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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없어요, 그대가 날 사랑해 준다면”

- 당신은 어떤 ‘가요’ - 김일두의 노래 ‘문제없어요’

박민규

2020-10-20

 

 

당신은 어떤가요는?


 

앤롤을 끊어야겠다고 그는 생각한다. 여태 자신을 지탱해 온 삶의 전부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그래야지, 담배를 입에 무는 그녀를 보며 생각한다. 남자는 급기야 15번 버스 타고 특수용접 학원을 다닐 생각을 다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리야 무리라며 애저녁에 포기한 일, 그래서 노선은 기억하지만......



김일두 문제없어요.

▲ 김일두 ‘문제없어요’(이미지 출처 : 모모씨뮤직)



그 어둡고 칙칙한 공간에서 

당신의 수수함은 횃불 같아요 

눈 오는 이 밤 

세상의 엄마들 다음으로 

아름다운 당신과 

사랑의 맞담배를 피워요 

당신이 이혼녀라 할지라도 

난 좋아요 

가진게 에이즈 뿐이라도 문제없어요 

그 게 나의 마음 


당신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담배 뿐 아니라

ROCK N ROLL도 끊겠어요

15번 버스 타고 특수용접 학원에도

지하철 타고 대학입시 학원에도

다닐 거에요

그대가 날 사랑해 준다면

그대가 날 사랑해 준다면

사랑의 맞담배를 피워요

당신이 이혼녀라 할지라도

난 좋아요

가진게 에이즈 뿐이라도 문제없어요

그 게 나의 마음



눈오는 밤 허름한 술집 어쩌다 두사람만



허름한 술집이다. 희귀한 레코드판이며 이런저런 책들이며 또 빈 병, 인상적인 술병들을 되는대로 쌓아놓은 칙칙한 공간이다. 지금 그곳에 남자가 앉아있다. 남자는 자주 이곳에 앉아있다. 단골이다. 평소라면 홀로 남아 주인장과 체코어(혀가 꼬여 나오는 말)로 대화를 나눌 시간인데 오늘 남자는 웬일로 멀쩡하다. 자못 진지한데 지금 남자의 앞에 여자가 앉아있기 때문이다. 여태 못 보던 풍경이다. 실은 일행으로 우루루 몰려왔다가 하나 둘씩 떠나고 남은 두 사람이다. 말씀 많이 들었다는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그건 그냥 하는 말, 남자도 여자도 서로를 안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어쩌다 보니 두 사람이 남게 된 창 밖으로 눈이 내린다. 눈 오는 밤이다. 


눈은 단골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이곳으로 나리게 된 낯선 손님이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있다는 느낌으로 주인장은 멍하니 창밖을 응시한다. 계속 경기가 좋지 않았다. 실은 다~ 먹고살자고 차린 술집인데... 이 장사도 접어야 하나, 주인장은 생각한다. 더 필요한 건 없구? 주인장이 묻는 말에 바나나 칩스... 이거 조금만 더 줄 수 있냐는 남자의 답이 돌아온다. 칩스는 서비스다. 물론 남자는 주인장을 형이라 부르기도 하고 맥주도 두 병 추가로 주문하지만 어쩌다가 이 장사를 시작했을까, 주인장은 잠시 생각에 빠져든다. 정확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주인장은 접시 수북히 바나나 칩스를 담고 만다. 그리고 귀퉁이에 피넛류까지 좀 얹어준다. 눈 오는 밤이다. 



그녀의 수수함과 남자의 영혼, 순간 횃불처럼



파삭, 여자는 안주를 입으로 베어 물지만 남자는 우두커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무엇을 생각하고 혼자 섰느냐 거울을 보여줄까 생각될 만큼... 눈사람 같은 얼굴로 남자는 앉아있다. 남자는 아까부터 이상하게 웃고 있다. 하지만 그런 스스로의 표정을 모르고 있다. 드문드문 남자는 말을 하지만,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여자가 담배를 꺼내 문다. 남자도 부스럭, 담배를 꺼내 문다. 서로 불을 붙여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서 두 사람은 맞담배를 피기 시작한다. 연기가 번지고 눈이 맵고 우풍을 막느라 창마저 꼭꼭 닫은 이 칙칙한 공간에서... 그런데 지금 그녀의 수수함이 막~ 횃불처럼 타오른다. 남자의 눈에만 보이는 세상의 풍경이다. 남자가 웃는다. 그저 앉아있는 그녀를 보는 건데 돈이 없지, 영혼이 없나... 곱고 맑은 남자의 영혼도 횃불처럼 타오른다. 갑자기 타오른 불꽃이 아니라 어른어른... 실은 아까부터 흔들리던 불빛이다. 



남자는 

진짜 눈사람처럼 말이 없어진다. 



