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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시공 속에서, 지금 여기 당신과 함께함은...

곁에 있는 누군가를 느끼고, 이 광대한 우주와 무한한 시간을 생각한다. 광대한 이 우주 안에서 생겨난 그 기적같은 인연을.

임유찬

2019-10-02



여름방학마다 시골 외갓집에 꼬박꼬박 내려가던 어린 시절, 잠들기 전 올려다 본 밤하늘의 경이로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낮의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여름밤, 시골집에서는 으레 마당 한가운데 멍석을 깔고 모기장을 친 다음 이부자리를 내와 폈다. 그 특별한 잠자리 안에 들어가 누우면, 천양지간 까마득한 밤의 허공으로 나 홀로 둥실 내던져진 듯한 생경함이 밀려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온 종일 들이며 냇가에서 천둥벌거숭이로 신나게 논 탓에 곤하게 잠이 쏟아질 만도 했을 터이다. 하지만 서울 집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시골 밤하늘에 펼쳐진 또 다른 광경에 넋을 잃었다. 두 눈만 말똥말똥해서는 꿈결같은 무수한 별빛 파노라마에 빠져들었다. 하늘에 별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보고 알았다. 까마득히 높은 어둠의 심연 너머 모래알을 훌뿌린 듯 수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희뿌연 은하수 사이를 이따금 유성이 가로질러 떨어진다. 그 놀라운 광경은 어린 나에게 또 다른 경이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준, 잊을 수 없는 추억 한 조각이다. 


어릴 적 보았던 그 경이로운 밤하늘이 바로 우주였음을 안 것은 청소년이 되어서였다. 잡지와 만화의 흥밋거리 소재였던 달, 화성, 태양계, 우주선, 외계인, UFO 등등의 이야기를 통해 천문과 우주에 차츰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어느 때, 우주의 신비에 완전히 매혹된 계기가 있었다. 오래전, 미국의 TV 다큐멘터리 시리즈 <코스모스>가 한국TV에서 방영되어 대중에 우주와 천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때다. 나 역시 다시금 우주의 호기심이 재발동하여 한동안 은하계 저편의 우주전쟁, 외계인 등 SF소설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우주를 동경했다. 정말 SF소설 그리고 영화처럼, 우주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리라는 믿음을 간직하면서...


경이로운 밤하늘의 광경이 우주라는 것을 청소년이 되어 깨달았다.


세월이 흘러 성인의 나이에 이르자 우주에 대한 동경심은 빈약하나마 나름의 철학적 사유로 진화했다.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의 터전인 지구는 어찌해서 생겨났으며 우주와 별들의 탄생 기원이 무엇인지, 누구나 한 번쯤 품었보았을 의문들은 명확한 해답을 알 길 없는 좀 더 고차원적인 신비로 다가왔다. 


이런 신비에 대한 사유는 그러나 우리네 세속의 일상과 아무 관련이 없는 공허한 잡념으로 도외시되기 일쑤다. 쳇바퀴같이 돌아가는 바쁜 현대인의 생활엔 하늘 한번 올려다 볼 여유도 없다. 더욱이, 세태에 부대끼어 각박하리만치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활과 동떨어진 우주니 별이니 외계인이니 하는 이야기를 논하려하면 여지없이 한심한 몽상가라는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이란 세속적인 테두리에 얽매여 범우주적 관념을 진지하게 논할 필요성을 느낄 만큼, 아직은 우주를 실감하지 못하는 지구 생활권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우리 인류가 장차 지구 생활권을 벗어나 우주로 진출해 갈 것이란 전망은 갈수록 농후해지고 있다. 불과 50년 전 미국과 구소련의 달 탐사를 시작으로 현재 러시아, 일본, 유럽연합, 중국, 인도, UAE, 이스라엘 등이 우주개발에 나서고 전 세계 70여 개국이 우주 산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은 인류의 우주 진출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미국은 2024년에 다시 달에 사람을 보내는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를 재개했다. 1961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1970년 이전에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우주개발 계획을 발표했듯,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33년 화성에도 유인탐사선을 보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고 한창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한국도 2022년 달 탐사 로켓을 발사할 예정이라고 하니, 우리 후손도 우주 문명시대를 선도하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인류는 지구라는 요람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살지는 않는다’라는 우주개발의 선구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의 신념대로, 조만간 인류의 생활권이 우주로 확장돼 다른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상상이 더 이상 꿈은 아닐 것 같다.


