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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K'를 말한다

- K컬처로 인문하기 - 'K팝의 인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박지원

2020-12-31

 


k컬처로 인문하기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요, 드라마, 음식, 영화 등 문화전반을 통틀어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k컬처 현상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난 점, 다른 나라의 문화를 부러워만 했던 과거로부터 탈출한 점은 환영하고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k컬처 현상의 원천이 무엇이고 나아가 k컬처의 어떤 면이 세계의 주목을 끄는지, 앞으로 k컬처가 추구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등을 본격적으로 고찰해본 적은 없는 듯하다. 인문학의 시각으로 k컬처 현상을 진단하고 그것의 무궁한 가능성과 열린 미래를 그려보는 장을 마련해봤다.


 

'K'는 돈과 숫자의 영역을 넘어선다. 프랑스와 브라질과 베트남의 팬들이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있다. 우리의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더이상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아니, 부끄러워할 건 부끄러워하되 자랑스러워할 만한 건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우리는 완벽하진 않지만, 우린 ‘우리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세계를 매혹시킬수 있는... ...



새로운 현상... 접두어 ‘K’ 전성시대



외국에서 각광받는 KPOP

외국에서 각광받는 K-팝



‘K’란 글자를 어두에 붙이는 일이 대유행이다. K-팝, K-푸드, K-드라마, K-뷰티, K-패션, K-바이오, K-메디컬, K-사이언스, K-방역 등등….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고 세계 속에서 고군분투 중인 우리나라의 여러 산업 분야 및 문화적 카테고리 앞에 ‘K’란 말을 붙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 ‘K’는 물론 ‘Korea’의 약자다. 대한민국이란 말은 무슨 단어 앞에든 ‘K’란 한 글자로 깔끔하게 붙어 우리 곁에 널리 통용되고 있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새로운 현상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부터 트위터와 틱톡의 친구들까지, 그 말을 사용하는 이들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내 생각에, 대중이 대한민국을 이렇듯 ‘자발적으로’ 치켜세우는 현상은 유사 이래 처음이 아닐까 싶다. 가끔은 펄럭이는 태극기 혹은 ‘주모’, ‘국뽕’ 등의 단어와 함께 함께 사람들에게서 오가는 이 ‘말놀이’(K-장녀, K-라면, K-의지 등등)는 쉽게 멈출 것 같지도 않다. 왜 이런 트렌드가 계속되고 있는 걸까?, 이 ‘K-OO’의 발화 유행에는, 우리가 일원인 이 나라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은연중에 묻어있다. 우리는 세계 6위의 수출대국이고, GDP 순위로만 따지면 세계 10위의 국가다.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경제 중흥의 기적을 이뤄낸 국가이며, 동시에 높은 수준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다. 우린 충분히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할 만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 vs ‘뒤떨어진 대한민국’



열듬감에 사로잡힌 모습

열등감에 사로잡힌 모습



그렇지만 그 자랑스러움의 과실이 공평하게 분배된 건 아니다. 과거에는 국가의 정치지도자와 9시 뉴스와 신문사 사설 같은 곳들이 대한민국의('K'의) 위대함을 일방적으로 칭송했다. 그 상명하달식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로부터 국민들은 자연스레 소외될 수밖에 없었고, 무의식적인 열패감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장점보다 단점을 찾는 버릇에, 가능성보단 한계를 인식하는 위축감에 익숙해져 있었다. 우린 알고 있었다. 아무리 ‘높은 나으리’들이 열심히 떠들더라도, 우리가 세계 몇 위의 경제대국이란 건 허울 좋은 수치일 뿐이라는 걸 말이다. 우리 대기업들이 많은 돈을 벌어들이건 말건, 이 나라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너무도 ‘한국적으로’ 팍팍했던 건 변함 없는 사실이다. 영국의 <런던타임스>는 1952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열망하는 것과 같다”고 썼다. 우린 70년 가까운 시간 전에 저 ‘선진의 시각’에서 규정된 대한민국을 극복했고, 한편으로는 극복하지 못했다.


