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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인문학] SF는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는 창인가?

김명진

2015-12-17

드론인문학

SF는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는 창인가?


지난 10월 21일이 혹시 무슨 날이었는지 아시는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딱히 국경일도, 기념일도 아니었던 이 날이 무슨 특별한 날이었는가 하며 고개를 갸웃할 테지만, 소수의 과학소설/영화(SF) 팬들이라면 이 날이 1989년에 제작된 영화 <백 투 더 퓨처 2>에 묘사된 미래사회의 배경이 된 날짜이며, 이 날을 전후해 전 세계 SF 팬덤에서 제법 요란한 기념행사들이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작년 말부터 <백 투 더 퓨처 2>가 예견한 30년 후 미래사회의 모습(<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현재’는 1985년으로 설정돼 있다)이 실제로 얼마나 들어맞았는가를 놓고 신문, 잡지, 전문 매체들에서 일종의 대차대조표 만들기가 작은 유행을 이뤘다는 점이다. SF나 과학기술 필자들은 이 영화가 예견한 미래의 모습 중 들어맞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비행 자동차, 날씨 예측), 거의 정확하게 예견한 것들도 있었고(평면 디스플레이) 그 중에는 아직 시장에는 출시되지 않았어도 시제품 형태로 존재하는 것도 있다(자동 신발끈, 공중부양 스케이트보드) ― 따라서 현실화되지 않았을 뿐 기술 수준에 대한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 며 영화 속의 미래 예측에 대체로 상당히 높은 점수를 주었다.


수십 년 묵은 SF영화를 놓고 나타난 이러한 반응은 우리가 SF에 대해 흔히 취하는 전형적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 즉 SF는 시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자 미래를 내다보는 수정구슬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SF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예견한 사례들을 강조하며, 다른 한편으로 과학기술자들에게 과학기술 개발의 영감을 제공해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미래를 ‘예언’했다기보다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 그런 미래를 실제로 이뤄내는 것)을 이끌어내기도 함을 부각시킨다. 요컨대 이는 SF가 갖는 긍정적 측면 내지 순기능을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과거 SF영화들이 그려낸 미래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연도가 이미 지나가 버렸거나 얼마 남지 않은 현재 시점에서 판단해 볼 때 상당한 정도로 정확하게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부정적이다. 즉, 미래예측의 도구로서 SF는 형편없이 무능력하다는 것이다. 2001년과 2010년이 진즉에 지났지만 우리는 목성이나 토성은커녕 달에도 다시 사람을 보내지 못했고, 인간의 지능을 넘어 독자적 판단 능력을 갖춘 ― 심지어 인간에게 반항하는 ― 컴퓨터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10 우주여행>). 2019년이 몇 년 안 남았지만 산성비가 하루 종일 내려 태양을 거의 볼 수가 없거나 상류층 사람들이 거대한 피라미드형 건물에서 살아가는 미래가 올 성싶지도 않다(<블레이드 러너>). 우리는 많은 SF영화들에서 ‘미래’로 상정했던 시점을 이미 지나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런 영화들에서 그려냈던 환상적인(혹은 암울한) 미래는 오지 않았다.


이러한 미래예측의 ‘부정확성’은 영화뿐 아니라 소설 같은 픽션 일반이나 더 나아가 미래학 전반으로 확장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가령 1950년 시점에서 50년 후였던 2000년의 미래에 실현될 거라고 믿었던 과학기술은 대체로 들어맞지 않았고(암의 정복, 원자력 기차와 비행기), 그때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과학기술 중 일부는 그보다 훨씬 앞서 실현되었다(인간의 달 착륙). 20세기 말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수많은 단행본들은 이처럼 미래예측이 형편없이 틀린 사례들을 꼬집으며 심지어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미래를 상상하다 Imagining Tomorrow』, 『어제의 내일 Yesterday's Tomorrows』, 『과학의 어리석음 The Follies of Science』, 『결코 오지 않은 멋진 미래 The Wonderful Future That Never Was』, 『내 제트팩 어딨어? Where's My Jetpack?』 같은 책들의 제목과 표지 그림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도심에 줄지어 늘어선 거대한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공급받지도 않고, 도시 전체를 거미줄처럼 뒤덮은 이동식 보도(步道)나 모노레일을 교통수단으로 삼지도 않으며, 개인용 제트팩을 어깨에 둘러메고 날아서 출퇴근을 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SF 포스터


