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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말고 ‘K인문’이 만든 K팝과 K푸드

- K컬처로 인문하기 -

이호영

2020-09-29

 

 

k컬처로 인문하기는?

 


문활동이 활발하면 인문학도 덩달아 잘 팔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 인문학의 현실은 개점 폐업 상태다. 대다수 동네 점포는 편의점으로 탈바꿈했지만 시골에 가면 유통기간이 다 되어가는 과자 몇 개 진열해 놓은 찌그러진 구멍가게를 볼 수 있다. 한국 인문학이 이 꼴이다. 오십 년 이상 신상품 없이 유행에도 뒤처진 먼지 쌓인 물건만 남았다. 이러니 인문학은 어디서도 안 먹힌다. 또한 K컬처를 제조한 공장은 ‘K인문’이지 ‘인문학’이 아니란 점을......



K컬처의 주역은 인문 담론



영국의 음반판매점 HMW(이미지 출처 : 트립어드바이저)

▲ 영국의 음반판매점 HMW(이미지 출처 : 트립어드바이저)



‘서점에는 혐한, 타워레코드 음반매장에는 K팝’. K컬처는 일본 문화의 한 부분이다. 멍멍이 니퍼로 유명한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위치한 음반매장 HMV에도 K팝은 거대한 섹션을 차지한다. 1990년대 HMV에는 한국 전통음악을 제외하고 영화도 CD도 없었다. 10년이 흐른 뒤 <올드보이> 같이 마니아 취향 영화 몇 편과 새로 뜨는 K팝 몇 장을 2층 구석에서 근근이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19년 K팝은 HMV 1층의 중앙을 차지했다.


K컬처를 만든 건 한국의 ‘인문’이다. 인문은 최전성기지만 안타깝게도 ‘인문학’은 아니다. 지난 2015년 연세대학교 졸업식에 “연대 나오면 뭐하니? 백순데!”라는 현수막이 걸린 걸 보면 이제 인문학은 위기를 넘어 장례절차를 밟고 있다. K팝과 달리 해외에서 한국 인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게 증거다. 인문이 주제이니 인문학과의 관계를 잠시 짚어보자.


사람들은 어떤 상품이나 생각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디자인인 좋다거나, 용도에 맞는다거나 가격에 혹했다는 등의 이유로 지른다. 감정은 지르고 이성은 이유를 댄다. 이성은 감정을 객관적인 것처럼 포장한다. 이 둘이 만나면 가치가 생겨나고 이 가치가 인문이다.


한국에는 수많은 인터넷 동호회가 있다. 이들은 사건을 해설하고 토론하며 물건을 평가한다. 디시인사이드(dcinside)가 유명해진 건 카메라를 공동구매해서가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를 리뷰하고 토론해서다. 색을 표현하는 건 카메라지만 색을 느끼는 건 사람이다. 한국이 국제적인 테스트베드*가이 된 이유도 바로 ‘평가’ 즉 ‘인문’가치에 대한 공론의 장을 대대적으로 만들어 낸 덕분이었다.

* Testbed. 과학 이론, 계산 도구, 신기술에 대해 엄격하고 투명한 테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플랫폼


다양한 커뮤니티가 모두 DC갤러리에서 시작했다. 자유로운 게시판 문화가 카메라를 넘어 국가, 가족, 성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제는 셀 수도 없는 곳에서 인간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그렇다. 지금 우리 ‘K사회’는 단군 이래 인문의 최대 홍수 속에 살고 있다. K인문은 K컬처를 제조하는 공장들이다.



현실의 ‘인문학’은 찌그러진 구멍가게 신세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면 유통업자가 상점에 배급한다. 인문과 인문학의 관계도 유사하다. 인문은(이) 인간의 감정에 기반을 두고 가치 및 사회적 현상을 창출한다면 인문학은 이 가치를 가공 처리하여 문학, 사학, 철학으로 분류한 뒤 완성품으로 만들어 배급한다.


인문 활동이 활발하면 인문학도 덩달아 잘 팔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 인문학의 현실은 개점 폐업 상태다. 대다수 동네 점포는 편의점으로 탈바꿈했지만 시골에 가면 유통기간이 다 되어가는 과자 몇 개 진열해 놓은 찌그러진 구멍가게를 볼 수 있다. 한국 인문학이 이 꼴이다. 오십 년 이상 신상품 없이 유행에도 뒤처진 먼지 쌓인 물건만 남았다. 이러니 인문학은 어디서도 안 먹힌다. 또한 K컬처를 제조한 공장은 ‘K인문’이지 ‘인문학’이 아니란 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K컬처의 인문학적 연구가 더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구할 도구도 생각도 없으니 못하는 것이다. 자업자득이니 동정도 필요 없다.