이 땅의 시민들은 정치·경제 엘리트들이 이뤄낸 ‘세계 속의 대한민국’ 안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심정적으로는 여전히 ‘세계에 비해서 한참은 뒤떨어진 대한민국’에 사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깥(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단 자신감보단 우리가 저 ‘선진의 세계’로부터 여전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배워야 한다는 ‘자기 비하’를 선호했던 것이다. 우린 뭐 하나 자랑스러워할 만한 게 없었다. 치욕스러운 역사, 빈부격차, 곳곳에 남아있는 후진적인 시스템과 가부장 문화, 배금주의, 그리고 우리 자신이 물들어있는 획일성과 냄비근성 등등….



k컬처의 엄청난 파급력 원동력은



K컬처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 이미지 출처 유튜브 일상연구소

K-컬처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이미지 출처 : 유튜브 일상연구소 https://youtu.be/pmc4dy6D8DQ)



그렇지만 이제 ‘K’의 시대가 도래했다. 정말로 우리가 그렇게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단 인식,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먹힌다’는 인식이 우리 곁에서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그것은 과거와 달리 위에서 아래로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체감하며 발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것이 바로 ‘K-컬처’가 지닌 힘일 것이다. 


문화는 전통적으로 규정된 엘리트의 영역이 아니었고, 머리 좋고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도 아니었다. 아니, 물론 음악과 문학과 예술 등의 분야 역시 사실은 정치와 경제, 과학기술 등의 다른 카테고리와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분야든 세계의 눈길을 끌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건 압도적인 재능을 갖고 그것을 노력으로 꽃피워낸 극소수 엘리트일 수밖에 없다. 다만 문화라는 영역이 ‘우리 사회와 우리 민족이 오래도록 쌓아 올린 무의식적인 삶의 양식과 에너지의 총체’라는 부분과 더욱 긴밀히 맞닿아있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문화는 보통 사람들의 보통 삶을 상징한다. 그런 한국의 문화가 세계 속에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니? 그 문화의 여러 범주 중에서도 K-팝의 힘이 놀라운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여기서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를 비롯한 K-팝의 여러 그룹이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지를,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행가에는 힘이 있고,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유행가들 중에서 한국의 K-팝이 커다란 지분을 차지하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대중음악계가 낳은 젊은 아이콘들은 당대의 글로벌 문화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 세계인들은 K-팝 스타들이 부르는 유행가의 선율과 노랫말을 함께 즐기며 동시대의 공동체에 잠복한 사회적 감성과 집단 무의식을 확인하고 있다. 


같은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같은 음악을 들으며 자신들의 공동체적인 기억을 복원한다. 그 기억은 공동체 안팎으로 굳어지면서 각 지역 구성원들의 감성적 뿌리를 강화하고, 그 뿌리는 다시 현실을 향해 거울처럼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마치 1980~1990년대 홍콩 영화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1990~2000년대에 일본 만화 콘텐츠가 전성기를 맞았던 것처럼 말이다. 우린 영미권의 문화 콘텐츠에 압도적인 세례를 받으면서도 그런 지역적 색깔이 지닌 고유한 감성의 영향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로부터 우리 자신을 빚어냈다. 더욱이 그 공간적 확장성과 쌍방향적인 영향력의 속도와 정도는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적 교감과 소통의 농도는 소셜네트워크 시대를 맞아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우리 인터넷망이 빠르고 쾌적한 걸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처럼, 우리가 낳은 K-아이콘들 역시 굴지의 글로벌 플랫폼에서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다.



