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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알지 못한 틈을 메우는 일

부산 최초의 공공임대주택, 영주아파트

인문쟁이 강태호

2019-09-05


어느새 그림자가 생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높은 지대는 아니다. 백 계단 이상 오르는 건 흔한 경험이지만 무언가 달랐다. 땀이 몸을 적셨고 종아리가 뜨거웠다.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어떤 골목이든 가장 높은 곳으로 가는 길은 없었다. 오르면 평지고 내려가면 절벽인 이상한 곳이다. 


녹슨 아파트 두 단지를 돌았을 뿐이다. 가로등 불빛이 이곳의 길은 끝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50년을 버틸 수 있었던 저력은 힘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편하게 웃어주는 그들의 인상에서 느꼈다. 평온함, 단지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언덕 위에 서 있는 영주 아파트 전경

▲ 영주아파트 전경 ⓒ강태호


영주아파트는 부산광역시 영주동에 위치해있다. 아파트를 둘러싼 상황은 다소 안타깝다. 2012년 재난위험시설 D등급을 받은 이곳을 부산시가 통째로 매입하려 했으나 보상 문제와 부딪혀 무산됐다. 싸움은 길어졌으며 끝내 길을 잃고 말았다. 


영주아파트 입구 / 아파트 문구 : 3-나

▲ 아이들 웃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아파트 입구 ⓒ강태호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시민’ 아파트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영주아파트는 총 359세대 두 단지로 1969년 4월 준공됐다. 각각 4층 높이지만 동 수에 비해 세대수가 많은 편이다. 같은 해 12월 406세대 5개 동으로 준공된 부산광역시 중구 소재의 보수아파트와 더불어 자타공인 부산 임대아파트의 산증인이다. 


국내 최초라 불리는 서울 충정로의 유림아파트, 광복 후 세워진 종암아파트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외관은 상당히 낡았다. 군침 돌게 하는 김치찌개 냄새 때문일까. 겉보기와 다르게 사람 냄새가 진동한다. 부산 최초의 아파트는 1941년에 준공된 남포동의 ‘청풍장’ 아파트다. 하지만 일제에 뿌리를 두지 않은 시민아파트로서는 영주아파트가 가장 오래되었다. 


'시민' 혹은 '시영'이라 불리는 아파트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관련이 있다. 정부가 1968년 12월 발표한 아파트 공급 전략은 1971년까지 24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대규모 국책과제였다. 2천 동을 목표로 국민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단기간에 기계처럼 찍어내는 아파트가 성할 리 없었다. 날림공사에 시공사와 공무원 비리까지 쏟아졌다.


아파트 앞으로 난 골목길. 화분과 각 집의 살림살이들이 보인다.

▲ 주택가 골목길 같은 아파트 앞 통로 ⓒ강태호


각 세대 당 전용 면적은 37.55㎡ 다. 요즘은 1인 거주자가 많아 소형 면적 물량도 필요하지만 당시에도 네 명이 들어서면 비좁은 공간이었다. 방 2개에 거실과 부엌, 화장실까지 한 공간에 모두 담겨 있다는 게 놀랍다. 최초 계약금을 납부하고 최장 15년 동안 잔금을 잘 납부하면 ‘내 집’이 되는 구조였다. 입주민은 희망을 품고 살 수 있었다. 부두에서 일하고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해도 주인한테 월세 안주니 마음이 편하다는 주민도 만났다. 젊음과 맞바꿔 얻은 소중한 내 집. 무언가 힘들게 성취해본 경험이 없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다.


페인트로 칠한 영주 아파트

▲ 페인트로 덧칠한 내외부 모습 ⓒ강태호


2012년 10월 부산시는 영주아파트 입주자 대표들을 만나 8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현재의 아파트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집주인 대부분 만족했지만 세입자들의 반발은 거셌다. 짠내 나는 보상금에 오갈 데 없어진 사람들은 사업을 주도한 부산시에 항의했다.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상금은 대체로 한 집 당 4천에서 6천만 원 사이였다. 이 정도 금액에 지금보다 더 나은 집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해당 지역의 관청은 2017년 10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영주아파트를 공공임대주택으로 개발하는 업무 협약을 맺었다. 협약에 따라 LH가 사업 시행자로 참여해 주거 환경 개선 사업에 나설 예정이었다. 

