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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바라본다는 것

- 오늘, 키워드 인문학 -

김찬호

2021-06-28

오늘, 키워드 인문학은?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 마음,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여러 키워드들……. 우리는 왜 어쩌다 이들의 움직임과 향방에 대해 시시때때로 관심을 기울이고 촉각을 세우게 되는 걸까요? 각계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시선을 통해 우리 모두의 지금을 좌지우지하는 다양한 키워드들에 대해 흥미롭고도 새로운 인문학적 통찰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자라난 젊은 세대일수록 그러한 환경에서 자아가 형성되었다. 물리적인 차원에서 <공동의 세계>를 몸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사이버 세계나 메타버스에서는 자유롭게 유영하며 발랄하게 활동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낯가림이 무척 심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말문을 여는 것도 너무 어색하다. 요즘에는 신입사원의 직무연수에서 전화 받는 법을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다.



사람 눈동자가 다른 동물들 비해 흰 부분이 넓은 이유



눈동자

사람의 눈동자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흰 부분이 넓다.



예전에 어느 지방에서 강의를 하면서 경험한 일이다. 돌아갈 때 타기로 예정된 시외버스는 그날의 마지막 차편이었고, 터미널은 강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이동해야 할 만큼의 거리에 있었다. 나는 차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이 들어 강의 중에 수시로 시계를 보아야 했다. 그런데 시계가 강의장의 옆쪽 벽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살짝 움직여 눈동자를 돌리면서 보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주최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그날 참석자들이 그런 나의 행동이 불안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나는 강의를 좀 더 꼼꼼하게 하려고 시간을 체크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집중력을 흩뜨리는 처사가 되고 만 셈이다.


사람의 눈동자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흰 부분이 넓다. 전문 용어로 ‘공막’이라고 하는데, 조류나 파충류는 물론 포유류의 눈동자도 동공과 나머지 부분이 비슷한 색깔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만이 그런 눈으로 진화했을까. 이에 대해 가장 유력한 설명은 그것이 호모사피엔스의 상호 협력을 촉진했다는 것인데, 웬만한 거리에서도 상대방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선을 통해 서로의 관심과 의도를 파악하면서 협동을 쉽게 도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서적 유대감 촉진하는 ‘공동 주의집중’



죽음을 함께 지켜보는 사람들

죽음을 함께 지켜보는 사람들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공동 주의집중(Joint Attention)’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대상이나 과제에 자신의 관심(초점)과 상대방의 관심을 일치시키는 사회적 행위’ 1)를 말한다. 달리 말하면, 한 사람이 어떤 사물에 시선을 보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그쪽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인간 발달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언어의 학습은 바로 그러한 ‘공동 주의집중’을 통해 이뤄진다. 그것은 단지 언어의 습득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인지 능력과 정서적인 유대감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 장대익, 『울트라 소셜』(휴머니스트, 2017) 34쪽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극복하고 공동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비좁은 사고의 틀을 깨고 보편적인 우주를 획득하는 과정인데, 이는 추상적인 관념의 운동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여러 구체적인 경험들을 나누는 감각의 작용이 수반된다. 여기에 두 핵심축이 있는데, 하나는 내게 영향을 끼치는 ‘의미 있는 타인(Significant Other)의 존재고, 다른 하나는 그 타인들과 자신을 연결시켜주는 공통의 대상이다. 그 대상이란 사물, 공간, 기억, 소망, 과제 등을 말하는데, 그런 것들을 공유하면서 사회적 유대가 맺어지고 깊어지는 것이다.


인류는 그런 매개 장치를 공동체 안에서 다양하게 마련해왔다. 노동, 의례, 놀이, 축제, 전통, 신성한 장소, 유서 깊은 물건, 옛날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조상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전해 들으면서 존재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네에서 혼인이나 회갑 잔치를 벌이고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이웃들이 함께 장례식을 치렀는데, 그것을 통해 자신이 마을 공동체의 일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특히 어린 시절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일상에 그런 시공간과 사건들이 펼쳐지는 속에서 자기를 넘어 더 커다란 세계로 입문할 수 있는 것이다.



공통의 감각 경험 점점 축소, 각자의 미디어에만



스마트폰 속 SNS에 몰두하는 사람들

스마트폰 속 SNS에 몰두하는 사람들



근대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그런 문화적 토대는 급격하게 축소되어 왔다. 개개인의 삶이 거대한 체제 속으로 편입되고 그 속에서 외형적인 성과를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분투하는 동안, 생활 세계는 점점 빈곤해졌고 타인과의 관계도 도구화되었다. 가까스로 사람들을 묶어주는 접착제가 있다면 민족주의와 가족주의, 그리고 드넓게 공유되는 대중문화 정도였다. 다채로운 콘텐츠를 생산하여 보급하는 매스미디어는 고단한 노동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주면서 취향과 정서의 공동체를 빚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매스미디어에서 멀티미디어 시대로 넘어가면서 공통의 감각 경험은 점점 축소되고, 생활 세계는 무한 증식하는 채널과 콘텐츠들을 따라 세분화되고 파편화되어 간다. 그리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매우 편리하고 매혹적인 도구지만, 마음을 윤택하게 하는 데 한계가 많은 미디어다. 차분한 감정으로 더 나은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기보다는 분노, 적개심, 혐오감, 질투심, 열등감 등을 증폭시키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미디어의 발달에 맞물려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점점 단절된다. 가족들이 집에 함께 있는 시간조차 각자 유튜브나 SNS에 몰두하느라 대화가 어색해진다.



