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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가 되는 곳

창신동 ‘봉제거리’, ‘백남준기념관’

인문쟁이 한초아

2017-12-26

 

거리는 일상을 기억하고, 이를 기록한다. 매일같이 오고가는 동네의 거리 위에도, 오래되고 허름한 골목길 사이에도 우리가 사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여기, 거리 위에 쌓인 삶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간직하는 곳이 있다. 원단을 실은 오토바이가 아슬아슬하게 골목을 누비고, 재봉틀 소리가 거리를 울리는 그곳. ‘봉제 산업의 메카’라 불릴 정도로,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재봉틀 소리가 거리마다 서려있는 그곳, 창신동. 고된 삶을 기록했던 ‘거리’는,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발길 닿는 곳마다 이야기를 전하는 창신동을 걸어본다.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거리’가 역사가 되는 곳, 삶과 이야기가 담긴 ‘창신동 봉제거리’

 

평화·동대문 시장과 인접한 창신동은 1970~80년대 봉제업의 중심지였다. 재봉틀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시다(보조)’, ‘객공(임시로 고용한 노동자)’이라는 단어들이 거리 곳곳을 맴돌았다. 수천 여 개가 넘는 봉제업체들은 매일 불야성을 이루며, 고단했던 시대를 이끌었다. 

 

 창신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봉틀, 원단, 오토바이들

 ▲ 창신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봉틀, 원단, 오토바이들


하지만 24시간 울려대던 재봉틀 소리는 오늘날에 이르러 주춤해지기에 이른다. 열악한 생산 시스템과 값싼 중국산 제품이 몰려들면서 창신동을 이끈 봉제 산업은 점차 하향의 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창신동은 2007년 ‘뉴타운 지구’로 선정되며, 재개발을 둘러싼 부동산 거품, 주민간의 갈등이 지속됐다. 그렇게 침체의 늪에 빠졌던 ‘창신동’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뉴타운 지구는 해제됐고, 이후 창신동은 ‘도시재생선도지구’로 지정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창신동은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드라마, 영화의 촬영장소로 활용된다. 영화 건축학개론, 드라마 시크릿가든, 도깨비에 활용된 촬영장소.

 ▲  창신동은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드라마, 영화의 촬영장소로 활용된다. 영화 건축학개론, 드라마 시크릿가든, 도깨비에 활용된 촬영장소.

 

‘도시재생’은 낡고 허름한 건물을 허물고, 대규모 아파트를 짓는 기존의 ‘개발’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람의 향기가 난다.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선정된 창신동 역시 주민 스스로가 마을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마을의 역사와 문화가 원형 그대로 보존됐고, 사람과 마을을 잇는 방식으로 사업은 진행됐다. 거리와 주민은 이야기가 됐고, 더 나은 환경 속에서 거주하기 위한 지원도 이어졌다. 어둡던 거리에 환한 조명등이 수놓아졌고, 주민이 운영하는 시설과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들도 늘어났다. 주민들이 수십 년간 거주하며 느꼈던 ‘창신동’에 대한 애정은 침체된 마을을 사람들이 발길을 사로잡는 마을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창신동의 거리를 수놓은 벽화들1창신동의 거리를 수놓은 벽화들2

봉제, 목공예 등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창신소통공작소’

 ▲ 창신동의 거리를 수놓은 벽화들 / 봉제, 목공예 등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창신소통공작소’ 


창신동에서는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봉제 산업’의 명맥을 이어가는 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존재 그 자체가 ‘역사’인 주민들을 위한 ‘봉제거리 박물관’이 그것. 창신동의 봉제공장들이 몰려있는 창신2동 647번지 일대는 ‘살아있는 봉제거리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는 ‘봉제 산업’에 대한 이해와 창신동을 존재하게 만든 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창신동을 이끈 봉제 산업에 대한 역사, 창신동 봉제공장의 24시, 의류생산 공정, 봉제인 기억의 벽, 봉제거리의 주인공 등 주민의 삶과 역사가 거리 곳곳에 기록되어있다. ‘동대문 그 여자’로 불리며, 30년 넘게 다양한 봉제 제품 제작하는 김종임 봉제사, 봉제와 재단의 달인 김태형 재단사 등 봉제거리 안에서 창신동 주민 모두가 역사가 되어 오늘을 빛내고 있다.


