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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와 만근이 같은 이가 이 세상에 없다면

-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

공선옥

2021-01-19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은? 세월을 견디고 오래 사랑받는 문학 작품들은 대개 성공보다 실패를, 대답보다는 질문을, 상식보다는 상식 밖을, 중심보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다룬다. 놀랍고 기이한 것은 그 쓰라린 실패담, 난처한 질문, 보잘것없는 주변의 이야기가 우리의 인식과 지각을 깊이 파고들어 종내는 강력한 아름다움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코너에서는 국내외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서툴고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삶,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이야기들을 작가들의 소개로 만나본다.

 

 

머니가 미우면서도 이뻤다. 아버지가 술 한잔 먹고 들어오며 잘 있었느냐, 물으면 윤자는 아부지 인자 오신가아, 하고서 고개를 숙였다. 왠지 부끄럽고 왠지 서러워져서. 짐승들은 퍽 귀찮았다. 그래도  그것들이 밥 달라고 음매거리고 꿀꿀거리고 꼬꼬댁거리고 멍멍거리고 매애거리고 꽥꽥거릴 때면, 아랐써어, 대답하며 밥을 챙겨주곤 했다. 윤자를 기쁘게 하는 것은 동생뿐......



죽은 엄마 대신 동생 돌 본 일곱 살 소녀



돌무덤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돌무덤(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나의 육촌 동생이 꼭 그렇게 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내 마음속에서 내 육촌을 품고 살았다. 내 육촌 동생 이름을 윤자, 라고 해둔다. 윤자네 엄마, 그러니까 나에게는 당숙모가 아이를 낳다가 뭔가가 잘못되어 죽었다. 옛날에는, 그리고 무의촌인 시골에서는 그런 일이 더러 발생하곤 했다. 아이가 죽거나, 엄마가 죽거나. 둘 다 죽거나, 둘 다 살거나.


우리 당숙모의 아이, 그러니까 윤자 동생은 살았지만, 엄마가 죽어서 갓 태어난 동생을 순전히 윤자가 키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윤자 나이 그때 겨우 일곱 살이었다. 윤자 밑으로 동생 하나가 더 있었는데 세 살 무렵 열병으로 죽었다. 당숙이 죽은 아이를 항아리에 넣어 지게에 지고 돌산으로 가서 대충 묻고 항아리를 돌무더기로 덮어놓았다. 그것이 아장(兒葬).


비가 오려고 날이 꾸물거릴 때면 아장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응애 응애 응애애애. 나도 아장에서 나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오월 혹은 유월이었다. 산밭머리에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날 즈음이었다. 엄마가 산밭에 가서 열무 좀 솎아오라고 했다. 그날따라 찬거리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부슬부슬 가랑비가 오는 날이었다. 더구나 저물녘이었다. 비가 오거나 날이 어두워지면 아장 주변에서 불이 번득였다. 아장에서 나는 울음소리에 발을 재촉하다가 젖은 흙 위에서 미끄러졌다. 아이갸아! 누군가가 미끄러지는 나를 붙잡으며 엉겁결에 소리쳤다.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라서 돌아보니 윤자였다. 막 울다가 그친 얼굴로 윤자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조심혀야지이, 이런 데서느은”

저나 나나 똑같이 일곱 살이면서 윤자는 언니처럼 말했다. 혹은 고모나 엄마나, 할머니처럼.



무섭다 도망치지 않고 섧게 울어주던



아무리 시골의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아니 시골의 어린아이라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무서워서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 아이들은 무섭다고 도망치면 아장 속의 죽은 아이가 섭섭해할까 봐 그 자리에서 섧게 운다. 섧게 우는 것이 죽은 아이에게 위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엄마들을 보고 배운 것이다. 엄마들은 그들의 엄마들을 보고 배운 것이고. 

아무리 어려도 이 아이들은 엄마처럼, 할머니처럼 운다. 사설하면서 우는 것이 그런 것이다.


“아이고오, 악아아아아, 부모 복 없어 일찍 죽은 내 동생아아아, 날도 구지고 저문디다 너를 두고 가야 하는 내 발이 무겁기가 한정 없고나아아. 아이고오 내 동생아, 못난 성을 용서혀라아아.” 


그 정도 하면 이제 일어나서 산에서 내려와도 된다. 윤자는 사설을 잘했다. 눈물이 안 나오면 사설을 더욱 구성지게 해서 기어코 눈물을 뽑아냈다. 내 육촌 동생, 윤자. 나보다 석 달 늦게 태어난 내 동생 윤자. 윤자는 어떻게 살았나. 윤자의 일생을 누군가는 기록해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알겠는가. 그처럼 사랑이 가득한 자의 거룩함을.


