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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더 이상 로맨스가 아니다

- 장르 문화 속 인문 찾기 -

손진원

20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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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화 속 인문찾기는? 흔히 웹툰, 웹소설, 만화, 게임 같은 장르와 이들 장르가 사용하는  맨스, 추리, SF, 스릴러, 무협, 코미디같은 패턴 등을 아울러 ‘장르문화’라고 부른다. 이상한 것은 이들 ‘장르문화’가 점점 큰 인기를 얻고 산업적으로도 크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아직 예술작품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교과서, 언론 등에서도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점이다.  이에 이미 일상과 문화 곳곳에 깊숙이 파고든 다양한 장르문화 콘텐츠들과 그 속에 숨어있던 인문적 가치와 요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새롭게 발굴해 함께 나눠보려고 한다.


요즘의 로맨스 작품은 안전하고 이상적인 관계,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관계가 어디까지인지 묻는다. 제목부터 지리멸렬한 관계를 끊어버리고 새 출발을 예고하는 듯한 〈재혼 황후〉나, 최근 화제작인 〈내 남편과 결혼해줘〉까지 이제 로맨스는 마초적이거나 답답한 남자 주인공을 참아내지 않고 과감히 인생에서 지운다. 판타지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작품들 역시 대부분 비슷하다.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동시에 성공적인 연애를 다룬다.



오해 불러일으키기 쉬운 “로맨스=사랑 이야기” 공식



최근 몇 년간 큰 인기를 모은 국내 로맨스 소설들 왼쪽부터 〈김비서가 왜 그럴까〉(정경윤), 〈재혼 황후〉(알파타르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은궐), 〈해를 품은 달〉(정은궐) (이미지 출처: 알라딘)

최근 몇 년간 큰 인기를 모은 국내 로맨스 소설들
왼쪽부터 〈김비서가 왜 그럴까〉(정경윤), 〈재혼 황후〉(알파타르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은궐), 〈해를 품은 달〉(정은궐) (이미지 출처: 알라딘)



‘로맨스’라는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아마 저 단어를 듣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단어 자체가 가진 의미만 생각한다면 로맨스는 곧 사랑 이야기인 것이 맞다. 그런데도 굳이 ‘오해’할지 모른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따로 있다.


최근 웹소설 시장의 성장과 함께 로맨스 장르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웹소설이나 로맨스에 대해 잘 모르는 이라도 〈김비서가 왜 그럴까〉(정경윤), 〈재혼 황후〉(알파타르트)라는 작품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동명의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2018년에 큰 인기를 끌었고, 광고에서 배우 수애의 짧지만 강렬한 연기를 통해 널리 알려진 네이버 웹소설 〈재혼 황후〉는 서양풍 중세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영상화된다고 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다. 최근의 웹소설 로맨스 작품 가운데 소설로 흥하기 전에 이미 영상화되어 이목을 끈 것을 떠올려 본다면 〈해를 품은 달〉(정은궐),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은궐, 드라마 제목은 〈성균관 스캔들〉), 〈커피 프린스 1호점〉(이선미) 등이 있겠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로맨스 장르를 남녀의 연애사를 담은 밝고 대중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매체적 차이를 차치한다면 로맨스와 로맨틱 코미디 간의 장르적 유사성은 자명하다. 대표적으로 이런 이야기 구조를 들 수 있다. “한 여성과 남성이 어떤 계기로 만난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낭만적인 사랑을 이룬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된 독자와 시청자는 여성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은 대개 현재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먹힐 만한’ 인물로 그려진다.



