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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의 염원을 담은 미륵

수효사 침향목조삼존불상과 매향 문화

인문쟁이 김경민

2019-08-27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수효사 

아마도 대부분 이전까지 들어본 적 없는 사찰일 것이다. 이 사찰은 완도의 수많은 섬 중 하나인 고금도에 위치했다. 다른 메이저급의 사찰과는 달리 꽤 최근에 만들어졌으며, 규모도 매우 작아서 관광지로서 매력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절을 소개하는 이유는 매우 독특한 사연을 가진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수효사 전경

▲ 완도군 고금면 수효사 전경. 사진의 건물들이 수효사의 전부다. Ⓒ김경민 


고금도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면사무소 근방에 다다르자 논밭 한가운데에 위치한 수효사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비포장도로를 다시 달려 수효사에 들어섰다. 절의 독특한 구조와 작고 귀여운 크기에 한 번 놀라고, 절 전체에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에 두 번 놀랐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향기를 맡고 있으니 농토 정중앙에 위치한 절임에도 불구하고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숲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상쾌함이 느껴졌다. 극락보전(極樂寶殿)에 발을 들이자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할 만큼 향기는 절정이었다. 인자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삼존불상은 마치 실제로 미륵부처님이 도래한 듯 느껴졌다. 마침 이곳에서 정진하시던 주지스님인 성일 스님을 만나 삼존불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다에서 올라온 침향(沈香) 



2011년 8월 전라남도 해남군 녹진리 해변에서 양식장 조성을 위해 수로를 만들던 정용운 씨는 약 10m 길이의 거대한 나무가 갯벌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중장비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큰 나무였다. 무척 단단하고 썩지도 않는데다 은은한 향기까지 내뿜자 그는 예사롭지 않다 여겨 평소에 시주하던 수효사에 이 나무를 기증하게 되었다. 수효사의 주지인 성일 스님은 그 전날 밤 몸 전체를 하얀 천으로 휘감은 남자 한 분이 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마치 그 모습이 미륵부처의 모습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의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이를 애써 인정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기증받은 나무로 목탑이나 아미타불을 조성하고자 이리저리 쓰임새를 궁리하던 찰나, 꿈속에서 보았던 미륵불의 형상이 그 나무에 서려 있는 것이 아닌가! ‘미륵 부처님께서 드디어 강림하셨구나’며 내심 기뻐하는 동시에 중생들을 구원하러 오신 부처님을 몰라 뵌 자신의 모습에 매우 부끄러웠다고 했다. 이후 그 나무를 정성스럽게 건조시킨 후 중요무형문화재 108호 목아 박찬수 선생에게 제작을 의뢰했고, 2017년 6월 20일 드디어 목조삼존불상을 완성하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제작 과정의 신화적인(?) 부분이다. 실제로는 기증받은 나무를 목탑으로 만들지 불상으로 만들지 논의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매향’의 목적과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매향의 취지대로 미륵불을 제작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미륵불을 제작했고, 동시에 현세, 내세의 안녕과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만들어 삼존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삼존불상을 만들고 남은 부분은 매향의 실질적인 사료로서 보존하기 위해 극락보전 옆에 두어 전시하고 있다.


 

매향 활동과 향도 



수효사 내부에 있는 목조삼존불상의 모습

▲ 수효사 극락보전 내부의 목조삼존불상. 절 전체에 퍼져있는 은은한 향기가 이 불상에서 나오고 있다. Ⓒ 김경민


매향(埋香)이란 향나무(경우에 따라 참나무)를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의 개펄에 묻어 두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게 매장된 나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철 같이 단단해지며 은은한 향이 어리는데 이를 침향(沈香)이라고 한다. 옛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매향을 했다. 하나는 현세의 구복을 위해서였고, 나머지는 사람들과의 유대를 위해서였다. 


전설에 따르면 묻은 향나무는 수백 년이 지나면 그 강도가 강철과 같아진다고 한다. 천년이 지나면 용과 같이 스스로 바다 위로 떠오르게 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화세계(龍華世界, 미륵불이 출현하는 불교의 이상향)에서 현세를 구원하러 온 미륵과 같다고 한다. 미륵은 석가모니 다음으로 등장할 부처의 이름이다. 미륵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56억 7천만년 뒤에 등장한다고 전해진다. 미륵은 세 번의 설법을 통해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들을 구원한다. 이러한 ‘메시아’적인 사상 때문에 주로 혼란스러운 시기(나말여초, 여말선초 등)에 미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미륵을 자처하는 사람도 등장했으며), 매향 활동 역시 비슷한 시기에 유행했다. 어지러운 시기에 겪는 온갖 고초와 혼란이 격화될수록 더욱 포악해지는 관리들 때문에 농민들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진다. 그럴수록 현세의 구복을 희망하고,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과 마음을 같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들끼리 모임을 만들고 상부상조하기 시작했다. 향도(香徒), 품앗이, 계(契)모임 등이 이러한 이유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향도는 매향을 위해 만들어진 공동체 조직이다. 거대한 향나무를 개펄에 묻는다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현대 중장비를 동원한다고 해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과거에는 오죽했을까.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칠 필요가 있었고, 그들이 모여서 향나무를 묻는 집단인 향도(香徒)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향도의 전통이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두레나 품앗이 등으로 발전해 나갔고 현대에도 계(契)모임의 풍습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향도들은 나무를 묻은 지역 언저리에 매향 연도 등을 기록한 매향비를 남겼다. 당연하게도 매향비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역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대표적으로 1387년의 경남 사천 매향비, 1405년 신안 암태도 매향비, 1406년 해남 맹진리 매향비 등이 문화재로서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그 실체인 침향 자체는 발견된 사례가 없었기에 수효사의 침향불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침향 조각

▲ 수효사 극락보전 옆에 위치한 침향 조각. 불상을 만들고도 이렇게 큰 조각이 남았다. Ⓒ 김경민



1700년의 염원을 담은 미륵불 



침향의 발견과 동시에 성일 스님은 대전광역시 소재의 한 업체에 탄소연대측정을 의뢰했다. 측정 결과 발견된 나무는 놀랍게도 약 17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한반도에 불교가 유입되는 약 4세기경부터 매향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침향 자체로도 국보급의 유물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성일 스님은 침향이 만들어진 이유와 목적을 깨닫고 목조삼존불상을 만들었다. 불상 자체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떨어질 수도 있으며,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스님이 기대하시는 것처럼)당장 문화재로 받아들여지긴 어렵다. 그렇지만 침향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자체로 1700년이라는 시간을 잇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는 국보급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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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권 김경민
인문쟁이 김경민

2019 [인문쟁이 5기]


1994년 6월생. 평소에 역사를 좋아해 '역사 덕후'로도 불리며 그의 가방속에는 항상 역사책이 있다고한다. 현재 '역사콘텐츠제작팀 광희'의 일원으로써 광주,전남의 역사를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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