실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여지껏 고민 중이다. 용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녀에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 말하면 될 일을 놓고 남자는 계속 머뭇, 한다. 그러면 마치 거짓말 같잖아. 남자는 생각한다. 곱고 맑은 그 문장을 누더기로 만들어 놓은 것은 세상의 숱한 탁한 영혼들... 본인 이외의 모든 남자들이다. 곱고 맑은 영혼의 남자는 그래서 계속 진실된 표현을 찾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 하지 않고 세상에서 제일 진실되게 전하기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어서... 남자의 머리는 결국 마비된다. 장고 끝에 남자는 악수를 둘 뻔한다. 그래, 세상의 엄마들 다음으로 아름답다고 하면 내 진심이 전해지겠지. 남자는 생각하지만 세상의 엄마들을 위해서도 눈앞의 그녀를 위해서도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수가 아니다. 뭔가 머뭇, 멈칫 하는 남자의 표정을 보고 문 닫기는 글렀구나 주인장은 생각한다. 어쩌다보니 그쳤던 눈이 다시 펑펑 쏟아지기 시작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적당한 말을 찾진 못했지만 대신 남자는 생각한다. 



당신이 이혼녀라 할지라도 

난 좋아요, 남자는 생각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남자는 그런 생각을 미리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여자가 

나와 함께 있을 리 없잖아? 

생각도 생각이고 그러면 애가 둘일지 모르겠네. 

아이와 놀아 줄 생각을 

또 잠시 한다. 


행여 그녀가 

수수함이 횃불처럼 타오르는 옷이며 꾸밈새며

어쩌면 자신과 동등 할 정도로 

먹고 살기 빠듯해 뵈는 그녀가 


나 사실은 

가진 게 에이즈 뿐이라 해도 

 

 

문제없어요, 그는 생각한다. 설령 에이즈마저 그녀를 버린다 해도... 에이즈가 떠난 빈자리를 코로나가 새치기한다 해도 문제없어요... 그것이 지금 남자의 마음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눈이 내린다. 어쩌다 보니 쌓여만 가는 눈을 바라보며 남자는 계속 생각한다. 여자의 생각도 모르면서 앞질러 남자는 모든 걸 대비한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의 맹세... 오늘은 축복처럼 눈이 오지만 내일이면 눈 그치고 눈 치우고 먹고, 살아야 할 나날이 이어질 거란 걸 그나마 남자는 알고 있다. 우선 담배를 끊고 


락앤롤을 끊어야겠다고 그는 생각한다. 여태 자신을 지탱해 온 삶의 전부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그래야지, 담배를 입에 무는 그녀를 보며 생각한다. 남자는 급기야 15번 버스 타고 특수용접 학원을 다닐 생각을 다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리야 무리라며 애저녁에 포기한 일, 그래서 노선은 기억하지만... 그 학원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고 남자는 생각한다. 좀 드세요. 여자의 말에 남자는 아, 예 한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마다 남자는 치지지직 특수용접을 당한다. 일반구조용 열간 압연 강재 같았던 남자의 생각이... 기계구조용 탄소 공구강 강재 이상으로 봉합되고 단단해진다. 곤히 주무시고 계실 엄마에게 미안하지도 않은지



그대가 날 사랑해준다면



남자는 지하철 타고 대학입시 학원도 다녀야지, 생각한다. 이건 뭐, 그의 나이 어쩌면 서른 아홉이지만 문제없어요, 그녀와 맞담배를 피며 남자는 생각한다. 당신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당장 내일 아침 일어나 양말을 갈아 신고 15번 버스에 오르리라 남자는 마음 먹는다. 그리고 고된 특수용접 수강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지하철 타고 대학입시 학원을 찾아 등록해야지, 마음 먹는다. 문제없어요.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없어요. 남자는 우두커니 행복해진다. 그러니 대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쏟아지는 창밖의 눈을 바라보며 남자는 생각한다. 



그대가 날 사랑해준다면. 

그대가 날 사랑해준다면. 



김일두의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나는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나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맞기 때문에 가타부타 다른 말을 붙이고 싶지 않다. 다만 타본 적 없는 15번 버스를 언젠가 꼭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다 안 오면 84번 버스를 타도 좋을 것이며 그토록 기다린 361번 버스가 온다면 142번 버스에 올라도 문제없을 것이다. 행선지가 어디라도 문제없어요. 애초에 ‘답’이란 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삶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인데 문제도 숙제도 아닌 삶의 한 가운데에서 문제처럼 숙제처럼


김일두가 노래한다. 

문제없어요.



[당신은 어떤 '가요'] "문제없어요. 그대가 날 사랑해 준다면"

[당신은 어떤 '가요'] 고전이 빛나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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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박민규

소설가
1968년생. 2003년 문학동네작가상으로 등단. 소설집 『카스테라』, 『더블』,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이 있음.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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