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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 격차

- 오늘, 키워드 인문학 -

문요한

2021-09-24

오늘, 키워드 인문학은?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 마음,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여러 키워드들……. 우리는 왜 어쩌다 이들의 움직임과 향방에 대해 시시때때로 관심을 기울이고 촉각을 세우게 되는 걸까요? 각계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시선을 통해 우리 모두의 지금을 좌지우지하는 다양한 키워드들에 대해 흥미롭고도 새로운 인문학적 통찰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친절이 넘쳐난다. 한동안 전화기나 TV에서 들어야 했던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이나, 출근길에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로부터 거수경례를 받거나, AS 센터나 백화점을 방문해서 배꼽인사를 받을 때마다 나는 불편하다. 정반대의 모습 또한 너무 흔하게 본다. 이웃에 대해 최소한의 친절이나 예의도 없는 모습이다. 서비스 직원에게 막말을 퍼붓고, 입주민의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폭행하고......



넘쳐나거나 아예 없거나, 친절의 양극화



친절한 응대

친절한 응대



얼마 전 노트북에 이상이 생겨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들어서자마자 화사하게 웃는 직원이 신속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번호표를 대신 뽑아주며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금방 차례가 왔다. 창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담당 기사가 일어나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맞이해주었다. 거의 90도 가깝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서는 무슨 문제로 왔는지 물었다. 기기의 이상을 설명하자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수리는 금방 끝났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담당 직원은 명함을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고 언제든지 이상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또 90도 인사를 하는 것 아닌가! 나도 얼떨결에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총 30분 정도 걸렸을까. 모든 게 깔끔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AS 기사의 친절함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그 친절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다음날 서비스 센터에서 문자가 왔다. 어제 받은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것이었다. 지나친 친절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는 친절이 넘쳐난다. 한동안 전화기나 TV에서 들어야 했던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이나, 출근길에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로부터 거수경례를 받거나, AS 센터나 백화점을 방문해서 배꼽 인사를 받을 때마다 나는 불편하다. 내 기준으로는 지나친 친절이다. 그에 비해 정반대의 모습 또한 너무 흔하게 본다. 같이 살아가는 이웃에 대해 최소한의 친절이나 예의도 없는 모습이다. 서비스 직원에게 막말을 퍼붓고, 입주민의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폭행하고, 도로 위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운전하는 등 불친절하고 무례한 모습 또한 흔하다. 어디 그뿐인가! 장애인 학교나 관련 시설은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그 어디에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친절한 곳인가? 불친절한 곳인가? 우리 사회의 친절은 철저하게 양극화되어 있다. 어떤 곳은 불필요한 친절이 넘쳐나지만 정작 친절이 필요한 곳에서는 최소한의 친절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빈부격차뿐 아니라 ‘친절 격차’가 너무 심한 사회이다.



번아웃 가속화, 감정체계 망가트리는 과잉 친절



상품이 되어버린 친절

상품이 되어버린 친절



친절이 넘쳐나는 곳은 일차적으로 시장이다. 기업은 인간의 감정을 이윤 추구의 도구로 활용한 지 오래다. 시장에서 친절은 이미 엄연한 노동이자 하나의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친절은 그 자체로 부가가치를 발휘한다. 노동자는 친절을 베풀고 고객은 그 친절을 서비스로 제공받고 비용을 지출한다. 그리고 고객은 평점을 매긴다.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친절의 경쟁도 거세진다. 친절은 더욱 치밀하게 가공되고 체계적으로 훈련되며 수치로 관리된다. 치아는 몇 개가 보이도록 웃고, 인사를 할 때 고개는 몇 도를 숙여야 하고, 시선처리와 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며, 대화는 어떻게 시작하고 끝을 맺어야 하는지 하나하나 매뉴얼화되어 있다.


이렇게 갈수록 치열해지는 친절 경쟁의 목표는 이미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감동'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아마 ‘고객 황홀’이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과잉 친절은 각종 부작용을 초래한다. 가장 흔한 예로 엉터리 존댓말이 난무하고 있다. ‘주문하신 커피가 나오셨습니다.’ ‘주사 맞으실게요.’ ‘그 메뉴는 안 되세요.’등 사물이나 행위에까지 존댓말이 붙여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과잉 친절이 번아웃을 가속화시킨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과잉 친절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결국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은 뛰어난 감정 연기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내면 상태에서도 마음을 평정시키고 고객을 감동시킬 준비가 되어야 한다. 즉, 자신의 어떤 감정도 억압하고 가짜 미소를 자연스럽게 지어내야 한다. 그 끝은 무엇일까? 자신의 진짜 감정을 점차 잃게 되어 감정의 혼란에 빠지고 이어 감정 마비와 감정 고갈로 이어지고 만다. 감정체계 자체가 고장 나는 것이다.



