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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전통을 계승하고 전복하며 탄생한 예술

-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

박인하

2020-09-29

 

 

장르문화 속 인문찾기는?

 


쟁자인 월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1896년 «뉴욕저널»에 일요판 컬러 부록을 도입하며 역사상 두 번째 인기 만화였던 캐릭터를 과감하게 스카웃한다. 빈민가에 사는 바보 꼬마는 자학적 개그와 통쾌한 풍자를 넘나 들며 인기 캐릭터가 되었다. 하지만 «뉴욕월드» 발행인이었던 퓰리처는 작가인 아웃코트가 뉴욕저널로 자리를 옮겼음에도, 다른 만화가를 고용해 옐로우 키드를 연재한다. 옐로우 키드를 둘러싼 저작권 분쟁이......



그림으로 소통을 즐겼던 인류



고대 이집트 시절 관속에 미이라와 함께 넣어둔 사후세계에 대한 안내서 ‘사자의 서’(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 고대 이집트 시절 관속에 미이라와 함께 넣어둔 사후세계에 대한 안내서 ‘사자의 서’(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인류는 오래 전부터 그림으로 소통하는 걸 즐겼다. 선사시대 동굴벽화만 봐도 그림은 소통을 위한 언어였다. 그렇다고 만화의 역사를 선사시대로 끌어올리려는 건 아니다. 만화는 인류에게 친숙한 이미지 언어를 매체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구체화되었다. 누군가가 멋지게 발명한 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매체의 발전과 함께 조금씩 제 모습을 갖춰갔다. 인류가 지닌 전통과 관습에 따르면서도 근대 이후 전통과 관습을 전복시키는 과정에서 만화가 등장했고 발전했던 것이다. 


인류는 연속된 그림에 이야기를 담는 걸 즐겼다. 선사시대 동굴벽화는 규칙이 없어 보이지만 분명 그 안에도 이야기가 있다. 그림과 상형문자가 결합된 이집트의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 기원전 3,000년 경)>가 그렇고, 로마 시대 트라야누스 황제의 다키아(루마니아) 원정 업적을 거대한 기둥에 나선형 부조로 묘사한 ‘트라야누스 기념원주(113년)’도 이야기를 담은 연속그림이다. 노르망디 월리엄 1세의 영국 정복 이야기를 자수로 표현한 ‘바이외 테피스트리(Bayeux Tapestry, 1066-1082)’도 68미터에 달하는 길이에 그림으로 여러 이야기를 담았다. 일본의 헤이안 시대 후기(12세기)에 제작된 두루마리 그림 중 하나인<조수인물희화(鳥獸人物戱畵)>에도 사람처럼 행동하는 동물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사자의 서>나 기념원주, 테피스트리, <조수인물희화>가 만화는 아니다. 그림에 이야기를 담아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싶은 인류의 욕망은 인쇄매체가 등장하고 난 뒤 비로소 구체적인 틀을 갖추었다. 



일상을 그린 풍속화에서 시대를 풍자하는 만화로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그림(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그림(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주로 신의 세계를 그리던 회화의 역사에서 세속적인 주제는 16세기가 되어 등장했고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등으로 분화되었다. 18세기 왕이나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거대한 역사화를 그리던 작가들 중 일부가 자신이 사는 시대에 눈을 돌렸다. 주변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을 풍속화라 불렀다. 18세기 초반 영국의 로코코 화가 월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는 당시 유행하던 희극과 부르주아 드라마를 풍속화에 접목시켰다. 여러 장으로 이어지는 호가스의 연작 풍속화는 18세기 영국의 일상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귀족들의 허위를 폭로했으며, 탐욕스러운 이들의 몰락을 보여주었다. 열다섯 살부터 판화공방에서 일을 했던 월리엄 호가스는 자신이 그린 풍속화를 판화로도 제작했다. 월리엄 호가스는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궁전이나 살롱을 벗어나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월리엄 호가스가 보여준 연작 풍속화(풍자화)는 이야기 그림의 전통을 빠르게 발전하는 인쇄 기술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 이후 격렬한 사회 변화의 과정에서 풍자만화가 효율적으로 활용되었다.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린 풍자만화는 어느 격문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풍자만화는 신문에 실리기도 했지만, 별도의 인쇄물로 제작되어 배포되었다. 프랑스의 풍자화가 샤를 필리퐁은 풍자잡지 «샤리바리(le Charivari)»를 1832년 12월 1일부터 출간했다. 19세기 초반 런던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풍자만화를 판매하는 상점이 번성했고 제임스 길레이(Jamess Gillray), 조지크룩생크(Georgee Cruikshank), 토머스 로랜드슨(Thomas Rowlandson) 등은 풍자만화를 꾸준히 발표했다. 