누가 그것을 단지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희생만’이라고. 그런 간고한 상황에 있는 아이를 돌보지 않은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현대식으로 아동학대라고 하면 나야 할 말이 없지만 이제 환갑이 다 된 윤자는 그저 배시시 웃는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암시랑토’ 안해야” 하면서.


아, ‘나의 윤자’의 삶은 어땠던가. 엄마가 동생을 낳고 죽었다. 엄마가 숨을 안 쉬었다. 아기를 받던 이웃 아짐이 “느그 엄매가 영 숨을 안 쉬어 분다. 숨을 안 쉬어 불어.” 하면서 윤자 손을 엄마 코에 갖다 댔다. “살기는 영 틀려부렀다.“



학교는 못 가고 가족, 짐승 밥 챙기기만



시골 동네의 모습

시골 동네의 모습



엄마는 숨을 안 쉬고 살기 영 틀려버렸는데 막 태어난 아기는 엄마 옆에서 숨을 새근거렸다. 아짐은 아기를 윤자 품에 안겨주었다. 윤자는 아기를 업고 나가 동네 아짐들한테서 동냥젖을 얻어 먹였다. 아기가 조금 크자 맘죽을 제 입에서 녹여 아기 입에 넣어주었다. 심봉사가 심청이 키우듯 동생을 키웠다.


윤자네 식구는 이렇게 된다. 먼저 할머니. 그러니까 나한테는 큰할머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형수, 윤자 할머니는 항상 체머리를 흔들었다. 머리를 흔들고 손이 흔들려 담뱃대에 불을 붙이려면 성냥을 몇 번이나 떨어뜨렸다. 그리고 늘 이런 소리를 냈다. 이빨이 하나도 없는 위아래 잇몸을 닥닥닥 부딪치며 앵애애앵앵애애앵.


그다음에 아버지. 아버지는 도공(道工)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도로를 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 도공. 나의 당숙인 윤자 아버지가 ‘카바’해야 하는 도로의 길이는 삼십 리 정도. 윤자 아버지는 술을 좋아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 집에서 시오리 정도 되는 신작로가에 있는 주막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집에는 오밤중에 들어오기가 일쑤. 때로는 못 들어오기도 한다.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필시 주막집에서 술을 마시다 잠이 들기가 쉽다.


또 다른 식구는 짐승들. 집에서 키우는 소, 돼지, 개, 닭, 염소, 거위들. 이제 여덟 살이 되어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했지만, 윤자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너무나 늙어서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는 할머니 밥과 담배를 챙기고, 아버지 도시락과 술을 챙기고, 먹이를 주고 돌아서면 또 먹이 줄 때가 돌아오는 짐승들을 챙기고 동생을 키워야 해서 못 갔다.


동네 사람들은 윤자를 보면 ‘사니라고 겁나게 애쓴다’ 하고서 지나갔다. 때로 청국장을 끓여 한 보시기 갖다주거나, 두부 한모를 갖다주지만, 다들 살기가 어려워 그저, 사니라고 애쓴다는 말로 위로나 건넬 뿐. 윤자는 동네 아짐들과 하나도 다름없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 살림을 했다. 코가 주르룩 나오면 다시 쭈르룩 마셔가며. 튼 손이 시리면 호오오 입김을 불어가며. 발이 시리면 깡충깡충 뜀박질하며. 할머니가 앵애애앵 하면, 할매애 우신가아, 하면 할머니가 소리를 멈추고 윤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면 할머니가 미우면서도 이뻤다.

아버지가 술 한잔 먹고 들어오며 잘 있었느냐, 물으면 윤자는 아부지 인자 오신가아, 하고서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가 왠지 부끄럽고 왠지 서러워져서.


짐승들은 퍽 귀찮았다. 그래도 그것들이 밥 달라고 음매거리고 꿀꿀거리고 꼬꼬댁거리고 멍멍거리고 매애거리고 꽥꽥거릴 때면, 윤자는 아랐써어, 대답하며 밥을 챙겨주곤 했다. 윤자를 기쁘게 하는 것은 동생뿐. 동생 눈, 뺨, 코, 배, 배꼽, 손, 손가락, 발, 발가락, 궁댕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윤자는 동생이 이뻤다.


