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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사람 자체가 인문학인 마을

칠곡인문학마을 사람들

남은선

2018-07-27


35도에 육박하던 7월 어느 날, 칠곡군 기산면 죽전2리 마을회관 앞. 구부정한 허리를 두드리며 모습을 드러낸 한 할머니를 만났다. 무려 1시간 넘게 걸어왔다면서도 웃는 할머니. 무엇이 할머니를 이 기록적 폭염에 그 먼 거리를 걸어 여기까지 오게 한 걸까? 회관 안으로 들어가니, 약 15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오느라 힘들었제. 앉아서 수박 먹고, 잔치 국수도 한 그릇 혀. 요새는 어찌 지냈으여.”


죽전2리마을회관


그날은 죽전2리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백한 잔치 국수와 시원한 수박을 먹은 다음, 알록달록한 가방을 뜨개질하기로 한 날이었다. 가구가 부족하던 시절, 손수 뜨개질해 수납 공간을 만들던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렇게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건강하게 사는 것, 삶의 희로애락과 지혜를 나누는 것, 이것이 칠곡인문학마을 주민들의 ‘인문 활동’이다.


‘인문학이 별 거 없으여. 같은 처지 사람들과 새로운 일 해보고, 맛있는 거 만들어 나눠 먹고… 그게 행복한 거제.’

- 영동댁 송분연 할머니


칠곡인문학마을은 마을이라는 물리적인 공동체이자, 사람과 삶이 어우러지는 문화 공동체다. 2004년 칠곡이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되면서 칠곡군은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고 즐겁고 재밌게 사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 사람 중심의 마을, 삶을 짓는 마을 문화를 만들자며 10개 마을을 시작으로 인문학마을을 결성하기 시작해, 이제는 29개 마을이 칠곡인문학마을이 되었다.


마을별로 고유의 역사, 전통, 문화 등의 이야기를 주민들이 직접 찾아서 여러 인문 활동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있다. 정월이 되면 천왕제를 드리며 전통을 이어 나가고, 100년 넘은 빨래터에서 오갔던 위로와 희망을 ‘빨래터 합창단’에서 노래로 다시 풀어 내는 등 마을 주민 모두가 다양한 활동을 하며 추억을 만든다. 칠곡인문학마을 프로그램에는 주민들의 마을을 향한 애정이 느껴진다.


신현우 이사장

“칠곡인문학마을은 주민들이 더 주도적으로 운영혀. 모든 주민은 선생이자 학생이여. 그 점이 사람들에게 좋게 뵀냐벼.

마을 사람들이 1년 내내 행복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문적 의미가 있제.”

-칠곡인문학마을협동조합 신현우 이사장-



사람과 사람의 삶이 흐르는 곳


화목하고 행복해 보이는 어르신들. 칠곡인문학마을 주민들은 삶이 즐거워지고, 사는 마을에 자부심과 애착이 강해졌다고 한다.


소계준 할머니

“내가 33년 생이께 90 다 되어 간다. 죽전2리서 나서, 고서 결혼하고, 신랑 따라 객지 돌아 댕기다가 여기로 다시 돌아왔제.

뭐꼬. 작년엔 수세미 짰거든. 그거 축제 가서 팔고 했제. 재밌었제.”

-진주댁 소계준 할머니-


신현덕 할머니

“맛있는 거 먹어서 좋코. 뜨개질 하니 좋코. 마음 편해지니 좋코. 스트레스 풀려서 좋코. 다 좋제.

사람들하고 행복하게 즐겁게 지내는 거 말고 이제 바랄 게 없다.”

-평산댁 신현덕 할머니-


강옥희 할머니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단합이 잘 되어야. 인심 좋코, 사람 살기 좋제. 이전에는 내가 추어탕 만드는 거 알려준 적도 있어야.

다 같이 된장 담아서 축제에서 팔고 그랬제.”

-교동댁 강옥희 할머니-


뜨개질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는 활동 외에도, ‘인생 수첩’이라는 시간도 갖는다. 죽전2리의 칠곡인문학마을 사업 반장이자 마을 기자로 약 6년간 활동해온 권영자 반장은 각 어르신들이 살아온 인생을 차분히 듣고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죽전2리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어울려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르신들이 직접 전하는 삶의 지혜와 역사, 전통을 책으로 엮을 예정이다.


뜨개질하는 어르신들


죽전2리 어르신들은 11명의 젊은 새댁들에게 직접 택호도 지어줬다. 권영자 반장도 작년에 ‘안동댁’이라는 택호가 생겼다.


권영자 반장

“인문학이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든지 서로 웃으며 안부 묻고, 사는 이야기 나누며 즐겁게 사는 그런 것이요. 제가 40대 후반에 죽전2리로 이사 왔을 때, 권승오 이장님이 저희 집에 직접 찾아와 인사를 건네주셨어요. 여러 곳을 이사 다녀 봤지만, 이런 진정성 있는 환대는 처음 이었죠. 그로부터 6년이 흘렀네요. 저도 이제 죽전2리 마을 사람 다 됐어요.”

-죽전2리 안동댁 권영자 반장-


올해는 택호 문패도 어르신과 새댁이 한 팀이 되어, 직접 만든다. 문패에는 택호뿐만 아니라, 그 가정의 특징도 새길 계획이다.


“모여,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인문 함 해보시더. 굿판은 젊은이들이 만들고 떡은 마을 어르신들이 준비하소라며 시작했제.

나이든 세대의 농익은 경험과 전통을 젊은 세대의 팔팔한 새로움과 어울리게 해보입시더. 그게 우리 마을의 인문학이제.”

- 칠곡인문학마을협동조합 신현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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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남은선
남은선

나라는 책을 읽고 재편집하기 위해 글밥 먹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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