과잉 친절의 악순환... 공동체의 균열, 자아왜곡, 갑질



갑질

갑질



그뿐 아니다. 과잉 친절은 자아를 왜곡시키고 공동체를 균열시킨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과잉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사람은 갈수록 일에 대한 회의에 시달린다. ‘나는 거짓 웃음을 짓고 나를 속이면서 일을 해. 그리고 미소를 팔아 돈을 받아.’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자존감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반면에 과잉 친절을 받는 사람은 나르시시즘에 빠진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거짓 자존감을 말한다. 과잉 친절을 받을수록 ‘난 괜찮은 사람이야’를 넘어 ‘난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착각이 커진다. 마치 명품을 걸치거나 고급 승용차를 타면 자신이 그 브랜드와 융합되어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심한 경우 자신은 왕처럼 느껴지고 친절을 베푸는 노동자는 시종으로 보게 된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는 이렇게 정신적 양극화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과하게 친절을 팔면서 자아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지만, 누군가는 그 친절을 흡입하여 자아의 고양감이 커진다. 우리 사회의 나르시시즘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이다. 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과잉 친절로 소진되어가는 이들은 그 스트레스를 과잉 친절을 받는 것으로 보상받고 싶어 한다. 자신도 누군가로부터 과잉 친절을 받음으로써 구겨진 마음을 회복하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우리 시대의 친절의 기준은 점점 높아진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친절을 요구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상냥함과 웃음을 바란다. 이는 시장뿐 아니라 공공기관, 학교, 군대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심한 경우 직원들의 친절을 넘어 굽실거림을 요구한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윗사람을 불러 컴플레인을 하거나 민원을 낸다. 어떻게 보면 갑질을 낳은 것은 과잉 친절이라고 볼 수 있다. 고객과 민원인이 왕인 사회에서 노동자는 시종이 될 수밖에 없다.



진짜 친절을 위해 필요한 ‘자기 친절’과 ‘상호 존중’



상호 존중

상호 존중



물론 이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권위적 태도나 불친절함이 사라지는 긍정적 효과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잉은 억지스러움이며 병이 된다.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것은 진짜 친절이 아니라 상품화된 친절이다. 이는 인공적인 가짜 친절을 의미한다. 가짜 친절의 특징은 일방적이라는 데 있다. 아래에서 위로 흘러 들어갈 뿐이다. 위로 흘러간 친절은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받는 사람은 계속 친절을 받고, 베푸는 사람은 계속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그렇기에 친절은 형식적으로는 계급이 없어진 우리 사회에서 계급을 구별 짓게 하는 새로운 표식이 되고 있다. 즉, 상위 계급일수록 일방적으로 친절을 계속 받고, 하위 계급일수록 일방적으로 친절을 계속 베풀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진짜 친절은 무엇인가? 이는 대가 없이 베푸는 것이며 주고받는 친절을 말한다. 친절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누려야 할 특권적 권리가 아니라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이웃끼리의 인간적인 예의이자 상호 배려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연스러운 친절이 흐르는 곳이 건강한 사회이다. 친절을 베풀면 친절로 되돌아올 때 공동체가 성립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상품화된 친절 말고 진짜 친절을 되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자기 친절이다. 친절이 순환되려면 무엇보다 자신에게 친절해야 한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할 때 비로소 우리는 대가 없이 상대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고, 상대에게 과도한 친절을 바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을 베풀면서 정작 자신은 함부로 대한다. 친절의 범주 안에 자기를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좀 더 따뜻한 시선과 표정으로 바라보자. 자기 친절 또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다. 둘째, 상호 존중이다. 우리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개인의 자존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비행선을 타고 있는 우주여행자 들이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를 뿐 이 여행을 함께 하는 동행자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존중과 친절을 베풀 존재들이 아닌가!



[오늘, 키워드 인문학] 친절 격차

- 지난 글: [오늘, 키워드 인문학] 왜 환상적인 이야기야말로 진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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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요한
문요한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
전남대 의과대학교 졸업. <더 나은 삶 정신과> 의원을 운영했고, 현재 원장과 마음 훈련 교육기관인 <정신경영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현대인들의 타고난 적응력만으로는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갈 수 없기에,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임상에서 벗어나 현대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7년도부터 정신과 임상에서 벗어나 마음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한 ‘바운더리 다시 세우기’, 심신 통합 프로그램인 ‘치유 걷기 Therapeutic Walk’와 ‘몸챙김 bodyfulness 프로그램’ 등이 있다. 2021년도부터는 심리학 전문교육기관인 ‘심학원心學院’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3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굿바이, 게으름』을 시작으로 『그로잉』, 『천 개의 문제 하나의 해답』, 『마음 청진기』, 『스스로 살아가는 힘』, 『여행하는 인간, Homo Viator』, 『관계를 읽는 시간』, 『이제 몸을 챙깁니다』, 『오티움 Otium』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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