‘감성적’, ‘판타지’ 비판 속 로맨스의 강한 생명력



로맨스는 이런 장르적 특징 때문에 수없이 비판받았다. 사랑 이야기는 시시하고 흔해 빠진 것인데 여기에 잘난 남자에 대한 판타지까지 투영했다는 것이다. 여주인공이 별 볼일 없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능력있고 매력적인 남자와 이어진다는 내용 때문에 신데렐라 스토리의 복사판이라며 손가락질 당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비판은 이런 이야기를 창작하고 소비하는 여성의 문제로 이어지며 마무리된다. 로맨스가 필요 없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된다. 로맨스를 읽거나 쓴다는 것은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이어서 ‘나쁘다’고 비판받았던 여성성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페미니즘 리부트(reboot) 시대에 남자와의 달콤한 사랑을 그린다는 것은 현실과 판타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로맨스는 읽힌다. 현재 로맨스 장르를 가장 많이 언급하는 곳은 아마 인터넷 언론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웹소설의 상업적 성공과 함께 경제적 가치와 대중성이라는 말로 로맨스 붐 현상을 소개할 뿐이다. 다시 말해 로맨스가 잘 팔린다는 소문만 무성하고, 왜 많이 읽혔는지 그 이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로맨스에 대한 오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로맨스는 시시하면서도 천박한 사랑 이야기가 맞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로맨스는 그런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로맨스를 전혀 읽지 않은 이도, 때로는 열렬한 독자 자신도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그래서 일부러 오해라는 다소 범박하고 거친 단어를 사용해 과감히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의 로맨스는 더 이상 로맨스가 아니다.”



‘할리퀸’이 ‘하이틴 로맨스’로… 로맨스 소설 변천사



캐나다의 로맨스 소설 전문 출판사 ‘할리퀸’ 공식 사이트 모습 (이미지 출처:  할리퀸)

캐나다의 로맨스 소설 전문 출판사 ‘할리퀸’ 공식 사이트 모습 (이미지 출처:  할리퀸)



한국 로맨스 소설은 그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거나 1990~2000년대에 도서 대여점을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할리퀸 로맨스’라는 한 손 크기의 얇고 작은 책 시리즈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캐나다의 할리퀸(Harlequin) 출판사는 1950년대부터 영국 로맨스 소설을 소개함과 동시에 각 카테고리별로 매우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진 짧고 굵직한 로맨스 소설을 펴내기 시작했다. 캐나다와 미국의 주부를 대상으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며 로맨스 소설의 매력을 퍼뜨린 이 출판사는 곧 해외 시장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었다. 1990년대까지 100여 개 나라에서 3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할리퀸이라는 고유 명사는 곧 로맨스 소설의 동의어로 받아들여졌다.1)

1) 할리퀸 로맨스는 현재까지 활발하게 로맨스 소설을 출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번역·발간되고 있으며 2021년 7월 현재, 정식 판권을 가진 신영미디어에서 정기구독 시 매달 8권의 종이책을 받아볼 수 있다. (할리퀸 공식 사이트: http://www.harlequin.com)



1980년대 큰 인기를 모았던 삼중당 출판사의 ‘하이틴 로맨스’ 신문 광고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1980년대 큰 인기를 모았던 삼중당 출판사의 ‘하이틴 로맨스’ 신문 광고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할리퀸 로맨스는 70~80년대 한국의 문고본 열풍에 편승해 ‘하이틴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삼중당 문고’ 시리즈를 냈던 삼중당 출판사가 펴낸 이 시리즈는 83년에서 84년 즈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해외에서는 주부를 대상으로 했으나, 하이틴 로맨스라는 시리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는 중고교 여학생을 겨냥했다. 대부분 아름다운 백인 여성 주인공이 굴지의 대기업 CEO나 중동의 왕자, 혹은 온갖 육체미를 자랑하는 마초적인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키스신 이상의 스킨십 장면과 주말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다각 관계, 다이내믹한 막장 스토리로 유명했다. 가뜩이나 성에 민감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출간된 터라, 할리퀸 로맨스는 “저질 출판물”의 하나로 여겨졌다.2)

2) 1990년대 출간된 청소년 대상의 성교육 책자들은 할리퀸 로맨스를 "성행위를 선정적으로 묘사"해 성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조장하고, "서구의 황금만능적·쾌락적·이기적 사고방식을 주입"해 "외모를 중시하고 이혼의 자유를 주장하며 성개방과 부에 대한 선망을 유도"하는 "저질 출판물"이라 평가한 바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국 편저, 『성교육 교과서』, 동지, 1990, 178쪽.