창신동 봉제거리박물관

 ▲ 창신동 봉제거리박물관


한편, ‘봉제거리 박물관’의 중심에 위치한 ‘봉제 박물관’도 연내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시가 일반 주택을 매입 후 시공 중인 ‘봉제 박물관’은 봉제 산업에 관한 전시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 봉제업체와 디자이너의 공동작업장 등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창신동 봉제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안내판

 ▲  창신동 봉제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안내판

 

거리가 ‘이야기’가 되는 곳

 

화강암 채석장

 ▲  화강암 채석장


‘창신동’에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존재한다. 조선시대부터 쌓아온 역사와 문화 자원이 풍부해, 거리가 곧 이야기가 된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이 창신동 ‘비우당(庇雨堂)’에서 ‘지봉유설(芝峰類說)’을 집필했고, 단종의 유배이후 정순왕후가 ‘동망봉’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선총독부를 짓기 위해, 화강암을 채석했던 ‘채석장’의 모습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 ‘채석장’도 곧 주민을 위한 명소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박수근 화가의 ‘아이 업은 소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단지’

 ▲ 박수근 화가의 ‘아이 업은 소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단지’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창신동’에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박수근과 백남준 작가의 집터가 남아있다. 단순한 집터로만 남아있을 이곳에,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을 더해 ‘박수근길’과 ‘백남준길’을 조성한 점이 인상적이다. 창신동이라는 같은 공간을 살았지만 서로 다른 시간대에 머물며, 각자의 길을 걸었던 두 아티스트. 그들이 살았던 거리는 다시 그들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공간으로서 숨 쉬고 있다.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 ‘백남준 기념관’

 

실험적인 공연과 전시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 그를 기억하는 공간인 ‘백남준 기념관’은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950년까지 성장기를 보낸 창신동 197번지 일대의 집터와 오래된 한옥을 매입해 조성한 기념관이다. 완성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백남준을 만들어가는 ‘기억의 집’이다. 


백남준 기념관

 ▲ 백남준 기념관


큰 대문집이라 불리던 창신동 3,000평 대저택에서 살던 그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창신동에”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창신동을 창작 활동의 근원이자 마음의 안식처로 여겼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백남준 기념관’은 창신동 일대를 아우르는 시간과 공간의 기억을 존중하되, 의도적으로 옛것을 연출하는 장식이나 개조는 최대한 배재하는 형식으로 조성됐다고 한다. 

 

백남준 기념관의 전시 작품들

 ▲  백남준 기념관의 전시 작품들


백남준 기념관은 ‘오늘’의 관객이 백남준을 매개로 과거를 만나고, 현재를 만들며, 미래를 꿈꾸는 장소가 되길 희망한다. 그러한 희망이 ‘전시’ 공간마다 채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백남준의 방’에서는 백남준의 세계와 그의 유년 시절 등 백남준과 관련된 독특한 오브제들을 엿볼 수 있으며, 백남준의 생각을 공유한 스토리텔링 시리즈인 ‘백남준 이야기’도 이목을 사로잡는다. 6개의 멀티스크린패널과 TV의 조합으로 이뤄진 ‘백남준 버츄얼뮤지엄’은 백남준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탐색할 수 있는 가상 박물관이자 데이터 뱅크로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뿐 만 아니라 ‘백남준 기념관’은 창신동 주민들이 직접 도슨트로 활동하고, 기념관 안에 위치한 ‘백남준 카페’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등 주민과 호흡하는 기념관이라는 점에서 특별함을 더한다.


창신동 주민들이 운영하는 ‘백남준 카페’

 ▲  창신동 주민들이 운영하는 ‘백남준 카페’ 


곳곳에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거리’ 위에 쌓여,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기억과 기억이 만나고, 새로운 기억을 생성하는 공간인 ‘거리’. 창신동 봉제거리에서 우리네 삶과 그 속에 간직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창신동 봉제거리를 따라 걸으며, 이 길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추억하는 특별함을 느껴보길 바란다.




사진= 한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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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시간 : 화 ~ 일요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관람료 : 무료

도슨트 운영 : 주말 오후 1시 ~ 3시 

장소 정보

  •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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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준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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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한초아

[인문쟁이 3기]


20여년을 대전에서 살았지만, 그럼에도 ‘대전’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청춘(靑春) ‘한초아’이다. 바람과 햇살이 어우러진 산책, 꽃과 시와 별,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행간의 여유를 즐긴다. 신문이나 책 속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자칭 ‘문장수집가’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뜨거운 ‘YOLO'의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문쟁이’를 통해, 찰나의 순간을 성실히 기록할 생각이다. 윤동주 시인의 손을 잡고, 가장 빛나는 별을 헤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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