닮은 꼴 다른 꼴, K와 B



K팝은 어쩌면 영국 브릿 팝(Britt Pop)과 닮았다. 그래서인지 2019년 BTS는 1964년 미국 CBS TV ‘에드 설리번 쇼’로 데뷔한 비틀즈를 오마쥬하며 같은 극장에 출현했다. 비틀즈가 ‘브리티시 인베이젼’(영국가수의 미국 공략) 대표였다면 BTS는 ‘코리안 인베이젼’의 간판스타이다. 그래서 ‘BTS 인베이젼’(방탄소년단의 미국 음악 시장 공략)’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K와 B, 영국과 한국, 닮기도 했지만 다르다. 영국은 한국과 달리 ‘음식’으로 세계 공략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는 게 차이다.



비틀즈가 미장원과 양복점을 찾은 이유



전설의 밴드 비틀즈(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 전설의 밴드 비틀즈(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60년대 영국은 현재 한국과 유사했다. BTS도 재현했듯, 56년 전 ‘에드 설리번 쇼’에 비틀즈는 단정한 머리에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비틀즈는 로큰롤 밴드다. 로큰롤의 전매특허인 헤드뱅잉(Head Banging)에는 수려하고 풍성한 머릿결과 쇠못 달린 가죽 재킷이 필수다. 그런데 샌님 복장에 영국 양반 말투였다.


쇼가 끝나면서 로큰롤 팬들은 혹평했다. 하지만 비틀즈가 노린 건 로큰롤 팬보다는 엄마 아빠였다. 전쟁 이후 미국은 가장 잘나가는 강대국이었지만 전후복구에 힘겨워했던 영국은 경제지원을 받는 변두리로 전락했다. 미국의 로큰롤은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매체를 넘어 라이프 스타일, 패션, 사고방식  등에서 전 세계적 변혁을 가져왔다. 문제는 ‘흥청망청’ 이었다. 놀기 좋아하고 유행에 민감한 10대에게 록큰롤은 술, 담배, 성적 문란에 마약까지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보수적 청교도주의 미국 부모들은 이상한 춤을 추며 광란하는 척베리와 엘비스를 혐오했다.


비틀즈라고 머리 기를 줄 모르고 찢어진 청바지 없는 게 아니었다. 미국에 가기 전 비틀즈도 히피였다. 그러나 비틀즈를 발탁하고 길러낸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마치 BTS의 프로듀서 방시혁처럼 그들을 미장원과 양복점으로 보내 예쁘게 포장하여 미국으로 수출했다. 흐느적거리고 더러운 마약중독자와 깔끔하고 귀티 나는 영국 젊은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가사도 그렇다. 비틀즈는 “뜨거운 밤을 보내자”가 아니라 그저 “손만 잡겠다(I Want to Hold Your Hand)”고 한다. 부모의 열광은 당연했다. 이후 비틀즈는 빌보드 10위 안에 6곡을 넣을 정도로 승승장구한다.


‘영국침입’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브릿 팝은 타깃과 포장에 차별을 두어 성공했다. 더 나아가 전통 흑인 음악인 블루스를 백인도 즐길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전쟁으로 다 찌그러진 영국이 문화적으로 다시 미국의 형님 노릇을 하게 된 건 말하자면 조지 마틴의 미장원과 양복점 혁명 덕분이었다.



음식 블로거 논쟁·평가, K푸드의 원동력



한국도 종합, 포장, 이미지 그리고 선전에 능하다. 아니, 치열한 경쟁 속에 살다보니 능하게 훈련받았다. 그리고 브릿 팝과 유사한 길을 발견하였다. K팝이 가장 선두에 서고 뒤를 K드라마, K영화, K푸드, K건강, K뷰티까지 따라 걷고 있다. 싱가포르의 브랜드 전문가 마틴 롤은 “지난 수십 년간 K팝은 단순히 스쳐 가는 유행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한류 열풍이 확실히 자리 잡았으며 한국에게 축복 같은 존재다”라며 높게 평가하였다.