게다가 이듬해 9월 국토교통부 ‘2018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영주동 일원이 포함되었다. 부산광역시는 ‘공유형 신거주문화 클라우드 영주’라는 이름으로 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영주동 도시 재생 사업에는 2022년까지 국비 85억 원 등 총 937억 원이 투입된다.


아파트 곳곳에 보이는 갈라진 '틈'

▲ 흔하게 보이는 ‘틈’ ⓒ강태호

 

영주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  생활이 창 너머로 느껴진다.

▲ 온기가 느껴지는 창살 너머 ⓒ강태호


하지만 이런 일련의 조치가 입주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일까? 가치 없는 변화란 없지만 길에서 만난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편하게 살 수 있는 것, 그들에게 그것이면 충분했다. 


최초 입주 때부터 살고 있다는 한 할머니는 “내 고향은 부산이 아냐. 시집오면서 여기 왔지. 시어머니도 모시고 살았는데 작았어도 좋았어. 남편은 공무원이야, 퇴직하고 집에 있어. 아들은 결혼해서 나갔고 이제 그냥 사는 거야”라고 영주아파트에서의 추억에 대해 말했다. 당부의 말씀도 전했다. 외부 사람 불러 올 생각 말고, 갈라진 벽이나 붙여 주고 단지 앞을 깔끔하게만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듣고 나니 여기저기 갈라진 틈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당장 필요한 건 카페에 앉아 내려다보는 영주동의 ‘레트로’한 풍경이 아니다. 미처 알지 못한 틈을 메우는 일이다. 


옆에서 본 영주아파트. 멀리 바다가 보인다.

▲ 항구와 맞닿은 영주아파트 ⓒ강태호

 

영주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본 영주동. 한눈에 동네가 들어온다.

▲ 아파트 위로 올라가 내려다 본 영주동 일원 ⓒ강태호


부산역과 남포동 중간에 위치한 영주동은 갈 곳 없는 노동자의 보금자리였다. 부두 노동자의 삶이 깃들어 있다. ‘자갈치 아지매’들도 철시 후 이곳에 고단한 몸을 뉘여 잠을 청했다. 그들에게 영주아파트는 꿈과 희망 그 자체였고, 현재의 고단함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가로등이 환하게 켜졌을 때 영주동을 내려다보았다. 마실 나온 어르신들이 평상에 모인다. 이대로가 좋다는 할머니와 가고 싶어도 갈 데가 없다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이곳에는 카페 보다 평상이 필요하다. 지금의 평온함을 지켜주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이마의 땀을 씻어주는 에어컨 보다 시원한 바람 때문일 것이다. 가끔 그 바람이 좋아 영주동을 오른다.



 

○ 참고 자료

영주동 역사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대한민국 아파트 역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도서 ‘부산 산복도로이야기’ / 산리협동조합 저

영주동 도시재생 기사 / 부산일보  

영주동 도시새쟁 기사 / 연합뉴스 

영주동 공모 당선작 뉴스 / 부산MBC 

영주아파트 철거 관련 기사 / 부산일보


○ 사진 촬영 _ ⓒ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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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강태호

2019 [인문쟁이 5기]


강태호는 인문학집필연구소 한주서가 대표 작가이다. 제10회 해양문학상에 입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입상작인 중편소설 <바다 몬스터>는 문장 아래 문장을 숨겨놓았다며 호평을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천 만 영화 속 부산을 걷는다》가 있으며 기획출판, 첨삭, 글쓰기 강의 등으로 ‘글’의 매력을 알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또한 관광, 인권, 문화제 등 공기관에서 주관하는 SNS 기자단에 참여하며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자 노력 중이다. 망각된 역사를 알리려는 의지가 강해 인문학적으로 어떤 해석을 풀어낼지 앞으로가 기대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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