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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정리는 왜 필요한가?

- 이달의 질문 -

김정한

2023-01-19

영화 <인터프리터>(The Interpreter, 2005)는 아프리카의 무토보라는 국가에서 일어난 인종 학살이 배경이다. 유엔 통역사인 실비아 브룸(니콜 키드만)이 학살 책임자인 무토보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음모에 관해 누군가 아프리카 소수 언어로 말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되면서, 학살과 암살 음모의 진실을 찾아나가는 이야기이다. 우리에게도 학살자가 대통령이라는 설정이 낯설지 않고, 그를 국제 재판소에 세워 법정에서 처벌해야 하는가, 아니면 학살자를 암살과 같은 방법으로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하는 윤리적 문제까지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다. 영화는 실비아 브룸이 유엔 통역사라고는 해도 어떻게 아프리카 소수 언어까지 알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그녀가 아프리카 출신으로 해방 투쟁에 투신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긴장감을 더해간다.

 

 

복수는 애도의 게으른 형태

이 영화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녀 자신이 실은 암살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 시작할 때, 그녀가 내놓는 대답이 매우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복수는 애도의 게으른 형태죠.” 암살과 같은 사적인 복수는 학살 사건에 대한 진정한 애도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사적인 복수나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 진정한 애도를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려는 방식이 과거사 정리(settlement)이다. 

 

흔히 ‘과거사 청산’이라고도 하지만, ‘청산’이란 용어는 마치 과거 역사의 오류를 완전히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다는 어감을 주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아무 갈등이 없는 절대적으로 청결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는 대개 파시즘으로 귀결했다. ‘과거사 청산’의 관점에서는 구조적‧제도적 문제들을 살피고 그것을 수많은 갈등 속에서 꾸준히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잘못을 범한 특정 인물들을 사회에서 제거하거나 격리하는 것을 해결책이라 여기기 쉽다. 그 또한 애도의 게으른 형태일 것이다.

 

 

과거사 정리의 반복과 곤경

과거사 정리는 국가폭력에 대한 진실‧진상 규명,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배상‧보상, 가해자의 책임 규명과 처벌, 추모‧기념 공간 조성 등으로 이루어진다. 국가폭력은 국가권력이 국민에게 행사한 폭력이라는 의미에서 ‘국가 범죄(state crime)’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민주주의로 이행한 이후에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국가폭력과 부정부패를 밝히고 처벌하여 정의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라고 부르기도 한다. 

 

 

왼쪽부터 4.3 평화공원의 행방불명인 표석, 여순 사건 만성리 학살지 위령비, 거창 학살 추모공원 위령탑 (출처: 저자 제종)

왼쪽부터 <4.3 평화공원의 행방불명인 표석>, <여순 사건 만성리 학살지 위령비>, <거창 학살 추모공원 위령탑> (출처: 저자 제공)

 

 

왼쪽부터 사북 뿌리공원의 사북항쟁 표석, 옛 광주교도소 건물 (출처: 저자제공)

왼쪽부터 <사북 뿌리공원의 사북항쟁 표석>, <옛 광주교도소 건물> (출처: 저자제공)

 

 

일제 식민지, 해방 후 좌우대립,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 쿠데타와 군사독재 등을 겪은 한국 사회는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과거사 정리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수많은 역사 갈등들을 적절히 풀어내지 못하고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과거사 정리를 위한 시도들은 반복해서 지체되었고 사회적 비용과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과거사 정리는 왜 필요한가? / 질문자 – 김정한(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Q.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거사 정리가 왜 필요한가, 과거사 정리를 위해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과거사 정리는 왜 필요한가?

 

 

 

 

1월 [이달의 질문] 과거사 정리는 왜 필요한가?

- 지난 글: 12월 [이달의 답변] 우물 탐구하기와 우물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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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 서강대학교 연구교수 사진
김정한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실천문학 편집위원, 문화과학 편집위원, 국방부5.18특별조사위원회 민간조사관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현대정치철학연구회>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대중과 폭력: 1991년 5월의 기억』,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제7회 일곡유인호학술상 수상), 『비혁명의 시대: 1991년 5월 이후 사회운동과 정치철학』, 『너와 나의 5.18』(공저), 『역사에서 기억으로: 침묵당한 목소리를 불러내다』(공저)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5.18 항쟁 시기에 일어난 일가족 살인 사건: 전쟁, 학살, 기억」, 「5.18학살 이후의 미사(未死): 아직 죽지 못한 삶들」, 「광주학살의 내재성: 쿠데타, 베트남전쟁, 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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