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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세계를 향해 이제 한걸음

- K컬처로 인문하기 -

장은수

2021-01-26

k컬처로 인문하기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요, 드라마, 음식, 영화 등 문화전반을 통틀어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k컬처 현상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난 점, 다른 나라의 문화를 부러워만 했던 과거로부터 탈출한 점은 환영하고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k컬처 현상의 원천이 무엇이고 나아가 k컬처의 어떤 면이 세계의 주목을 끄는지, 앞으로 k컬처가 추구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등을 본격적으로 고찰해본 적은 없는 듯하다. 인문학의 시각으로 k컬처 현상을 진단하고 그것의 무궁한 가능성과 열린 미래를 그려보는 장을 마련해봤다.

 


국문학의 세계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소설이다. 특히, 장편소설과 장르문학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절실해 보인다. 한국문학 특유의 문예지 중심의 문학 생산 구조는 우리 작가들이 단편소설 창작에 주력하게 하고 있으나, 세계의 문학 출판 시장은 거의 장편소설 중심으로 돌아간다. 전자출판 환경에서 짧은 이야기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는 등 다소 변화가 있다고는 하나, 상업성과 문학성이 이미 검증된 몇몇 유명 작가를 제외하면... ...



여기도 저기도 ‘K’시대... ... 그런데 한국문학은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스틸 이미지(이미지 출처 :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스틸 이미지(이미지 출처 : tvN)



K-팝, K-무비, K-드라마, K-아트, K-문학 등 장르 이름 앞에 K를 붙인 말들이 요즘 자주 눈에 띈다. 이 말뭉치를 유행시킨 힘은 아마도 K-팝의 전 세계적인 성공일 것이다. 다른 문화권에 우리 문화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듯하다. 그러나 솔직히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K-팝은 한국 가요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기보다는 ‘아이돌’과 ‘칼군무’로 상징되는 특정한 음악적 양식에 더 가깝다. 솔로 가수의 경우,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해도 “솔로 가수가 어떻게 K-팝 가수일 수 있는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들었다. 다른 장르, 특히 문학의 경우에는, 솔직히 국적 말고 ‘K’라고 할 만한 어떠한 공통성도 찾기 힘들다.


K라고 불리든 불리지 않든,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은 꾸준하다. 1892년 홍종우의 번역으로 『춘향전』이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된 이래, 지난 120년 동안 한국문학은 서서히 다른 언어권으로 영역을 확장해 왔다. 한국문학번역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0월 말 현재 외국에서 출간된 한국문학 서적은 총 4,315권이다. 여기에는 같은 작품의 중복 출판이 포함되어 있으며 영어,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순으로 출판이 활발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러시아어, 체코어, 폴란드어, 베트남어, 타이어, 몽골어 등 다양한 언어권으로 확장되는 중이다.



공적 지원 힘입어 2000년대 이후 해외 진출 늘어




한국문학번역원 홈페이지

한국문학번역원 홈페이지 내 번역 사업(이미지 출처 : 한국문학번역원)



특히, 정부 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과 민간 기관인 대산문화재단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아서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이 급 물결을 탔다. 음악이나 미술 등 다른 장르와 달리, 문학의 경우 언어의 장벽이 무척 두껍다. 시장 규모가 너무나 작으므로, 영화나 방송처럼 대규모 자본이 투여되는 것도 힘들다. 어느 언어권이든, 번역자들을 꾸준히 지원해서 육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공적 기관과 문화재단에서 적절한 시기에 이 일을 맡아 수고해 준 것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매우 다행이라 할 것이다. 


