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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토리아 : 인류는 혼자서 행복하기는 힘듭니다

최낙언

2016-09-21

인류는 혼자서 행복하기는 힘듭니다


요즘 인터넷 먹방이 인기라고 합니다. 먹거리 방송이지만 기존의 방송과는 많이 다릅니다. 기존의 방송이 음식에 대한 어떤 정보를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것에 비해 요즘은 그저 개인방송 자키들이 자신의 먹는 모습만을 보여줍니다. 음식도 떡볶이, 치킨, 탕수육, 짜장면 등 아주 평범합니다. 남이 먹는 것을 쳐다보면서 채우려 하는 욕망은 무엇일까요? 최근에 커피숍이 엄청나게 늘었고,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지요. 공부는 조용한 집이나 도서관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조금 부잡스럽거나 시끄러운 카페에서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은 1인 가구의 비중이 폭발적으로 높아지고, 그만큼 혼밥, 혼술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자유로워진 셈인데 행복해진 사람도 그만큼 늘었을까요?

 

카페 테이블 위 커피와 노트북

▲ 사람들은 인간관계도 부담스럽고, 같이 밥을 먹는 것보다 혼자 먹는 것을 선호하면서도
소외감은 두려워 카페에서 공부하고, 남이 먹는 먹방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인간의 유별난 점은 큰 뇌를 가졌다는 것인데, 뇌는 정말 부담스러운 에너지 과소비 기관입니다. 이런 큰 뇌는 미래의 인간이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라고 만들어진 기관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삶의 환경은 너무나 악화되어 나무에서 내려와야 했고, 인간들은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에 노출되었습니다. 협력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을수록 생존에 유리했고, 큰 사회적 무리를 이루려면 무리의 규모에 비례하여 뇌의 크기가 커져야 했다고 합니다. 사회성이 가장 고도의 뇌 활동인 셈이죠. 그리고 이런 사회성은 저절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경험과 훈련을 통해 점점 형성되는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또래와 놀고 다투면서 사회적 규칙을 훈련하고 알아가기보다는 학교와 수업의 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뇌에 사회성 회로가 정상적으로 정착이 될 기회를 박탈당한 채 뇌 발달의 결정적인 시기를 지나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 이 문제의 폐해와 심각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인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 정말 큰 일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인간관계도 부담스럽고, 같이 밥을 먹는 것보다 혼자 먹는 것이 편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외감은 두려워 카페에 공부하고, 남이 먹는 먹방을 보는 것에 만족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형태는 점점 더 예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모습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사실 식사란 사회적인 행동입니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혼자 음식을 마련하고, 혼자서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사냥도 농사도 공동의 운명이고, 같이 사냥하고 같이 식량을 구해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아직도 수렵 채집을 하는 파라과이의 원시 부족 아체족을 보면 힘들게 잡은 고기를 자기 식구끼리만 먹지 않고, 항상 무리의 전체 구성원들과 한자리에 둘러앉아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다고 합니다.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나 전혀 공을 세우지 않은 사람도 나누어 먹는 고기 양은 거의 같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사냥에 실패했을 때 주위 사람 또한 먹을 것을 나누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눔이 최고의 사회적 보험인 셈입니다. 그중에는 항상 사냥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기를 더 차지하려고 하지 않고 단지 명성에 만족해합니다. 지나가는 곳마다 ‘저 남자가 그렇게 사냥을 잘한다’는 수군거림을 들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것이 좀 더 많은 고기를 얻는 것보다 값진 보상인 셈이죠. 고향과 대가족이 붕괴되고 갈수록 직장에서 얻을 수 있던 소속감마저 상실하면서 우리는 무의식 속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갑니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갓난아기는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그렇게 무서워하고, 떨어지면 심하게 웁니다. 그리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마음에 큰 상처가 됩니다. 우리의 유전자의 절반은 생존을 위한 이기적인 유전자의 몫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회성을 위한 이타적인 유전자의 몫입니다. 두 가지 유전자를 모두 잘 달래고 만족시켜야 행복한데, 우리는 너무 이기적인 유전자에 충실하고 이타적인 유전자는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욕망은 수렵 채집인의 삶에 맞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농업의 시대를 거쳐 산업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전자 깊숙이 각인된 욕구와 본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현대 도시인의 삶 어디에도 매머드 사냥에 성공한 수렵 채집인의 흥분 도가니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에 비견될 것이 없습니다. 삶이 안전해지고 개인의 자유가 많아질수록 이런 행복은 다시는 갖지 못할 것이 되어버린 거죠.

 

절구 찧는 사람들, 채집도구를 든 사람들 일러스트

▲ 몸과 욕망은 수렵 채집인의 삶에 맞도록 설계된 것이지만 산업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유전자 깊숙이 각인된 욕구와 본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산다.

 

예전에는 짜장면 한 그릇으로도 한없이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고민하고, 냉면집에 가면 물냉면을 먹을지 비빔냉면을 먹을지 고민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해결되면 행복할까요? 뷔페에 가면 수백 가지 메뉴 중에서 자신의 취향대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골라 먹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뷔페에 가는 것이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을 때보다 훨씬 자유롭고 행복한 걸까요? 우리는 자신의 욕망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보다는 욕망의 허상을 좇아 또 다른 욕망을 키우려고만 합니다. 인류가 세상을 정복하는 데는 그토록 성공적이었지만 그 힘을 행복으로 바꾸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했던 원인은 우리가 자신의 본성과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행복해지는 훈련을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간이 생존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수렵 채집인 시절에는 사회적 지능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자제, 협력, 도덕심도 본능으로 준비되어 있고 사람들은 조직에 참여하고 봉사하며, 인정받고 보호받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항상 본인이 쓸모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그것을 통해 성취감을 느낍니다. 사람은 늘 사랑받고 싶어 하고, 인정을 갈구합니다. 남자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연결되어 있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배고픔의 욕망만큼 강력한 것인데 허기처럼 드러나지 않아 우리는 그것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와인과 음식, 수저포크세트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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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낙언
최낙언

서울대학과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식품회사 세 곳을 거쳐 현재는 (주)편한식품정보에서 근무한다. 맛이나 식품에서 잘 풀리지 않는 질문을 자연과학 지식과 연결해서 답을 찾거나 새로운 의미를 찾아 음미하는 걸 좋아한다. 불량 지식을 바로잡고, 음식과 과학 정보를 공유하는 Seehint.com을 운영 중이다. 『감각 착각 환각』(2014) 『맛이란 무엇인가』(2013) 『맛의 원리』(2015) 『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2016)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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