만화잡지의 탄생, 풍자만화 발전의 동력이 되다



영국의 풍자만화잡지 펀치 1843년 표지(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 영국의 풍자만화잡지 ‘펀치’ 1843년 표지(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신문에 실리거나 포스터에 가까운 형태로 유통되던 풍자만화는 만화잡지가 창간되며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1841년 7월 17일 영국에서 풍자만화와 익살스러운 유머만화를 모은 잡지 «펀치(punch)»가 창간되었다. «펀치»는 중산층이 보는 풍자잡지였는데 9만부를 판매하는 큰 성공을 거뒀다. 가격만 싸다면 우스개 만화를 볼 수 있는 독자를 더 확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출판인들은 몇 십년 뒤 1페니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타블로이드 주간지 «주디(Judy, 1867)»,«웃기는 사람들(funny Folks, 1874)», «스크랩스(Scraps, 1884)», «앨리 슬로퍼의 반나절의 휴일(Ally Sloper’s Half Holiday, 1884)»를 창간했다. 예상대로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고 중산층의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특히 잡지의 제목이 된 캐릭터 ‘앨리 슬로퍼’의 인기가 대단해 1898년, 1921년 영화로 제작되었고, 카드, 인형, 라이터, 파이프와 같은 캐릭터 상품이 나오기도 했다. 


1890년 젊은 출판인 알프레드 하먼즈워스(Alfred Harmsworth)는 기존 잡지의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는 1/2페니 잡지 «코믹커츠(Comic Cuts)», «일러스트레이티드 칩스(Illustrated Chips)»를 창간한다.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노동자를 겨냥한 싸구려 잡지가 창간되자 중산층은 1페니짜리 잡지가 나왔을 때 보다 더 격렬하게 하먼즈워스의 잡지를 비난했다. 만화는 글보다 열등하고, 독자들의 도덕성을 타락시키며, 심지어 만화가 시력을 떨어트린다고 했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만화잡지를 저속하다고 비난했지만,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엘로우 저널리즘’의 기원이 된 만화까지



THE YELLOW KID AND HIS NEW PHONOGRAPH.

▲ 1896년 10월 25일 뉴욕저널에 처음 등장한 만화 ‘옐로우 키드’(이미지 출처 : 노르웨이대백과사전)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만화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상륙했다. 죠셉 퓰리처(Joseph Pulitzer)는 미국에 이민 온 영어를 못하는 수많은 이민자들에게 신문을 팔기 위해 1883년 «뉴욕월드(New York World)» 일요판에 컬러 부록을 신설해 신인 만화가들의 작품을 수록했다. 1895년 5월 5일부터 리처드 펠튼 아웃코트(Richard Felton Outcault)는 뉴욕의 빈민가 호건 골목(Hogan’s Alley)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호건 골목’ 시리즈를 발표했다. 이 만화에 등장한 노란 옷을 입고, 귀가 커다란, 아일랜드계 이민자 꼬마는 마치 앨리 슬로퍼처럼 인기를 끌었다.


경쟁자인 월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가 1896년 10월 «뉴욕저널(New York Journal)»에 일요판 컬러부록을 도입하며 역사상 두 번째 인기 캐릭터 ‘옐로우 키드’를 과감하게 스카웃한다. 아웃코트가 1896년 10월 25일자부터 <옐로우 키드(The Yellow Kid)>라는 제목으로 인기 캐릭터를 앞세워 만화를 연재한 것이다. 빈민가에 사는 바보 꼬마는 자학적 개그와 통쾌한 풍자를 넘나 들며 인기 캐릭터가 되었다. 노란 꼬마는 앨리 슬로퍼가 그랬듯이 각종 상품으로 제작되어 판매되었다. 하지만 «뉴욕월드(New York World)» 발행인이었던 퓰리처는 작가인 아웃코트가 인기 캐릭터와 함께 뉴욕저널로 자리를 옮겼음에도, 다른 만화가를 고용해 옐로우 키드를 연재한다. 옐로우 키드를 둘러싼 저작권 분쟁이 일어났고, 이후 신문의 선정주의적 행태를 묘사할 때 ‘옐로우 저널리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만화가 걸어은 두 길, 시사만화와 코믹만화