K방역이야 몇 년 전 메르스에 대한 반성이라 놀랄 일이 아니라 치자. K컬처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성공은 아마 강렬한(firing) 맛이라는 K푸드일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 한식의 세계화를 정부 정책으로 시행하며 돈은 썼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 한식이 세계적인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음식문화는 보수적이다. 전통과 개량 논쟁에서 한복과 함께 한식은 항상 전통의 굳건한 지지자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일제 강점기 때에도, 개발독재시대에도 변하지 않던 한식에 급격히 퓨전이 늘어났다.


K푸드의 국제화를 만들어 낸 원동력은 한식을 베이스로 한 퓨전 트렌드였다. 한식도 비틀즈처럼 미장원 들렀다 양복점에서 예쁘게 포장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K푸드에 농심이나 CJ푸드같은 식료품 회사들은 방시혁이나 조지 마틴이 아니라 그저 보조였다. 그렇다면 누가 한식을 미장원과 양복점으로 데리고 갔을까 궁금하다.


2000년대 이래 인터넷과 스마트폰 속의 음식 블로그들 중심으로 맛에 대한 기준이 새로 생겨났다. 블로그마다, 음식점마다 수많은 댓글이 달리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이 인문 논쟁이 바로 비틀즈를 탄생시킨 미장원이고 양복점이었던 셈이다. ‘부먹’과 ‘찍먹’이라는 농담부터 심각하게는 몇 백 년 된 간장 맛에 대한 역사적 탐색과 재현까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대규모 맛에 관한 언어와 담론이 음식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프랑스에는 와인에 대한 단어가 3천 개라 한다. 대표적 프랑스-라틴 문화인 와인은 인문 토론 과정을 통해 프랑스를 넘어 세계의 음료가 되었다. 맥주나 커피도 같은 길을 걸었다. 전통 한식을 K푸드로 변신시킨 것 역시 토론과 가치부여, 즉 인문의 힘이었다.



세계인들과 함께 만드는 K컬처



‘K’가 붙었다고 K팝이나 K푸드 모두를 한국인의 것이라 생각하면 오해다. 대부분의 ‘K’는 한국인 단독이 아니라 외국인과 협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BTS의 경우 대표 프로듀서인 피독은 한국인이지만 외국인 작곡가도 많다. 블랙핑크를 비롯해 많은 K팝 가수의 작곡, 프로듀서와 사운드 엔지니어에 외국인이 참여한다. 하나의 K팝을 완성하려면 평균 200명 정도 외국인의 함께 한다. 참 다행스럽게도 K푸드, 요즘 잘나가는 K맥주 등 모든 ‘K’가 붙은 분야에서도 외국인 셰프들이 활약한다. K는 혼자 독식하는 독불장군이 아니다. 세계가 함께 ‘K’를 만들고 즐겨야 ‘K’도 ‘보편적 문화’라는 완장을 찰 수 있는 것이다.



K컬처 꽃피운 인문, 인문학에도 한푼을



문학이나 사학 또는 철학(만)이 인문이 아니고 사람이 가치를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유로운 활동이 인문이다. 과학조차 시대와 호응하지 못하고 인간적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면 의미를 잃는다. 어느 시대에나 시대에 걸맞은 인문 활동이 있기 마련이다. 아마 K컬처는 한국 인문의 르네상스와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게 아닌가 한다. 그래서 우리는 K컬처로 인문하고, 인문으로 K컬처의 꽃을 피우고 있다.


2019년 5월에 영국 프릿 팝의 상징인 옥스퍼드 스트리트 HMV가 문을 닫았다. 우리가 영국의 바통을 이어받아 K컬처로 활짝 꽃을 피울 수 있을지는 오롯이 우리 인문의 제조 능력에 달렸다. 여유 있으면 희망을 잃은 우리 인문학에게도 한 푼 던져주었으면 한다.




[K컬처로 인문하기] '인문학' 말고 'K인문'이 만든 K팝과 K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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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영
이호영

서라벌 고등학교를 거쳐, 서강대학교 종교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철학과 대학원에서 중국철학으로 박사를 수료했다. 런던대학교 동양과아프리카연구학교(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청(淸)나라의 고증학자 대진(戴震)의 철학으로 중국종교철학 박사(Ph. D.)학위를 받았다. 중국 유학이 전공이며, 관심은 동아시아에서 즐거움 추구다. 즐거움이라는 관심 아래 쓴 저서는 『공자의 축구 양주의 골프』, 『여자의 속사정 남자의 겉치레』,『스타워즈 파보기』, 『덕후 철학』 등이 있음. 서강대학교, 세종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중앙대학교에서 강사 및 서강대 종교연구소, 중앙철학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서강대학교 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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