현대의 연애와 사랑, 그리고 여성의 섹슈얼리티의 문제



낭만적인 연애의 모습

낭만적인 연애의 모습



요즘이야 웹소설 로맨스가 주목할 만한 지적 재산권(IP)으로 인정받고 있다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혹은 지금도) 로맨스 창작과 독서 행위 자체는 남에게 부끄러운 것이었다. 장르 문학으로 분류되는 판타지나 무협도 “저질 출판물”의 하나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로맨스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로맨스, 그러니까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이 장르는 사회가 인정하는 연애와, 사랑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는 물론 성애의 문제까지 다루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자와 창작자 모두 여성으로 알려진 로맨스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았던 여성의 성적 취향과 욕망을 다뤘다는 점에서 섹슈얼리티의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요컨대, 할리퀸 로맨스 장르의 독서 열풍은 단순히 세속적이고 자극적인 서사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서구 주부들에게 인기 있던 소설이 한국의 10대 여학생에게 통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서 정상이라고 여기며 일반화했던 연애와 사랑 그리고 결혼의 문제는 물론 여성성·남성성의 코드와 쉽게 접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할리퀸 로맨스 소설의 광고가 대대적으로 실렸던 『여학생』이나 『여고시대』와 같은 잡지를 보면, 육욕에 가까운 남성의 사랑과 다르게 인격적 애정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할리퀸 로맨스 작품이 직간접적으로 주장하는 바와 일치한다. 부와 명예,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정상적인 애정의 표현 방식만은 얻지 못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사랑 방식에 감화되어 길들여지는 것. 이것이 할리퀸 로맨스가 표현한 연애와 사랑의 방식이자 당시 사회가 인식한 남성성·여성성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연애를 위해 자신의 취향을 점검하고 자신의 성적 매력까지 고민하며 ‘실질적인 연애 기법’을 배워야만 했던 여성들에게 할리퀸 로맨스는 사회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랑의 모습을 확인하는 지침서이자, 역설적으로 그것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3) 당시 독자들이 일반적이라 여기던 사랑의 이미지와 할리퀸 로맨스 작품의 서사가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현재 로맨스 소설을 분석할 때도 고려해야 하는 요소다.

3) 1980년대 할리퀸 로맨스와 관련한 연구로 참조할 만한 논문은 아래와 같다. 이주라, 「삼중당의 하이틴 로맨스와 1980년대 소녀들의 사랑과 섹슈얼리티」, 대중서사학회, 『대중서사연구』 25권 3호, 2019, 67~99쪽; 손진원, 「1980년대 하이틴 성교육 콘텐츠와 할리퀸 로맨스 연구」,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59호, 2020, 501~551쪽.


실제 독자의 섹슈얼리티 또한 할리퀸 로맨스의 서사가 구현해 낸 것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할리퀸 로맨스에서 구현되지 않은 한국 독자들의 섹슈얼리티는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는데, 그중 하나로 한국 로맨스의 탄생을 들 수 있다. ‘할리퀸 로맨스’의 정식 판권을 가진 신영미디어는 1996년부터 공모전을 열어 문고본 판형의 한국 로맨스 소설을 펴냈다. 그 후 이 공모전은 물론이고, PC 통신과 온라인 소설 게시판을 통해 로맨스 소설 작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나 실제 현실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등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사랑의 모습은 물론, 독자 개개인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 만족시키는 작품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로맨스의 창작과 독서 행위를 쉬쉬하면서도, 장르 자체는 대중에게 강하게 다가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지금까지 로맨스의 궤적을 살펴보면 비슷하게만 보이는 사랑 이야기가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남녀 관계에 대한 여성들의 생각과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첨예하게 다루는 작품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4)

4) 동시대 혹은 이전 시대 로맨스를 읽은 독자의 반응을 살펴보는 비평에서는 연애와 사랑의 문제는 물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면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로맨스 판타지와 19금 로맨스 등 다양한 웹소설 작품을 소개하며 현재 한국 여성의 생각과 욕망의 문제를 다루는 비평글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19금 로맨스에 대한 비평으로는 『비주류 선언』(텍스트릿 엮음, 요다, 2019)에 게재된 「신음 소리에 담긴 한국 여성의 욕망」(정다연, 116~134쪽) 이 있으며 로맨스 판타지 비평집으로는 『어느 날 로맨스 판타지를 읽기 시작했다』(안지나, 이음, 2021)이 있다. 그리고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491호부터는 웹소설 로맨스/로맨스 판타지, 판타지, 무협, BL 작품을 번갈아 다루며 이 작품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소개하고 있다.



