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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반짝 유람기

진양상가 그리고 지붕없는 인쇄소

인문쟁이 김세희

2018-09-13

출근하고 커피 한 잔을 할 때마다 웅얼거렸다. 창문 너머 보이는 저 오래된 건물은 뭘까. 어느 날 동료와 도시락을 먹으며 문득 선언했다. 

"저기 보이는 저기 있잖아, 밥 먹고 가볼 거야. 같이 갈래?"


너의 이름은, 진양상가


사무실에서 저 멀리 보이는 진양상가(서울 중구 충무로4가) ⓒ 김세희

▲ 사무실에서 저 멀리 보이는 진양상가(서울 중구 충무로4가) ⓒ 김세희

 

이름도 성도 모르는 건물을 바라보며 걸었다. 앞부분은 신상 건물들 못지 않게 높고도 높았고, 뒷부분은 요즘 유행인 스트리트형 건물처럼 길고도 길었던 자태를. 드디어 걸음을 멈췄다. '진양상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지만, 고개를 들어 눈으로 하나씩 층을 오를수록 주택이라는 걸 직감했다. 진양아파트! 여행을 가면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재미가 쏠쏠한 법이기에 서둘러 올라가고 싶었지만, 어디서 어떻게 저 위로 향할 수 있는 건지 난감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양상가의 안을 어떻게 살펴보아야 할지 막막했다.


진양상가 입구  ⓒ 김세희

▲ 진양상가 입구 ⓒ 김세희


금은방들이 즐비한 1층과 혼수용품 상점들이 있는 2층을 지나 꽃집이 많은 3층에 입성하는 건 그럭저럭 괜찮았다. 보도블럭이 있는 곳에서 길만 잘 찾으면 한 번에 3층으로 껑충 들어가게 되는 신기한 연결도로를 발견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분명 꼭대기는 어림잡아 보아도 10층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 감히 마음대로 철제문을 열기가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했던 말씀. “말(言)이 서울!” 종종 듣고 자란 명언인데, 혹시 우리 가정에서만 즐겨 썼던 표현은 아닐지 모르겠다. 주변을 돌아보다가 백구와 놀고 있던 어느 아저씨에게 미소를 장전했다. 

"일단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CU편의점을 찾아. 거기 근처에 엘리베이터가 있을 거야. 여기가 17층이거든. 근데, 16층까지 타고 내려서 한 층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야 돼. 여기 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너무 사진 찍지 말고, 조용하게 알지?" 

나긋한 음성에 끌려 감탄을 연발하다가 순간 토끼눈이 되어버렸다. 엘리베이터? 이 오래된 건물에 승강기가 있다니!

 

헬기 이륙과 착륙이 가능했던 진양상가 옥상 진양아파트 꼭대기에는 고시원이 있으므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김세희

 ▲ 헬기 이륙과 착륙이 가능했던 진양상가 옥상. 진양아파트 꼭대기에는 고시원이 있으므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김세희


"대박, 대박!"을 외치며 서둘렀다. 둘 다 길치는 아닌지라 제법 신나게 옥상을 찾았고, 보물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갈 순 없었지만, 분명 헬기를 위한 공간이 분명했다. 불현듯 작년에 참가했던 '세운상가' 건축투어가 스쳤다. 여기도 예전엔 명성을 날리던 건물이지 않을까 촉이 발동했다. 60년대 건축되어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으로 엘리베이터와 중앙난방이 가능했던 곳. 영화 '도둑들'의 촬영지였다니. 참 무디기도 무디다. 어쩌면 인터넷에서 떠돌고도 남았을 시간 동안 지척에 두고 오지 않았던 셈. 남산도 을지로 일대도 시원하게 보이는 정경을 모르고 살았다는 게 부끄러웠다.


종묘와 마주한 세운상가까지 잘 보이던 날. 진양상가 - 인현상가 - 호텔 PJ - 삼풍상가 - 대림상가 - 청계상가 - 세운상가로 이어진다. ⓒ 김세희

▲ 종묘와 마주한 세운상가까지 잘 보이던 날. 진양상가 - 인현상가 - 호텔 PJ - 삼풍상가 - 대림상가 - 청계상가 - 세운상가로 이어진다. ⓒ 김세희


지붕없는 인쇄소도 있었다.


하나금박 전문점 2279-5079 / 010.3765.1106

 

오래된 검정색 인쇄기계

 ▲ 충무로 인쇄골목을 걷다가 거대한 기계의 위용에 예고없이 찾아간 곳. ⓒ 김세희

 

상가 1층에서는 주위를 살피며 안전하게 돌아다녀야 했다. 인쇄물을 배달하는 수많은 오토바이들 틈으로 걸음을 옮겨야 하니까. 전단지, 책, 브로슈어 등 각종 종이가 흩어져 있는 골목. 그러다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게 만든 상점이 있었다. 이렇게 열기 어려운 문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 옆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 분에게 민폐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마치 박물관에서나 보았을 저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듣지 않고는 집에 가서 잠이 안 올 것 같았다.' 이럴 때마다 외는 한마디 주문. ‘우리 아빠 정도의 연배로 생각하면 되지, 뭘.’ 다행히도 한창 작업 중이셨지만, 정감있게 대해주셔서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단, 배에 힘주고 목소리를 크게 내야 했다. 세월을 자랑하는 기계가 내는 소리는 역시 장엄했으니까. 

"이거보다 더 큰 기계도 있어. 이 정도 가지고 뭘. 독일제야. 여기 다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많아. 나도 이미 자식들 이렇게 다 키웠지." 

진양상가와 함께 묵묵히 인쇄업을 지켜나갔던 소상공인들. 그분들의 주름을 마주하니 절로 숙연해졌다.


인쇄로 하루하루가 저무는 충무로의 모습 ⓒ 김세희


인쇄로 하루하루가 저무는 충무로의 모습 ⓒ 김세희

▲ 인쇄로 하루하루가 저무는 충무로의 모습 ⓒ 김세희

 

최근 도시재생 프로젝트 2단계로 주목받는 충무로 인쇄 골목인 만큼, 터줏대감과 청년의 꿈이 한솥밥 먹으며 부대낄 미래 앞에서, 인쇄장인과도 같은 분들에게 말 한 마디 거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삶의 터전인 곳에서 그저 한낱 호기심으로 다가간다는 건 자못 송구한 일이었다. 공중보행로를 연결하여 창작인쇄산업의 거점으로 만든다는 2020년. 사회적 공감을 위한 노력들이 조금씩 와 닿을 무렵, 한 공간을 만났다. 5천여 개의 인쇄 업체 사이에서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사랑방, '지붕 없는 인쇄소'. 그리고 그 안에서 '매거진 충무로'를 하나씩 잉태하는 사람들. 인생이 담긴 이 골목이 얼마나 애틋한지 잘 아는 이들에게 우리의 관심은 자양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독립출판을 도모하고, 작업실을 지원하며, 곁에 인현상가에 들어설 인쇄박물관, 인쇄기술학교, 인쇄공방과도 인연을 맺는 등 각종 컨설팅이 가능한 진양상가 302호. 다양한 세대가 역사를 품은 장소에서 어우러질 운명을 잠시 상상해봤다.


지붕없는 인쇄소

 

매거진 '충무로'

▲ '지붕없는 인쇄소'와 매거진 '충무로' ⓒ 김세희



* 지붕없는 인쇄소 만나는 곳

https://blog.naver.com/remakesewoon

https://www.facebook.com/remakesewoon


* 매거진 충무로와 가까워지는 곳

https://blog.naver.com/grinet9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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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인문쟁이 김세희

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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