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각 (출처:UNSPLASH)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전문기자인 룰루 밀러가 인생에 혼돈이 들이닥친 시기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생물분류학자의 삶을 파헤치며 돌파구를 찾는 이야기다. 과학자인 아버지는 일찍이 그녀에게 인생의 진실을 알려줬다. 우주에서 ‘나’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으며 ‘나’의 인생도 또한 무의미하다고. 다소 허무주의적인 시각 덕분에 아버지는 도리어 대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나 그건 아버지의 관점과 태도였다. 진실은 어린 소녀에게 의문을 남겼다. 모든 게 무의미한데 왜 매일 학교에 가고 숙제를 해야 할까. 룰루 밀러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직접 찾아야 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표지  (출처:교보문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표지 (출처:교보문고)


 

1906년 어느 봄날, 지진이 발생했다. 새로운 어종을 수집하고, 학명을 부여하고, 범주화하던 생물분류학자는 지진으로 인해 평생 수집한 어류 표본을 잃게 된다. 하지만 그는 운명을 탓하거나 낙담하는 대신 바로 폐허에서 쓸 만한 표본을 건져내고, 보다 안전한 보관법을 고안해낸다.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화에서 본 건 자연의 불가항력적인 힘에 끈질기게 저항하는 인간의 의지와 어리석음의 표상이었다. 자연이 얼마나 신비롭고 위대한지,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잘 알면서 그는 어떻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을까. 실패하리란 걸 알면서 도전하는 무모함 혹은 인내심. 그녀가 그의 삶에서 찾았던 건 불가해한 동력의 비결이었다.

 

친구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추천한 건, 무언가를 찾아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던 시기였다. 혼돈이 내 인생에 들이닥친 건 처음이 아니었다. 중학교 자퇴를 시작으로 혼돈을 마주할 때마다 내 이력서에는 공백이 생겼다. 혼돈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러 종교를 기웃거리고 철학과 정신분석학 서적을 뒤적이다가 정착한 게 문학이었다. 문학에 답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다들 그냥 산다는데, 대체 ‘어떻게’ 사는 걸까. 문학작품에는 다양한 인물의 삶이 있었고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커닝하듯 타인의 삶을 엿보았다.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며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진실과는 별개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선 의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언제 죽음이 자신의 번호를 호명할지 모르는 불안과 긴장 속에서 운 좋게 죽음을 면한 이들에게 의문이 남았다. 이렇게 목숨을 연명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과연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기약 없는 수용소 생활에 삶의 의지를 상실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혼이 먼저 죽고 육체가 따라 죽는 일들이 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생사 여부를 모르는 가족을 위해서, 과거의 삶을 되찾고 싶어서, 그저 생존본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빅터 프랭클의 경우, 수용소에서 압수당한 원고를 완성하겠다는 일념이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 표지 (출처: 교보문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 표지 (출처: 교보문고)

 

 

필연적 실패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파헤치던 룰루 밀러는 결국 불가해한 동력의 비결을 알아내지만 그녀가 기대했던 게 아니었다. 객관적 사실과 과학적 진리를 추구하는 줄 알았던 생물분류학자에게서 발견한 건 자기합리화와 거짓, 그릇된 신념이었다. 그리고 인류를 진보로 이끌어야 한다는 우생학적 소명으로 인해 삶이 파괴된 수천 명의 부적합자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그녀는 예상치 못한 것을 얻는다. 그때까지 얽매여 있던 진실의 허구성.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무한히 많은 관점 중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나’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다는 아버지의 말을 반박하게 된다. 나는, 우리 모두는 중요하다고. 그녀는 고정관념이라는 안온한 울타리 너머 자유와 격랑이 있는 혼돈의 바다로 뛰어든다. 그녀가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목에서 먼저 밝히듯 이 과학 에세이의 묘미는 메시지의 특별함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다. 룰루 밀러의 가족, 유년의 일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파헤치게 된 계기와 조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그러면서 얻게 된 진실과 사랑. 이 책은 룰루 밀러의 인생 이야기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52쪽)는 그녀가 찾은 혼돈을 마주하며 사는 방식이었다. 매 순간 무지한 상태로 세계를 마주하는 건 이 책의 결말과 같이 고귀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불안감과 두려움, 좌절감의 연속이다. 우연, 혼돈을 지배하는 왕이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듯 룰루 밀러에게 사랑을 선사하는 결말이 소설처럼 여겨지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혼돈이라면 분명 그게 끝이 아닐 테니까.

 

 

내가 혼돈의 시기를 지나는 방법

나의 질문은 여전히 미답 상태다. 나는 책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 애초에 내가 찾는 건 내 인생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지금까지 내가 문학작품에서 본 건 다들 그렇게 산다고 일반화할 수 없는 고유한 삶이었다. 공감하고 위안과 용기를 얻고, 유의미한 삶의 태도를 배울 수는 있어도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이라는 코너 제목을 듣고 떠오르는 소설이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간 본 수많은 인물 가운데 나의 서투름을 대변해준 인물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그때만 해도 소설을 쓸 거라고 예상치 못했지만. 기대치 않았던 것을 얻는 것이야말로 인생과 독서의 즐거움이라고 말하기에 나는 아직 하수다. 여전히 삶이 혼란스럽고 두렵다. 하지만 모르지 않는다. 인생사 새옹지마.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불행을 상쇄할 만한 좋은 일들이 있다는 걸. 다만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미 이전의 것, 작고 단단하고 반짝이는 삶의 비늘들. 내가 지금 찾고 있는 건 혼돈의 시기에 나를 붙잡아주는 순간들이다.

 

 

자기만의 창 (출처:UNSPLASH)

자기만의 창 (출처:UNSPLASH)


 

올해 초만 해도 나는 다소 안일한 마음이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려운 시기를 버티는 나름의 대처요령이 있었다. 하지만 혼돈은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무너트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이전에 안정감과 즐거움, 성취감, 충만감을 느꼈던 것에서 더는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기존의 방식이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서야 나는 인생의 모든 것을 재탐색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말해 보게. 자네 오늘 기뻤나?” 

우리 모두 똑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 사람이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아니야.”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으로 천천히 그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 빅터 프랭클, 이시형 옮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청아출판사, 2005), 154쪽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예술이 우리의 기쁨과 삶에 대한 허기를 늘리기도 한다는 것. (…) 아무런 가치를 보여주지 않았을지언정 예술만큼 가치 있는 것이 없었다.

- 리디 살베르, 백선희 옮김, 『저녁까지 걷기』,(뮤진트리, 2021), 211쪽

 

한때 마주하는 게 두려웠던 세상은 점점 익숙해지더니 친한 사람이 낯설어 보이듯 미지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다. 이제껏 그래온 것처럼 나는 여전히 문학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게 책에 없다는 걸 알면서 계속 타인의 삶을 엿보고, 내가 마주한 혼돈을 쓰고 있다. 그렇게 소설적 순간을 경험하며 삶을 느끼는 감각을 되찾아가고 있다. 이 순간에도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일상의 고유한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하여. 예측 가능한 삶에서는 예상 가능한 장면만 있을 거라고 되뇌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뻔한 소설이 얼마나 시시한지 상기하면서 내가 찾는 건 인생의 속내 같은 게 아니다. 계속 보고 싶게 만드는 찰나의 표정이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우리가 찾고 있는 것

- 지난 글: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팬데믹은 잃어버린 시간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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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

소설가
2016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장식과 무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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