전화 응대법 가르치는 요즘 신입사원 직무 연수



통화를 불편해 하는 모습

디지털 네이티브로 자라난 젊은 세대일수록 전혀 모르는 사람과 통화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자라난 젊은 세대일수록 그러한 환경에서 자아가 형성되었다. 물리적인 차원에서 <공동의 세계>를 몸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사이버 세계나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 가상세계)에서는 자유롭게 유영하며 발랄하게 활동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낯가림이 무척 심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말문을 여는 것도 너무 어색하다. 요즘에는 신입사원의 직무 연수에서 전화 받는 법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휴대폰으로 지인들과 통화하는 데만 익숙해 있기에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걸려오는 일반 전화의 응대법을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팬데믹 상황이 왔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오프라인 공간은 더욱 축소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직접적인 상호작용의 범위가 좁아지고 있었는데, 특히 젊은이들은 ‘꼰대’ 연장자들과의 정서적 괴리가 견디기 어려워 대면을 피해왔다. 코로나 국면으로 업무의 많은 부분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세대 간의 접촉면은 더욱 좁아지는 듯하다. 그렇다고 같은 세대끼리는 편안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온라인 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몸으로 어우러지는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숫기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0년간 젊은이들의 공감 능력은 40% 감소



타인과의 유대에서 비롯되는 행복감

타인과의 유대에서 비롯되는 행복감



문제는 단지 사교성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새라 콘래스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젊은이들의 공감 능력은 4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온라인 세상을 항해하느라 현실 속의 대면 관계를 희생시킨 것이 공감 능력을 감퇴시킨 것으로 분석된다.2) 한국에서는 아직 그런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듯한데, 상황이 거의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꾸준하게 늘어나는 학교 폭력과 청소년 자해 등은 정서적인 유대의 결렬과 깊은 관계가 있고, 그 배후에는 사람을 동등한 인격으로 마주하기 어려운 온라인 경험의 과잉이 깔린 것이다.

2) 매리언 울프 『다시, 책으로』(어크로스, 2019) 88쪽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의 절반 이상은 타인과의 유대에서 비롯된다. 유대란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의미 있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생명의 힘은 배가된다. 그것을 입증하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오랫동안 인간관계를 연구해온 영국 출신 인류학자 던바(옥스퍼드대 교수, 1947~)의 실험은 수십 명의 자원자에게 비디오를 보면서 디스코형의 네 가지 기본 춤 동작을 배우게 한 후에 몇 그룹으로 나눠 춤을 추도록 했다. 거기에서 어떤 그룹에게는 같은 음악을 듣고 정확하게 같은 동작으로 동시에 춤을 추라고 지시했고, 다른 그룹에게는 각자의 멜로디에 맞춰 모두 다르게 깐닥거리도록 했다. 디스코가 끝나고 나서 팔에 혈압 측정 장치를 두르고 장치를 팽창시켜 그 압박을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측정했다. 결과는 동시에 춤을 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단단히 조여도 견딜 수 있었다. 사회적 친밀감이 통증에 대한 역치를 높여준 것이다. 무리를 지어 노를 저으면 혼자 젓는 것보다 힘이 덜 드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그와 비슷한 원리로 합창을 하면 몸에서 자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 것도 밝혀냈다. 3)

3) 마르타 자라스카,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어크로스, 2020) 246~247쪽



SNS 대신 무심히 머물며 응시하기



무심히 머물며 응시하기

무심히 머물며 응시하기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음악이나 구호에 맞춰서 일제히 어떤 동작을 할 때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건강도 증진된다는 점이 여러 실험과 관찰에서 입증되고 있다. 이른바 ‘동시성의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리적인 공유가 인간의 심신에 얼마나 결정적인 효능을 가져다주는지를 잘 말해준다.


지금 우리의 일상은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각종 매체들에 의해서 제각각의 공간으로 분화되고 단절된다. 어쩌다가 하늘에 무지개가 뜨거나 저녁 노을이 멋지게 번지면 저마다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기에 바쁘다. 가끔은 저장과 과시에 대한 강박을 잠시 내려놓고, 그 시공간에 무심하게 머물러보자. 풍경을 응시하면서 곁에 있는 사람들을 그냥 바라보자. <나>와 <너>가 <그것>을 통해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지금 이 순간에 함께 살아있음을 찬미할 수 있으리라. 존재의 풍요로움에서 우러나오는 행복감, 서로를 북돋으면서 세계를 창조하는 경이로움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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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
김찬호

사회학자,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 교수
사회학을 전공했고, 일본의 마을 만들기를 현장 연구하여 박사 논문을 썼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부센터장을 지낸 바 있고, 현재 교육센터 마음의씨앗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모멸감』, 『눌변』, 『생애의 발견』, 『사회를 보는 논리』, 『도시는 미디어다』, 『문화의 발견』, 『휴대폰이 말하다』, 『교육의 상상력』, 『돈의 인문학』, 『인류학자가 자동차를 만든다고?』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작은 인간』,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공역), 『학교와 계급재생산』(공역) 등이 있고 함께 펴낸 책으로 『선배 수업』,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오늘도 나는 교사이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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