과학기술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우주. 철학적 고찰로 접근하면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다.


이처럼 우주로 진출하려는 인류의 첨단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은 지구라는 땅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철학적 고찰로 접근하는 우주는 자신을 성찰하고 인생관을 고양시키는 좋은 동기가 된다.  


책으로도 출판한 『코스모스』 첫 장을 열면 이런 글이 나온다.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면서. 


누구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살게 된다는 것, 즉 '연을 맺는다'는 것은 이 광대한 우주와 무한한 시간을 생각할 때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우주 다른 어디에서도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 인연이니 참으로 귀하지 않은가? 과연 우주는 얼마나 큰 것일까?


불교의 우주론은 이 우주의 광대무변함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불교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욕계(欲界), 색계(色界), 범중천(梵衆天), 범보천(梵輔天), 대범천(大梵天)까지를 포함해서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한다. 그런데 우주에는 이러한 세계가 1000개가 있고 이를 소천세계(小天世界)라 한다. 또 이러한 소천세계가 우주에는 1000개가 있는데 이를 중천세계(中天世界)라 한다. 그리고 다시 중천세계 1000개를 묶은 대천세계(大千世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소천, 중천, 대천을 묶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라 하는데 이것이 우주다. 그러니까 이 우주에는 10억 개의 소세계가 있다는 얘기다. 


현대 천문학은 우리 태양계가 포함된 은하계에서 별이 수천억 개가 존재한다고 한다. 다시 그러한 은하계 즉, 성운들이 또 수천억 개 존재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천억 은하의 집단이 우주에서 단지 하나의 별빛으로 반짝인다고 하니, 우주의 크기는 참으로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와 과학자들이 밝힌 우주의 크기가 서로 일맥상통한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수미산을 떠받치고 있는 무수한 풍륜(風輪)이 있는데 그 수가 수미산을 분쇄했을 때 가루가 된 모래알의 수 만큼이라고 한다. 인간의 지력으로는 도저히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무한한 우주에서, 지구는 티끌에 불과하다. 그 지구에 인간은 세상만사를 끌어안고 아등바등 살아간다. 우주와 자신과의 관계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지만, 의식적으로 사색해보는 시간은 우리 인생을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우주는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존재의 시작와 함께 특별한 공간과 시간을 주고, 그 생명이 꺼질 때 주었던 공간과 시간을 반드시 거둔다. 여기엔 어떤 우주적 의미가 있을까? 존재하면 필연코 함께 살아가는 다른 존재가, 인연이 생긴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 다른 존재가 가족이고, 친구들이고, 동료들이고, 반려동물이다. 이 존재들과 만남은 무엇을 의미할까? 종교는 일찍이 사랑과 자비를 말했다. 우주적 차원에서 우리 인생을 돌아볼 때 그것은 진리로 체감하게 된다.


우주 아래 고독한 우리는 서로를 만나 사랑을 배운다.


지난 일들을 돌아보면, 나와 인연을 맺었다가 영원으로 사라진 그 대상이 몸살 나도록 보고 싶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자식을 사진 으로밖에 볼 수 없다, 영원히(!) 보고 싶다는 것이 사랑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연인. 형제, 친구, 동료, 반려동물 모두 언젠가는 영원 너머로 사라진다. 좀 더 잘해 줄 걸, 하는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와 가슴이 쓰리다. 살았을 때 뚜렷이 존재하던 그 형체가 그리움의 눈물 속에 아른거린다. 내가 존재함으로써, 만나게 된 그 존재가 이제 광대무변한 우주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지금 여기,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복이며 삶의 모든 가치가 되는지, 그 존재가 사라지고 나서 그리고 우주로 시야를 펼칠 때야 비로소 절실히 깨닫는다.


우주와 나와의 존재를 연계하며 사색할수록, 나와 인연을 맺은 숱한 대상에게 정말 이렇게 다짐하게 된다.


무한한 공간, 영원한 시간 속에

한 공간, 한 시에 당신과 함께함은...

나의 존재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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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찬
임유찬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데 쉬운 일이 아니네요. 시나리오 작가로 품격있는 멋진 한국 영화를 만들어 볼게요. 이미지_ⓒ임유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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