바람직한 관계 고민, 주체성 강조… 확 바뀐 지금의 로맨스



로맨스는 여성의 적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젠더 이슈가 불거지는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현실과 비교했을 때 로맨스가 그려내는 행복한 연애와 사랑의 장면이 굉장히 허황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나온 국내 로맨스를 살펴보면 생각이 조금 바뀔지도 모르겠다. 앞에서도 소개한 할리퀸 로맨스와 비교해 보자.


우선 할리퀸 로맨스 작품들이 표방했던 주제 의식은 사회적으로나 작품 자체로도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마초적인 남성 인물이나, 감정적이고 인격적인 애정을 무한정 내줄 수 있는 여성 인물은 지금의 로맨스 독자에게 ‘빈티지’한 것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런 등장인물은 일종의 취향으로만 여길 뿐, 더 이상 그것이 이상적이라거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로맨스는 다양한 취향을 포괄함으로써 현실의 결핍을 상쇄한다. 이는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욕망만이 아닌, 보다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고민에까지 닿아 있다.


2015년 이후 강남역 사건, 미투 운동과 같은 권력형 성폭력 고발, 불법 촬영이나 N번방 같은 이슈를 겪고, 이상적인 것은 둘째치고 안전한 남녀관계 자체가 가능한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요즘의 로맨스 소설들은 새로운 남녀 관계에 대한 고민, 여성의 주체성 등을 내세우고 있다.  〈재혼 황후〉(알파타르트)(좌)와 〈내 남편과 결혼해줘〉(성소작)(우) (이미지 출처: 알라딘, 네이버 시리즈)

요즘의 로맨스 소설들은 새로운 남녀 관계에 대한 고민, 여성의 주체성 등을 내세우고 있다.
〈재혼 황후〉(알파타르트)(좌)와 〈내 남편과 결혼해줘〉(성소작)(우) (이미지 출처: 알라딘, 네이버 시리즈)



요즘의 로맨스 작품은 안전하고 이상적인 관계,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관계가 어디까지인지 묻는다. 단적인 예지만, 제목에서부터 지리멸렬한 기존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새 출발을 예고하는 듯한 〈재혼 황후〉(알파타르트)나, 최근 화제작인 〈내 남편과 결혼해줘〉(성소작)까지 이제 로맨스는 마초적이거나 답답한 남자 주인공을 할리퀸 시절처럼 참아내지 않고 과감히 이별할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지운다. 회귀, 빙의, 환생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작품들 역시 대부분 비슷하다.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동시에 성공적인 연애를 다룬다.


로맨스는 연애와 사랑 그리고 그 종착지로 여겨지는 결혼에 대해 창작자와 독자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더 나아가 이 장르의 주요 독자인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하고 논할 수 있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의 사랑은 개인의 삶에 서사를 부여하여, 타자와 나의 관계를 끊임없이 고민하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이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통제권을 가지기 위한 것이다.5) 오랜 시간 그 탐색을 도왔던 로맨스는 단순히 사랑만을 논하지 않는다. 로맨스라는 말에서 그동안 기대했던 것, 즉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그저 외피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현재의 로맨스는 가장 첨예하게 로맨스가 아닌 지점을 고민하고 파고드는 장르인 것이다.

5) 앤서니 기든스, 배은경·황정미 옮김, 『현대 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 새물결, 2003(2판), 77~80쪽.



[장르 문화 속 인문 찾기] 로맨스는 더 이상 로맨스가 아니다

- 지난 글: [장르 문화 속 인문 찾기] SF에서 전망한 인간 진화의 두 가지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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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원
손진원

장르 연구자, 웹소설 작가
장르비평팀 텍스트릿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저로 『글 쓰는 여자는 위험하다』, 『비주류 선언』, 『블레이드 러너 깊이 읽기』를 썼으며, TRPG 『안녕이라 하기 전에』와 인터랙티브 픽션 『B사감 : The New World』 프로젝트 제작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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