이처럼 ‘틀린’ 미래예측에는 한 가지 의미심장한 공통점이 있다. 머지않은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것보다 훨씬 더 진보된 기술을 이용해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거라는 선입견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런 예측은 종종 반만 들어맞는다. 분명 우리에게는 과거에 없던 첨단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중요한 여러 측면들에서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7년에 출간된 기술사학자 데이비드 에저튼의 책 『오래된 것들의 충격 The Shock of the Old』(국내에는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은 이 점을 아주 흥미롭게 보여준다. 에저튼은 새로 등장한 첨단기술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이라는 과장된 예측이 20세기 내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기술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여전히 떠받치고 있는지를 분야별로 수많은 사례를 들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가령 군사무기 분야에서는 핵폭탄의 발명이 군사 전략가들의 사고방식은 바꿔놨는지 몰라도 (다행스럽게도) 실제 전장의 모습은 거의 바꿔놓지 않았고, 그 결과 20세기의 전쟁들에서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무기는 원자폭탄도, 생화학무기도, 심지어 기관총도 아닌, 여전히 구식의 소총과 대포였다. 21세기로 접어든지도 이미 여러 해가 지났지만, 우리는 피라미드형이나 돔형 건물이 아니라 여전히 실용적인 상자형 건물에서 살고, 발명된 지 100년도 넘은 내연기관 자동차를 이용해 출퇴근을 한다. 각종의 첨단 정보기기를 가지고 가상공간 속을 깃털처럼 자유롭게 부유하는 미래가 진즉에 도래했다는 미래학자들의 숱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물동량을 자랑하는 컨테이너 해상운송과 대량의 값싼 비정규직노동에 의존하는 택배 서비스가 없으면 우리의 네트워크사회는 일순간에 마비되고 만다. 요컨대 사람들의 일상을 떠받치는 기술적 하부구조의 세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빠르게 변모하지 않는다.

 

SF작품이나 미래학 서적이 우리에게 선전하는 미래가 종종 정형화되고 과장되어 정확한 예측이 못될 뿐 아니라 과학기술의 지난 역사에서 배운 교훈을 제대로 담고 있지도 못하다면, 그러한 미래의 모습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SF는 과학기술에 대한 허황된 생각을 담고 있어 우리가 거기 담긴 잘못을 바로잡아 주어야 할, 단순한 오락 매체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나 이처럼 SF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은 앞서 SF의 예언적 역할을 강조했던 입장만큼이나 현상의 일면만을 보는 편협한 시각일 터이다.

 

우리가 SF에 담긴 미래상을 보면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런 미래의 모습이 결국 그 모습을 상상하고 그려낸 해당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가령 1950년대, 1970년대, 2000년대의 영화작가나 미래학자들이 상상했고 동시대인들이 그럴싸하게 여겼던 미래의 모습은 해당 시기의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품고 있던 기대, 우려, 환상들이 표현된 결과이지, 아무런 현실적 기반이 없는 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원자력 자동차나 로켓의 실용화를 점쳤던 1950년대 사람들이나 유전공학으로 집채만큼 몸집이 커진 돼지를 꿈꿨던 1970년대 독자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유인 화성탐사가 가능하다고 믿는 오늘날의 영화 관객들은 모두 해당 시기에 주목받는 기술의 지위뿐 아니라 그런 기술에 걸려 있는 기대와 희망까지도 그 속에 투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시간이 흐르면서 해당 시기의 각광받던 기술이 성쇠를 겪음에 따라 계속해서 변모한다. 한때 각광받던 미래는 낡은 것으로 치부되거나 아예 잊혀지며, 변화한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환상적 미래의 모습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어제의 내일’이 말해 주는 것은 실상 내일이 아니라 어제이다. 우리가 지난 반세기를 풍미한 SF작품들을 일별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예전 사람들이 지녔던 혜안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된 20세기를 지배했던 기술의 역사이다.

 

▲출처

 『Imagining Tomorrow』 https://mitpress.mit.edu/sites/default/files/9780262530767.jpg 『Yesterday's Tomorrows』 http://www.smithsonianmag.com/history/yesterdays-tomorrows-how-a-smithsonian-exhibit-i-never-saw-changed-my-life-24721302/ 『The Follies of Science』 http://www.alibris.com/Follies-of-Science-20th-Century-Visions-of-Our-Fantastic-Future-Jonathan-Dregni/book/9882576 『The Wonderful Future That Never Was』 http://ecx.images-amazon.com/images/I/61m9M5E7gxL._SX402_BO1,204,203,200_.jpg 『Where's My Jetpack?』 http://ecx.images-amazon.com/images/I/5133LMIt66L.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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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명진
김명진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미국 기술사를 공부했고, 현재는 경희대, 서울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야누스의 과학』, 『할리우드 사이언스』, 옮긴 책으로 『미국 기술의 사회사』, 『과학의 민중사』(공역), 『급진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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