번역원 통계를 보면, 1996년 설립 이후 25년 동안 38개 언어권에서 1,874건의 번역, 40개 언어권에선 1,447건의 출판(2020년 8월 말 기준) 활동을 지원해 왔다. 대산문화재단 역시 1993년 이래 한국문학 번역 및 연구 지원이 577건, 해외 출판 지원이 330건(2019년 말 기준)에 달한다.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 확산에 이들의 꾸준한 기여가 바탕을 제공했음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이후, 세계 출판계에서 한국문학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1970년대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이 남미 환상 문학에 대한 세계적 주목을 부르고, 1990년대에 샐먼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이 인도 현대 문학에 대한 열풍을 일으켰듯이, 『채식주의자』에서 생겨난 전 세계 편집자들의 주목이 한국 현대 소설 전반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종의 ‘한강 이펙트’라고 할 만하다. 여기에는 한국문학의 해외 판권 판매를 주 업무로 하는 KL매니지먼트 같은 전문 에이전트의 등장, 주요 문학 출판사 내부의 수출 업무 강화 등이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영어권의 펭귄 랜덤 하우스, 스페인어권의 플라네타 출판 그룹, 일본어권의 하쿠스이샤 등 각국을 대표할 만한 문학 출판사들이 한국문학의 판권 확보에 적극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다행인 일이다. 이 정도 규모의 출판사들은 번역이나 출판에 대한 공적 지원에 좌우되지 않는다. 번역 및 출판 관련 비용을 얼마든지 출판사 스스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문학 출판을 할 때, 번역 지원금 등은 늘 부차적 요소였을 뿐, 단 한 차례도 거기에 좌우되어 출판 여부를 결정한 적이 없다. 작품 자체의 문학성이나 상업성을 우선해서 출간했을 뿐이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문학이 세계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좋은 징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해서 지원이 필요 없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작품성은 높으나 상업성이 낮은 경우, 번역이나 출판에 대한 공적 지원은 출판 여부 결정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국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번역 출판에 지원을 집중하는 형태를 벗어나 한국문학의 해외 연구 지원을 통한 담론 형성, 한국문학의 최신 동향에 대해 빠르고 충실한 정보 제공 등이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중요해진 문학상 수상 및 성공사례 축적



미국에서 출간된 편혜영 장편소설 홀 이미지 출처 한국문학번역원 홈페이지

미국에서 출간된 편혜영 장편소설 홀(이미지 출처 : 한국문학번역원 홈페이지)



한국문학에 대한 지속적 평가의 획득과 상업적인 성공사례의 축적은 더욱더 중요하다. 번역된 우리 문학 작품들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채식주의자』의 수상 이후에도 꾸준한 편이다. 2018년에는 편혜영의 『홀』이 미국의 셜리 잭슨 상을, 황석영의 『해질 무렵』이 프랑스의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일본번역대상을, 2019년에는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이 캐나다의 그리핀 시 문학상을 각각 받았다. 2020년에도 손원평의 『아몬드』가 일본 서점대상 번역 소설 부문에서, 김이듬의 『히스테리아』가 미국 전미번역상 시 부문에서 각각 수상작이 되었다. 또 하성란의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가 미국의 대표적인 출판 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올해의 책에, 북한 작품이지만 백남룡의 『벗』이 미국의 도서관 잡지 《라이브러리 저널》 선정 ‘올해 최고의 세계문학 10편’에 포함됐다. 해외 독자들의 호응 역시 만만치 않다. 『채식주의자』가 전 세계에서 골고루 베스트셀러에 오른 데 이어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26개국에 소개돼 일본 21만 부를 포함해 60만 부 가까이 판매되었다. 수상 소식과 성공사례가 늘어날수록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 역시 더욱더 활발해질 것이다.


그러나 한국문학에 대한 현재의 관심이 장기 추세로 이어지려면 몇 가지 고비가 더 남아 있다. 훌륭한 번역자의 꾸준한 양성, 주요 언어권 문학 및 출판 영역에 대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 소수 언어권에 대한 지속적 확장 등 문학(작품) 외적 차원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우리 문학에서 작품 생산의 양적・질적 차원에서 모두 뛰어난 성과를 내는 시의 경우, 대부분 상업적 출판 대상이 아니므로 인적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 및 지원 없이 활성화되기가 어렵다. 번역・출판 지원 말고도 서울국제작가축제 같은 국내외 시인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문학 행사, 전 세계적 규모의 문학상 설립 같은 교류의 장(場)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 보인다. 