자아, 이쯤에서 나는 나의 윤자 이야기를 잠시 접고 황만근이라는 사람 이야기를 해야겠다.



없어서는 안 되는 데 없기도 한 사람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지 출처 알라딘

성석제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책 표지(이미지 출처 : 알라딘)



나는 성석제의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서 더욱더 ‘나의 윤자’를 생각했다. 고향에 가서 나의 옛사람들에게 윤자를 말하면 사람들은, ‘아이고 윤자가 고생 많이 했지’ 한마디 하고 나면 그뿐이었다. 나에게는 ‘기념비적’인 윤자의 삶이 나의 옛사람들에게는 그저 고생 많은 시절의 한 사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황만근이 살았던 ‘신대리’ 사람들에게 황만근이 그런 것처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 황만근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이면서 있었고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면서 없기도 한‘ 사람이었다. 황만근은 전국에서 다섯 번째의 깊이를 가진 천곡이라는 이름의 저수지가 있는 마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쟁 때, 천곡 계곡의 양안을 오가는 포탄과 총알의 불빛과 소리를 구경하러 나갔다가 유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황만근은 일찍이 열다섯 나이 차가 나는 젊은 홀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했고 어쩌다 생긴 아들을 또 극진히 보살폈다. 더해서 황만근은 동네 일이라면 좋은 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앞장서 해결했다. 마을 회관의 변소 푸는 일은 늘 황만근이 했다. 변소에서 푼 똥오줌을 거름으로 만들어 동네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고 일손이 없는 혼자 사는 노인의 집에다가는 거름을 더 많이 주었다.


그런 황만근이 농가 부채 해결을 촉구하는 농민 궐기대회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황만근 말고는 몰 수 없는 고물 경운기를 타고 나갔다가 원래 술을 좋아한 탓이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 이장이 농민의 결기를 보여주려면 경운기를 가져가야 한다고 해서 경운기를 몰고 간 황만근이었다. 그러나 궐기대회장에 경운기를 몰고 온 사람은 황만근뿐이었다. 평소에는 있으나 마나 한 황만근이, 술 욕심이나 내는 황만근이 돌아오지 않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만그인지 반그인지 그 바보 자석 하나 때문에 소 여물도 못 하러 가고 이기 뭐라. 스무 바리나 되는 소가 한꺼분에 밥 굶는 기 중요한가, 바보 자석 하나가 어데 가서 술 처먹고 집에 안 오는 기 중요한가, 써그랄”


모인 마을 사람 중에 귀농을 한 ’민씨‘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민씨가 귀농을 포기하고 마을을 떠나면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고 독자 제현1)에게 말해주는 소설이다. 마을 사람들이 농민 궐기대회에 나갔던 만근인지, 반근이가 하루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보다 스무 마리의 소가 여물 못 먹는 것을 더 속상해하던 그 시각에 이장의 당부대로 고물 경운기를 몰고 궐기대회에 나갔다 돌아오던 황만근은, 젊은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하고 어쩌다 생긴 아들을 모시듯 키우며 평소에는 있으나 마나 하지만 없어지면 뭔가 아쉬워지는 사람.

1) 제현 : 제현(諸賢) : 여러 점잖은 사람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황만근은 경운기와 함께 도로 밖으로 굴러떨어져 끝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라고 그 동네에 살러 들어왔던 민순정이라는 사람이 이룬 것 없이 다시 도시로 흘러가기 전에 엎디어서 황만근을 기리는 글을 썼다. 그랬다고, 소설가 성석제는 썼다.



요새 보기 어려운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의 윤자 이야기와 성석제의 황만근 이야기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겠지만 굳이 공통점을 말하자면 ’요새는 어디 가서 그런 사람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누가 그렇게 살려고 하겠는가, 요새같이 빠릿빠릿한 세상에.

그러나 또 잘 찾아보면 요새도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어딘가에는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이 간당간당하나마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어딘가에서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윤자와 만근이 같은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면. 그런가, 안 그런가?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윤자와 만근이 같은 이가 이 세상에 없다면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지나간 삶, 가지 못한 삶, 가능성이 있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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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공선옥

소설가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계간 '창작과 비평'지에 중편 '씨앗불'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온 서른살> <시절들> <붉은 포대기> <수수밭으로 오세요> <유랑가족> <영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멋진 한세상> <명랑한 밤길> 등이 있다. 산문집 <마흔에 길을 나서다> <행복한 만찬> <자운영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등이 있으며, 신동엽창작기금 만해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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