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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모두, 한 보 앞으로

대구 커뮤니티, 문화공장

인문쟁이 김주영

2018-01-09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빛이 반짝한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영화 배급사와 제작사 로고를 바라본다. 숨을 죽이던 사람들이 영화가 시작되자 어느덧 고개를 갸우뚱한다. 조금은 생경한 내레이션과 자막,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도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베리어프리 영화 상영회의 한 풍경이다.


모두를 위한 영화, 베리어프리(Barrier-Free)


“좀 산만하시죠? 우리가 자연스럽게 눈으로 읽거나 귀로 들어왔던 것들을 일일이 자막과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니까 정신없는 게 당연하죠.(웃음)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차차 익숙해지면 베리어프리 영화만의 재미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관객들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커뮤니티 문화공장 박길도 대표가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올해 4월부터 매월 정기적으로 베리어프리 영화 상영회를 개최한 베테랑의 말솜씨다. 웅성이던 관객들이 어느덧 잠잠해지던 그 때, 박길도 대표가 한 마디 덧붙인다. “영화를 보다가 한번 눈을 감거나 귀를 잠시 막아보세요. 그렇게 보는 영화는 어떤 느낌일까요?”


베리어프리(Barrier-free)는 장애인들도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베리어프리라는 개념이 영화에도 적용되면서 베리어프리영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베리어프리영화에서는 인물의 대사(음성)와 행동(영상)으로 구성된 비(非)베리어프리영화에 인물의 표정과 행동, 화면을 해설해주는 음성과 인물의 대사, 음악이나 효과음, 소리정보를 알려주는 자막이 추가된다. 그런 이유로 기존의 영화를 베리어프리 버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 제작비를 투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는 2012년에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 베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베리어프리영화를 제작, 상영하고 있다.

 

관객들과 베리어프리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화공장 박길도 대표자막으로 소리정보, 화자 및 대사를 알려주는 베리어프리 영화

 ▲ 관객들과 베리어프리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화공장 박길도 대표 / 자막으로 소리정보, 화자 및 대사를 알려주는 베리어프리 영화


커뮤니티 문화공장 박길도 대표는 올해 4월부터 대구경북지역에서 매달 꾸준히 베리어프리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게 아니라 영화관이 없거나 접근성이 낮은 지역을 직접 찾아간다. “달성군 국립대구과학관, 대구의료원, 지적장애인학교인 경북영광학교에서도 상영회를 했어요. 누군가에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이 쉬운 일이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그 일이 신체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베리어프리영화가 필요한 이들은 많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기에 여러 곳에서 상영회를 열어 많은 사람들에게 베리어프리영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중이다.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베리어프리영화위원회나 대구영상미디어센터와 같은 단체에서 조금씩 지원을 받아 상영회를 개최한다.   

 

지난 12월 17일 동구 율하동 안심협동조합 ‘땅과 사람이야기’에서 열린<목소리의 형태> 베리어프리영화 상영회

 ▲ 지난 12월 17일 동구 율하동 안심협동조합 ‘땅과 사람이야기’에서 열린 / <목소리의 형태> 베리어프리영화 상영회 


“베리어프리 영화는 장애인을 위한 영화일 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 베리어프리영화’라는 공식을 머릿속에 은연중에 새겨 넣고 있었던 터라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껌뻑이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시각과 청각이 감퇴하고 있는 노년층이나 설명과 해설이 풍부할수록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더 높일 수 있는 유년기의 아이들에게도 베리어프리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장애 유무뿐만 아니라 문화중심지와의 거리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 혹은 작품소화력을 좌우하는 연령 등 문화소외계층이 뛰어넘어야할 베리어(Barrier), 장벽은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는 2005년에 발표된 가수 드렁큰타이거의 정규 6집 앨범에 수록된 곡명이다. 소외된, 잊혀져버린, 잊힌 사람들을 위한 이 노래처럼 커뮤니티 문화공장도 문화향유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다. 바쁜 일상으로 문화를 향유할 여유가 부족한 직장인들을 위해 문화예술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앞에서 소개한 베리어프리영화 뿐만 아니라 작품성이 뛰어나지만 상업적이지 않아 영화관에 들어오지 않거나 일찍 내린 작품들을 가져와 상영하기도 한다. 또 회원들의 기부금으로 매달 2~3회는 저소득계층의 아이들, 학교 밖 청소년들과 함께 문화체험활동도 한다.


“가수 이승환씨의 기획사 이름이 드림팩토리였어요. 그걸 보고 꿈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면 문화를 만드는 공장도 있지 않을까 해서 문화공장이라고 이름을 붙였죠.” 모두가 함께 즐기는 문화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시작된 문화공장은 어느덧 약 430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할 정도로 제법 몸집이 불어났다. 온라인 다음 카페로 운영하고 있고, 대구 북성로 믹스카페 3층에 아지트를 두고 오프라인 활동도 꾸준히 이어나가는 중이다.