가능성 큰 소설, 장편소설은 더더욱



작성 중인 소설

작성 중인 소설



현실적으로 볼 때, 한국문학의 세계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소설이다. 특히, 장편소설과 장르문학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절실해 보인다. 한국문학 특유의 문예지 중심의 문학 생산 구조는 우리 작가들이 단편소설 창작에 주력하게 하고 있으나, 세계의 문학 출판 시장은 거의 장편소설 중심으로 돌아간다. 전자출판 환경에서 짧은 이야기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는 등 다소 변화가 있다고는 하나, 상업성과 문학성이 이미 검증된 몇몇 유명 작가를 제외하면 단편소설을 번역 출판하는 경우는 해외 출판계에서 극히 드물다. 이것은 한국 내에서 출간되는 외국 소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단편집은 거의 없다. 


소설은 질병과 죽음이 닥쳐오고 사고와 재난이 밀려드는 우발적 세상에서 인간이 끝내 추구할 만한 가치를 질문하고 대답한다. 또한 자본과 권력이 제 이익만을 따져서 전횡을 휘두르는 타락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시민적 삶의 윤리를 체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효능은 순간에 응결된 깊은 사유와 시적 문체가 특징인 단편 미학으로는 도달하기 너무 힘들다. 시민들 전체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일련의 사태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신분과 처지와 신념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복합적・다성적 목소리를 뿜어내는 장편의 세계에서 더 효과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특히, 번역 소설의 경우, 독자들은 일반적으로 번역 과정에서 대부분 소실되는 문체의 미학보다 낯선 세계가 가져다주는 이질적 삶의 체험과 함께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인간적 가치의 보편성을 체험하기를 원한다. 서사적 길이의 적절한 확보 없이 이러한 독자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성공 이후, 국내 출판자본의 경장편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국내 장편소설 창작이 활성화되는 것은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 측면에서 긍정적인 일이다.



장르소설 활성화도 시급한 과제



출발선에서 발걸음을 떼며 시작하는 순간

출발선에서 발걸음을 떼며 시작하는 순간



아울러 판타지, SF, 추리, 로맨스, 영어덜트(YA) 등 장르소설의 활성화는 한국문학 출판의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상업적 차원에서 볼 때, 전 세계 문학 출판 시장은 인생 서사 중심의 감동적 이야기 소설이나 각 장르의 문법을 활용하는 장르소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이쪽 시장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했다. 최근 들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을 중심으로 심너울, 천선란 등 좋은 작가와 작품이 꾸준히 쏟아지면서, 일본이나 미국 등에서 한국 SF 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다. 또한 손원평의 『아몬드』 등 청소년 소설에서 재미와 수준을 함께 갖춘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 분야의 앞날에 희망을 품게 한다. 이도우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같은 따뜻한 사랑 이야기도 드라마화되면서 독자들 사랑을 많이 받았고, 해외 출판사들의 반응도 뜨겁다. 추리/미스터리 장르 역시 출판사 투자가 늘고 있다. 이야기나 장르 중심 소설들은 무엇보다 드라마, 영화 등 다른 장르로 변환되기 쉬워서 드라마나 영화의 흥행과 함께 해외 출판사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데다, 번역 과정에서 정보 손실이 비교적 적어 한국 독자들이 느끼는 재미와 감동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러 가지 좋은 징후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문학 한류’가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한국문학은 세계를 향해서 이제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이다. 세심하고 꾸준한 투자로 세계화의 고비를 잘 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K컬처로 인문하기] 한국문학, 세계를 향해 이제 한걸음

[K컬처로 인문하기] 세계 속의 'K'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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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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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편집인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읽기 중독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 등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저서로 『출판의 미래』,『같이 읽고 함께 살다』 등이 있으며, 『기억 전달자』, 『고릴라』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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