20세기 코믹만화의 틀을 완성한 ‘아빠기르기’ 책표지(이미지 출처 : 아마존 서점)

▲ 20세기 코믹만화의 틀을 완성한 ‘아빠기르기’ 책표지(이미지 출처 : 아마존 서점)



20세기 초반 만화는 2개의 길로 나뉘었다. «펀치»가 보여준 풍자만화는 오스트리아의 «키케리키(Kikeriki, 1861-1933)», 미국 «퍽(Puck, 1871-1918)», «저지(The Judge, 1881-1947)», 일본 «도쿄 퍽(東京パック, 1905-1923)» 등으로 이어졌다. 우리에게는 시사만화라는 이름으로 더 친근한 만화다. 


1페니, 1/2페니 잡지에 연재된 우스개 만화는 미국 신문의 일요판 컬러 부록에서 명확한 캐릭터성을 얻고, 미국 신문 특유의 기사 배급시스템인 신디케이트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확장된다. 1913년 킹 피쳐스에서 배급된 조지 맥머너스(George McManus)의 <아빠 기르기(Bringing Up Father)>는 미국은 물론 세계로 배급되어 20세기 초반 우스개 만화의 틀을 완성했다. 


석공과 세탁부였던 아일랜드계 이민자 직스와 매기 부부가 복권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된 후 딸 로라의 지도를 받아가며 상류사회의 여러 풍습을 익히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아빠 기르기>는 일본과 한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간략한 그림에 수컷으로 많은 내용을 담은 20세기 초반 만화는 당대의 가장 혁신적인 형식이었다. 아소 유타카(麻生豊)는 <아빠 기르기>를 참조해 <태평한 아버지(ノンキナトウサン)>를 1922년부터 «호치신문(報知新聞)»에 연재한다. 1923년 일본 «아사히 그라프»는 <아빠 기르기>를 그대로 연재했고, 1924년 한국 «시대일보»에는 맥머너스의 다른 만화인 <신혼부부와 그의 아기(The Nnewlyweds and Ttheir baby)>가 <엉석바지>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다. 1924년 «조선일보»에는 김동성이 기획하고 노수현이 그림을 그린 네칸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가 연재된다. 20세기 초반 네칸으로 구성되고, 우스꽝스럽지만 당대의 상황을 담은 풍자적인 캐릭터가 나오는 우스개 만화는 <아빠 기르기> 이후 일본과 한국에도 신문연재만화의 표준으로 정착되었다.


2020년 우리는 일상적으로 만화를 접한다. 웹툰, 시사만화, 잡지만화, 그래픽 노블 등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만화는 복잡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림으로 소통하려는 인류의 오래된 욕망에서 시작한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을 그림에 담으려는 몇몇 화가들의 시도는 풍속화를 낳았다. 18-19세기 만화는 신문과 잡지를 만나 다시 혁신된다. 풍자만화는 풍속화보다 더 빨리, 많이 제작되어 판매되었다. 20세기 미국에서는 상업적 욕망이 우스개 캐릭터를 칸 안에 담기 시작했고, 이 효율적인 형식은 일본과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만화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전통을 계승하면서 또한 전복하며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확장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만화, 전통을 계승하고 전복하며 탄생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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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박인하

만화평론가, (사)한국만화가협회 부설 만화문화연구소 소장
1995년 스포츠서울 만화평론 당선된 후 꾸준히 만화비평과 연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02년부터 2020년 8월까지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만화기획, 연구, 교육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만화를 위한 책』, 『아니메가 보고 싶다』, 『누가 캔디를 모함했나』, 『박인하의 즐거운 만화가게』, 『꺼벙이로 웃다, 순악질 여사로 살다』, 『아니메미학 에세이』, 『장르 만화의 세계』, 『골방에서 만난 천국-박인하의 만화풍속사』, 『월트 디즈니 VS 미야자키 하야오』, 『시대를 읽는 만화』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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