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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토리아 : 우주의 맛

박찬일

2017-02-23

우주의 맛


어렸을 때 우리는 소년잡지를 보고 자랐다. 아마도 일본의 유사한 소년잡지의 기획을 모방한 것일 텐데, 이런 기사가 늘 실렸다. “미리 가보는 2천년대”.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다. 기억나는 중에 제법 맞힌 것도 있다. 무선전화기, 장기 이식, 우주여행(대중화는 아니지만). 물론 틀린 것도 많았다. 그 중의 하나가 “대용식 시장이 열리고, 많은 끼니를 우주식으로 대신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맷 데이먼이 우주에서 감자를 키운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저 우주식 정도였다. 튜브를 물고 빠는 사람들의 삽화가 실렸다. ”철수의 도시락은 오늘 김치맛 튜브입니다“ 뭐 이런 기사도 기억난다. 더러 알약 형태의 음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것도 얼추 맞는다. 지금 우리는 온갖 영양제와 건강보조식품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우주식품은 영양 공급을 중심으로 압축, 경량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소년잡지의 편집자처럼. 그러나 당대의 우주식은 사실적으로 묘사한 우주 소재 영화에서 목격하듯, 여전히 지구인(?)의 일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스테이크를 먹으며(미디엄 레어 주문은 안되지만), 스파게티를 먹는다(퉁퉁 불었을 게 틀림없어도). 커피맛 정제 대신 진짜 커피를 마신다. 맷 데이먼과 그 동료들처럼 배설물 봉지를 처리해가면서. 얼마 전에 라면에 관한 일본 잡지를 읽었다. 거기에는 일본 국적 우주인에게 라면이 공급된다고 써 있었다. 차슈(일본 라면에 꼭 들어가는 돼지고기 구이 토핑)와 면이 진공된 팩 안에 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라면이 아닐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4개월간 우주정거장에서 머물다 귀환한 오니시 다쿠야는 ”라면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 우주에 가면 지구의 라면이 먹고 싶을 것 같다. 우리나라 우주인은 십여 년 전 김소영 씨 이후로 올라간 사람이 없어 음식 발언을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일본과 달리 봉지 라면이 인기이니, ”새로 나온 00면을 먹어보고 싶다“고 할까. 아니면 많은 이들의 기대(?)가 예상되는 ’김치‘를 먹고 싶다고 할까. 어떤 경우든 해프닝이 예상된다. 늘 그렇듯이. 그의 집에 라면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라면 박스를 보낸 뒤 ”평생 먹을 라면을 공급하겠다“(그래 봐야 돈은 얼마 안될 게 분명한)고 보도자료를 낼 것이다. 김치라고 하면, 아마 명예김치박물관장직을 제안하지 않을까. 전국에서 제각기 집안의 손맛대로 담근 김치가 답지하고, 우주인의 어머니는 김치 처치에 곤란해 한다는 기사가 나가고, 김치냉장고회사에서 대용량 제품을 몇 대쯤 보낼지도 모르겠다.

 

영화 <마션>에서 맷 데이먼은 생존을 위해 감자를 기른다.

▲ 영화 <마션>에서 맷 데이먼은 생존을 위해 감자를 기른다.

 

이 칼럼을 쓰기 전, 나는 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주를 주제로 무슨 음식 얘기를 쓴담, 이었다. 그 즈음 일본 출장을 갔다. 깊은 산골, 공기는 맑고 산은 깊었다. 별이 총총 뜨고 거의 은하수 같은 별무리가 보일 정도였다. 오랜만에 방패를 닮은 오리온과 카시오페이아, 북두칠성을 보았다. 그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별을 보러 몽골에 여행가는 이들이 있는 나라니까. 그 별들을 보고선 나는 우주식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원고의 아이템을 연결 지었다. 나는 심야에도 문을 여는, 그 산골에 단 하나 있는 야식집을 가는 중이었다. 거기서 짬뽕을 먹었다. 우주인은 절대 이걸 먹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앞서 말한 우주인 오니시는 우주에서 생쥐를 사육하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베 총리가 생쥐를 위안부로 쓸 수 있는지 실험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가축 사육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젖과 고기를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는 실험이었을 것이다. 생쥐 사육에 성공하면 다음에는 토끼, 그 다음에는 돼지와 양을 길러볼 것이다. 화성 어디쯤에 추위를 견디는 텐트를 치고 맷 데이먼이 감자를 기르듯 돼지를 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긴 감자를 길러 사람의 생명이 유지된다면, 소나 말인들 사육하지 못하겠는가(그래도 물론 감자를 제일 좋아하는 건 돼지다).

 

미각은 아마도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물이 가진 능력일 것이다. 미물도 맛을 알아서 맛 좋은 것을 먹는다. 맛이 좋다는 건 공교롭게도 대개 생명 유지에 유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명체는 그렇게 진화되어 왔다. 우리가 당(단 것은 물론 탄수화물에 포함된다)에 그처럼 열광하는 것도 그런 신의 설계, 아니 진화의 과정에서 생긴 필연적인 본능이다. 인간이 우주선을 띄우고 거기서 생쥐를 기른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믿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저 오늘 저녁에 무얼 먹을지, 튀긴 음식이 다이어트에 안 좋으니까 딱 한 개만 먹어야지 하고 결심하는 데 몰두한다. 나는 우주에 대해 모른다. 그것은 밤하늘의 별과 동일하다. 보이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조지 클루니나 맷 데이먼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주는 여전히 미지의 대상이다. 우리는 그저 먹고 자고 일상을 산다. 그리고 호킹의 말처럼 “그저 먼지로 사라질 뿐”이다. 아, 그 말은 유한한 우리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그러니까, 너무 고민하지 말고 열심히 놀고 먹으란 말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와인과 음식, 수저포크세트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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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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