돈과 숫자를 넘어선...‘우리’이기에



방탄소년단 Map of the soul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 MAP OF THE SOUL 앨범 커버(이미지 출처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은 이런 환경에서 자신들이 저 먼 곳의 ‘세계인’들과 ‘같은 곳’에 살아간다는 사실을 (매번, 무의식적으로) 재확인하며, 동시에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우리’만의 정체성을 (매번, 새롭게) 확립한다. 즉, K-팝을 통해서 세계인들과 우리나라의 거리가 이만큼 가까워진 것은 우리 자신의 ‘세계를 향한’ 심리적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진 것을 뜻한다. 


이제는 마구잡이식 ‘국뽕’이 아니다. 단순히 몇몇 천재들의 기량에만 의존하는 한국 문화의 단기적 수출도 아니다. K-팝의 세계적 인기엔 한국 대중음악이 통과해 온 오랜 시간의 궤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과거 1990년대부터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던 이들(예컨대 이수만, 박진영 등)이 이젠 세계에 우리의 문화를 수출하는 수장이 됐다. 이때부터 활동하던 한국 대중음악계의 수많은 기획자, 제작자, 작곡가들은 세계의 흐름을 명민하게 읽는 노력을 쏟은 지 오래다. 우리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그룹을 배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구축했다. 즉, 강렬한 퍼포먼스, 쉽고 다채로운 멜로디와 노랫말을 특징으로 하는 지금 K-팝 트렌드는 우리 사회와 대중이 지난 수십 년간 검증하고 배양했던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트렌드를 가장 상징적으로 구현한 방탄소년단은 한국어로 된 곡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빌보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란다. 그들은 미국의 <타임>이 선정한 ‘2020년 올해의 엔터테이너’다. 세계를 주름잡는 유명한 셀럽들이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우리의 자부심이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여유 있는 태도로 ‘K’를 붙일 수 있는 이유다. 여기서 ‘K’는 돈과 숫자의 영역을 넘어선다. 우리는 프랑스와 브라질과 베트남의 팬들이 한국어로 힘껏 노래 부르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음악뿐인가.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국 교육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알고 거기서 미국이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다. 우리의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우리는 더이상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아니, 부끄러워할 건 부끄러워하되 자랑스러워할 만한 건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인간은 자긍심만으로도 살 수 없고, 자괴와 자학의 감정만으로도 살 수 없다. 우리는 완벽하진 않지만, 우린 ‘우리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세계를 매혹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쏠림현상과 열패감...‘대문자 K’의 역설



씁쓸한 그림자



그리고 여기서 다시 ‘대문자 K’의 역설이 등장한다. ‘K’의 대표성을 띤 어떤 부문에 지나친 자긍심을 느낀다면, 그 쏠림은 또 다른 씁쓸한 그림자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 그림자는 그 대표성에 완전히 이입하지 못하는 이들의 조용한 소외감 또는 열패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과거의 ‘한강의 기적’과 ‘경제대국 신화’를 노래하던 어떤 진영, 어떤 계층, 어떤 사람들을 향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갖고 있던 그늘진 감정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말이 지금 왜 트로트에 그토록 많은 ‘또 다른 세대’가 열광하는지를 설명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까?


트로트에 대한 열풍은 놀라울 정도이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지나친 과잉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트로트도 우리 자신이 오래도록 불러오던 유행가였고, 유행가에는 우리의 어떤 진면목이 담겨있다는 사실까진 외면할 수 없으리라. 트로트를 ‘K-트로트’로 자리매김하려는 일군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민주주의에는 필연적으로 빛과 그늘이 있을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는 언제나 과정이자 진행형의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니다. 우린 세계 속에 성큼 다가선 우리를 발견하고 있고, 음악의 영역에서도 저마다의 분투는 다채롭게 이어질 것이다.




[K컬처로 인문하기] 세계 속의 'K'를 말한다 -K-팝의 인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K컬처로 인문하기] 못보던 멋진 모습을 꾸준히... 활짝 열린 일본 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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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박지원

작가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엔 기자와 서점 MD, 출판사 에디터 등을 거쳤다. 지금은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며 좋은 책을 펴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이돌을 인문하다』와 『산책하는 마음』, 그리고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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