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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적폐는 어떻게 다른가?

- 이달의 질문 -

안광복

2020-09-04

 

인문 쟁점은?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인문학적 과제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의 깊은 사색, 허심탄회한 대화 등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더 깊은 고민을 나누고자 만든 코너입니다. 매월 국내 인문 분야 전문가 두 사람이 우리들이 한 번쯤 짚어봐야 할만한 인문적인 질문(고민)을 던지고 여기에 진지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1800년대 프랑스 대학교에서 있었던 신입생 신고식 모습

▲ 1800년대 프랑스 대학교에서 있었던 신입생 신고식 모습(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1990년까지도 프랑스 최고 명문 대학들인 그랑제꼴(Grande école)은 ‘르 비쥐따쥬(Le bizutage)’로 골치를 앓았습니다. 이는 신입생 신고식을 뜻하는데요, 입학한 학생들에 대한 선배들의 오물 먹이기, 구타, 옷 벗기기 등의 행위로 버젓하게 벌어지곤 했습니다. 이를 막지 못했던 이유는 나폴레옹 3세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라는 이유도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르 뷔지따쥬’도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악습이자 없애야 할 ‘적폐’일 뿐입니다. 인도의 카스트(Caste) 제도는 어떨까요? 이 또한 수 천 년을 이어져왔지만,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지금은 인간 존엄성을 갉아먹는 제도로 공격받고 있습니다. 르 비쥐따쥬와 카스트 제도 등이 잘못된 관습이라는 데는 논란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전통인지 적폐인지가 분명치 않은 경우도 많지요. 명절 때 여성만 일을 했던 것은 이제 명백히 ‘적폐’로 여겨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석이나 설을 꼭 지내야 하는지를 묻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분들에게 ‘전통문화’라는 이유로, 꽉 막힌 길에서 숱한 시간을 낭비한 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시간은 적폐로 다가올 뿐입니다. 그렇다면 추석이나 설도 없애버려야 할까요?

 

실제로 역사에는 전통문화를 뒤떨어진 관습으로 여겨 없애버렸던 사례가 많습니다. 18세기,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새로운 도시 이름에 ‘그라드(grad)’ 대신 독일 말인 ‘부르크(brug)’를 붙였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Sankt-Peterburg)’라는 도시명은 러시아를 유럽처럼 바꾸겠다는 황제의 강한 뜻이 담겨 있지요.

 

19세기에 일본에서는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탈아입구(脱亜入欧)’를 외쳤어요. 아시아를 버리고 유럽으로 가야 한다는 뜻인데요, 실제로 그 시기 일본은 옷차림에서 정부 제도까지 모든 것을 유럽식으로 바꾸어버렸지요. 우리의 경우도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전통들이 미신과 악습이라는 이유로 철퇴를 맞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이제 와서 자신의 전통을 복원하려 애쓰는 나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는 한 마디 말로 전통을 지우려 했던 과거의 행동들을 용서해도 될까요? 이래도 된다면 적폐라는 이유로 벌어지는 숱한 전통 파괴 행위들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통이고 적폐인지를 가릴 기준을 분명하게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에는 적폐와 전통에 대한 갈등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장년 세대에게는 힘들어도 마땅히 해야 했던 ‘전통’이, 젊은이들에게는 ‘적폐’로 마뜩찮게 여겨지기에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겠지요. “나 때는 말이야.”는 조직문화, 인간관계, 근무 태도 등등, 사회 곳곳에서 자주 들리곤 합니다. 그만큼 전통인지 적폐인지를 둘러싼 갈등이 적지 않다는 의미로 보아야겠죠. 혼란과 다툼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무엇이 전통이고 어떤 것이 적폐인지를 가릴 기준이 있어야겠습니다.


[이달의 질문] 전통과 적폐는 어떻게 다른가? / 질문자 - 철학자 안광복

 

Q. 그렇다면 전통과 적폐를 가릴 기준은 무엇일까요? 철학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없었을까요? 석학이신 김광수 선생님께 고견을 구합니다.

 

 

9월 [이달의 답변] 내버려두면 자칫 적폐가 될 우리 문화현실 ②

9월 [이달의 질문] 전통과 적폐는 어떻게 다른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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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철학 교사. 인문360° 기획위원
중동고 철학 교사, 철학 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상 속에서 강연과 집필, 철학 상담 등을 통해 철학함을 펼치는 임상(臨床)철학자이기도 하다. 『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 수업』, 『도서관 옆 철학 카페』,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철학 역사를 만나다』,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열일곱 살의 인생론』,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철학으로 휴식하라』 『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 등의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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