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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e, 사랑하고 있나?

낯선 이에 대한 사랑을 상상하기

박치영

2018-12-05


어떤 내용으로 유토피아에 대해 풀어갈지 고민한 만큼, 제목을 정하는 것 역시 힘든 일이었다. 그만큼, ‘유토피아’라는 것이 썩 친숙한 주제는 아니었다. 예측되지 않는 미래를 그려보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현실은 버거운 것이었고, 과거는 늘 후회의 대상이었다. 미래까진 내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나만의 이상향, 즉 유토피아를 더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랑하고 있나?’


미래까지 내다 볼 여유조차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낯선 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이 막연히 먼 것이든 가까운 것이든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과거를 짚어야 했다. 기대하고 있는 어떤 변화는 곧 지금의 결핍과도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겐 ‘사랑’이었다. 다양한 사랑이 늘 일상에 맴돌고 있었다. 연인 간의 사랑,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이 그렇다. 그렇다면 낯선 이에 대한 사랑은 어떠한가.


사람들은 낯선 것을 경계하고, 기피한다. 자신과 다른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또한 무리에 소속되고 싶어 한다. 낯선 것에 대한 호의나 선의는 이미 허공에 떠도는 불확실한 것이 되어버렸다. 무거운 짐을 들고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를 슬쩍 피하거나, 낯선 이가 말을 걸면 언젠가부터 단호한 거부의 표정을 짓는 것이 그렇다. 인식할 수 없는 ‘낯선 것’을 사람들은 슬쩍 피하고 만다.


‘옛날엔 그리 각박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런 말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저마다 옛날이라고 하는 과거의 기준은 다르지만, 과거에 대한 막연한 향수는 어른과 아이를 불문한다. 하지만 과거를 추억하다가도 언젠가는 현실로 돌아와야 하고, 그 현실은 대체로 버겁다. 꽉꽉 막힌 고속도로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정겨운 시골 풍경이 기억나지 않는 명절 귀성길처럼 말이다.

 

낯선 이가 말을 걸면 언젠가부터 단호한 표정



야금야금 좀먹은 우리 마음과 사회의 귀퉁이들


한때, 노력에 대한 보답이 충분히 주어지던 시기가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노력으로 극복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갔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했으며, 빚을 갚느라 꽤 오래 고생하지만 아이를 키워냈다. 성과를 얻기 위해 개인이 들인 노력은 외면받지 않았다. 그것은 일정 부분 건강한 사회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노력은 배반되지 않아야 하고, 그것은 곧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경제원칙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유인(incentive)책이다.


공부 취직 결혼 아이


새로이 자라나는 아이들도 다시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 결혼을 하기 위해 연애도 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성취하기 어려운 지독하리만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고 있다. 대학경쟁률은 나날이 높아가고, 청년실업률은 떨어진다고는 하나 여전히 OECD 국가 중 1위다. ‘밀당(밀고 당기기)’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연애에서조차 노력과 경쟁은 예외가 아니게 되었다. 우리는 지독하리만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이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대입을 준비하고, 노량진에는 장기간 취업 준비를 하는 ‘장수생’들이 허다하다. 연애를 하면서도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시험하기도 하고, 또 역으로 시험받기도 한다. 자신이 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는지, 왜 취업을 하지 못하는지, 나는 왜 매번 사랑에 실패하는지. 그런 질문을 머금고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도가 조금씩 축적되고,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속 한 귀퉁이는 피폐해지고 있다.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많은데 여전히 외로움을 타는 것이 그러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불특정 다수로부터 어떤 ‘가치’를 시험받고, 또 자신의 잣대를 남에게 들이밀기 때문이다. 경쟁은 심화되고, 사회는 노력을 이야기하지만, 이 끝없는 경쟁 게임에서 승자는 없다. 무력감이 사회 한 귀퉁이를 야금야금 좀먹고 있을 뿐이다.


하여, 사람들은 소속되고 싶어 한다. 혼자가 되는 것을 무서워하고, 무리에서 낙오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같은 무리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낯선 것을 배척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성별, 정치적 성향, 종교 등을 기준으로 허구의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하며, 그렇게 묶인 공동체로부터 집단 규모로 시작된 혐오는 종종 개인에게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 외엔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려 하지 않는다.


불특정타인을위한 벤다이어그램속



낯선 이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시작되는 유토피아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을 동등하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것은 나 역시 어려운 일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겠고, 불특정 타인을 위해 벤 다이어그램(Venn diagram) 속 여러 집합들로부터 잠시 빠져나오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시험받고, 버림받고, 그래서 외로울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소속된 특정 무리 이외에 불특정 집단에 대한 기피, 경계, 나아가서는 혐오가 다시 내게로 쏠린다면 어떠하겠는가.


우린 사랑하는 가족과 매일 매 순간을 함께할 수 없다. 마음이 맞지 않은 친구와는 연락을 끊기도 하고, 때론 아주 사소한 이유로 연인과 헤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일상을 더 자주 공유하는 것은 출근길 지하철의 사람들,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사람들, 퇴근길 밤거리에서 서로 거리를 두고 걷는 사람들이 아닐까. 각각이 다 혼자인 어떠한 인연도 쌓이지 않은 타인, 즉 낯선 사람들 말이다.


낯선 이를 사랑한다. 여전히 참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할머니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은 쑥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처음 본 행인이 말을 걸어오면 호기심보단 경계심이 먼저 생긴다. 소속감에 익숙해져 있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당신에게 어떠한 소속도 없던 것처럼, 죽는 그 순간 당신에게 소속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우린 혼자고 전부 불특정 다수 중 하나다. 이토록 무력감에 쉽게 노출된 사회에선 누구라도 기피와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더하게는 집단 혐오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유토피아에 대한 장황한 글은 꼭 존 레넌(John Lennon)의 〈Imagine〉을 언급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당장 거시적, 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사랑에 대한 개인의 변화는 한 곡의 노래로도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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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Amy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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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치영
박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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