 

커뮤니티 문화공장 다음카페 캡쳐 / 문화공장 안내 표지판

 ▲ 커뮤니티 문화공장 다음카페 캡쳐 / 문화공장 안내 표지판


대구 북성로 믹스카페에서 월요일은 캘리그라피, 화요일은 미술, 수요일은 우쿨렐레/기타, 목요일은 공예, 금요일은 타로, 토요일은 캘리그라피/미술, 영화, 여행, 볼링, 자전거 라이딩 등의 주제로 회원들이 서로가 가진 재능을 나누는 스터디 형식의 소모임이 이루어진다. 학원과 같은 교육기관에 비해 문화향유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경제적으로 부담도 덜할 뿐만 아니라 친목도모도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 회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우쿨렐레 소모임에 참여한 문화공장 회원들공예 소모임에 참여한 문화공장 회원들

 ▲ 우쿨렐레 소모임에 참여한 문화공장 회원들 / 공예 소모임에 참여한 문화공장 회원들 


매달 열리는 영화상영회에도 문화공장 식구들의 참여율이 높다. ‘찾아가는 영화관’, ‘커뮤니티 상영회’ 등의 이름으로 열리는 상영회를 통해 2017년 한 해 동안 <아이엠히스레저>, <고양이케디>, <미스테리어스 스킨>, <목소리의 형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행복목욕탕>, <파밍보이즈>,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등의 영화를 소개한다.

영화평론가 백정우씨는 <파밍보이즈> 출연진 청년농사꾼 유지황씨와 함께 GV를 진행했다. 베리어프리영화든 비(非)베리어프리영화든 인터넷으로 쉽게 받을 수 있는 불법다운로드파일이 아니라 23GB가 넘어가는 원본들을 매번 배급료를 지불하고 받아와서 상영한다. 박길도 대표가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다.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박길도 대표가 개인적으로 배급료를 부담한다. 


대구의료원에서 진행한 베리어프리영화 <목소리의 형태> 상영회 안내부스영화평론가 백정우씨와 함께한 <우리는 모두 꿈을 꾼다> 상영회 현장

 ▲대구의료원에서 진행한 베리어프리영화 <목소리의 형태> 상영회 안내부스 / 영화평론가 백정우씨와 함께한 <우리는 모두 꿈을 꾼다> 상영회 현장


“저는 대구에서 생활하고, 대구에서 월급을 받고 있죠. 어떻게 보면 사회로부터 일정부분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혜택들을 다시 사회로 돌려서 함께 나누고 싶어요. 저 뿐만 아니라 문화공장 회원들도 함께 공익사업이나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이런 가치들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매월 2~3회 박길도 대표와 문화공장 식구들은 대구아동복지센터, 남구드림스타트의 아이들과 문화체험활동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영화·연극·오페라를 보고, 볼링을 치고, 버스를 타고 김광석 길에 가고, 빵도 만든다. 매년 겨울이면 문화공장의 봉사모임회원들과 함께 연탄을 나르기도 한다. 센터 안에 있는 아이들이 밖으로 나와서 다채로운 문화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박길도 대표는 이러한 경험들이 아이들의 사회성을 기르고 문화감수성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

 

문화공장 회원들과 함께한 연탄나눔봉사활동대구아동복지센터 아이들과 함께한 제빵체험

 ▲ 문화공장 회원들과 함께한 연탄나눔봉사활동 / 대구아동복지센터 아이들과 함께한 제빵체험


세상을 바꾸는 행진, 문화공장

 

아이들과 함께 하는 문화활동이 끝나면 종종 아이들이 찾아와 “다음에는 이런 것도 하면 좋겠어요.”하고 이야기하곤 한다. 스스로의 재미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박길도 대표에겐 공장을 돌릴 무한의 동력이 샘솟는다.

“저는 사람이 가져야할 기본권 중에 문화권도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누리고, 공유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건 그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얼마나 존중받느냐를 판단하는 것과 같은 거죠.” 인터뷰 마지막 즈음 박길도 대표가 덧붙인 말 속에는 문화공장의 철학이 녹아있었다.

 

문화공간 안내문구 - 이곳은 커뮤니티 '문화공장' 겸 협동조합 문화공장의 열린 문화공간입니다.함께 여행을 떠난 문화공장 회원들

 ▲ 문화공간 안내문구 / 함께 여행을 떠난 문화공장 회원들


추운 겨울일수록 따뜻한 연탄 한 장이 더 소중한 법, 지치고 힘들수록 한 번의 손길이 더 소중한 이유다. 아직까지는 일반 동호회, 커뮤니티이지만 내년을 기점으로 문화공장은 비영리단체 또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갈 계획이다. 안정적인 수입원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기도 하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고 회원들과 어떤 문화들을 어떻게 공유할 지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외된 자들 모두가 한 보 앞으로 나서면 한 보가 두 보가 되고, 두 보가 세 보가 될 수 있기에, 소외된 자들의 행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에 박길도 대표는 오늘도 공장을 ‘돌린다’.




사진=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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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링크

커뮤니티 문화공장 다음 카페 : http://cafe.daum.net/30st-culturefactory

커뮤니티 문화공장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culturefactory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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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김주영

[인문쟁이 3기]


김주영은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구토박이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스트릿댄서이기에, 스스로를 ‘춤추는 문학인’으로 정의한다. ‘BMW’(Bus, Metro, Walking)를 애용하는 뚜벅이 대구시민이다. 책과 신문, 언어와 문자, 이성과 감성, 인문학과 춤 그 모든 것을 사랑한다. 인생의 목표를 취업에서 행복으로 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인문쟁이로서의 나와 우리의 목소리가 당신에게 전해져 작은 울림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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