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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살아가는 방식, 미래를 사랑하는 방식

포스트휴먼의 삶과 사랑

노대원

2019-01-21


미래의 인간, 우리 안의 미래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바뀌고 있다. 신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젊은 사람들까지도 현기증 나게 할 정도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은 정말 옛말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제 십 년의 시간이면 강산의 지형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 자체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은 어떨까? 구석기 시대의 인간이 현대인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은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할 수도 있다. 이처럼 30년 뒤, 혹은 100년 뒤 미래의 인간들이 21세기 초반 현대인의 삶을 돌이켜본다면, 그건 현대인이 구석기 조상들의 삶을 떠올리는 것과 같을까?


인간의 삶은 시대의 변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같은 인간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변화해왔다. SF 작가 아서 C. 클라크도 “충분히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석기 시대의 누군가가 비행기를 타고 스마트폰으로 화상 통화 하는 현대인을 보게 된다면 분명 마술을 부리는 것이라 여길 것이다. 우리도 SF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미래 인류의 발전된 과학기술을 마치 마술처럼 신기하게 바라본다.


VR 체험중인 사람들

 

미래의 인간을 ‘인간 이후의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고 부른다. 미래의 신인류는 말 그대로 ‘인간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존재’가 되어있을 것이므로 다른 명칭이 필요한 것이다. 더욱 발전된 미래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은 이 신인류가 살아갈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많은 SF 소설과 영화의 상상력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어느새 이 상상력은 문학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에 깊이 들어왔다. 인문학의 영역과 그 사유의 내용마저 달라진 것이다.


실제로 영문학자 캐서린 헤일스는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허진 역, 플래닛, 2013)에서, 책의 제목이 의미하듯 우리는 이미 포스트휴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포스트휴먼의 대표적인 문화적 아이콘은 ‘6백만 불의 사나이’나 ‘로보캅’과 같은 사이보그(cyborg)이다. 생물학적 신체와 기계 장치 같은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데 혼합되어 있는 탈경계적인 존재가 바로 포스트휴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크고 작은 의학적 보철 장치들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미국 인구의 약 10%는 기술적 의미에서 사이보그로 추정된다고 한다.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캐서린 헤일스 지음 | 허진 옮김/사이버네틱스와 문학, 정보 과학의 신체들/How We Became Posthuman/Virtual Bodies in Cybernetics, Literature, and Informatics

▲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캐서린 헤일스, 허진 역, 플래닛, 2013



인류와 신인류 사이에도 통역이 필요할까?


SF 작가 테드 창이 2000년 영국의 저명한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기고한 장편(掌篇) 「인류 과학의 진화」(『당신 인생의 이야기』 김상훈 역, 행복한책읽기, 2004)는 학문의 미래에 관한 소설이다. 짧은 분량의 이 SF 작품은, 인류와 미래 인류 간의 차이와 세대 간 경쟁 및 소통의 문제를 아주 흥미롭게 다룬다. 이 소설에 나오는 ‘메타인류’는 ‘스기모토 유전자 요법’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향상된 두뇌를 가지게 된 신인류다. 당연하게도 메타인류는 과학 연구 분야에서 인류를 압도하기 시작하고, 인류는 메타인류의 연구를 번역하는 작업 정도의 부차적인 역할만 하게 된다.


학술지에 특집으로 게재된 SF답게 주로 학술 연구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만, 인류 부모와 메타인류 아이의 관계도 잠시 언급된다. 메타인류는 인류에 비해 지능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메타인류 아이와 인류 부모는 점점 소통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 소설 속 많은 인류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는 메타인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현재도 같은 인류인 부모와 자녀 사이의 세대 차이 갈등은 심각하다. 그런데 만약 자녀가 전혀 다른 신체적,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부모와의 대화가 가능할까?


가족 간의 대화와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부모가 자녀와 편하게 대화하고 싶다는 이유로, 혹은 문화적∙정서적인 공감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자녀에게 탁월한 지능과 생물학적 능력을 갖출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부모 세대의 이기심은 아닐까? 이처럼 신체 강화와 지능 향상은 생명윤리의 문제, 빈부 차에 의한 양극화 및 새로운 우생학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세대 간 관계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소설|김성훈 옮김/컨택트 포스터/<블레이드 러너 2049>의 드니 빌뇌브와 현존 최고의 SF작가 테드 창이 만났다! / 2월 2일 개봉 SF <컨택트>의 원작 / 최고의 SF에 수여되는 전세계 8개 상 석권!

▲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김상훈 역, 행복한책읽기, 2004


이 소설에서 인류와 메타인류의 관계가 부모, 자식으로 설정된 것은 우리 인류와 미래 신인류의 관계에 대한 비유로 읽을 수 있다. 부모보다 뛰어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나, 청출어람의 고사로 이 관계를 흐뭇하게 낙관할 수는 없다. 과학기술을 통해 신체를 변형하고 신기술로 무장하여 점점 더 포스트휴먼이 되어가는 젊은 세대와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노인들은 서로를 낯선 존재로 여길지도 모른다.



신인류의 새로운 동반자, 로봇과의 사랑


영화 〈그녀〉(Her)는 고독한 남자가 인공지능 O.S.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다가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알파고가 이세돌을 바둑 대결에서 이긴 뒤로는 그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쉽게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로봇이 마지막으로 인간과 다른 한 가지는 감정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고독해진 사람들과 인간관계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은 오히려 로봇과 인공지능 제품들에서 위안을 얻는다.


허 포스터 / 2014 ACADEMY AWARDS WINNER 2014 GOLDEN GLOBES WINNER/her 그녀 서툰 당신을 안아줄 이름

▲ 영화 <그녀>(Her,2013)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인공 신체가 우리의 몸을 대체하면서 유기적 신체와 기계 사이의 경계가 흐려질 것이다. 우리는 점점 변형과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로봇의 인공 신체를 가지게 될 것이다. 반면, 로봇들은 점점 인간의 신체를 닮아간다. 이렇게 로봇과 인간 간의 신체적 차이는 거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흐려질 것이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서적, 감정적 능력에서도 로봇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면모를 갖추게 될지 모른다. 인간이 신인류인 포스트휴먼이 된다면 로봇 역시 우리의 새로운 동반자이자 또 다른 포스트휴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휴먼 시대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듀나(DJUNA)의 단편소설 「첼로」(『태평양 횡단 특급』, 문학과지성사, 2002)는 인간과 로봇의 사랑을 다룬다. 듀나는 복거일 작가 이후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SF 작가로, 영화평론가이자 얼굴 없는 작가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 소설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중요한 모티프로 삼는다. 로봇 3원칙은 수많은 SF 문학과 영화에 영향을 준 것은 물론, 한국의 실제 ‘지능형 로봇 윤리 헌장’에도 반영되어 있다.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둘째, 로봇은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셋째,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로봇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은 그 자체가 로봇이 인간을 위해 작동해야 한다는 논리로, 인간과 로봇 간의 분명한 위계를 전제한다. 듀나의 소설 역시 인간과 로봇의 연애가 주요 스토리라인을 이루지만, 로봇의 의식이나 관점이 아닌, 철저히 두 명의 인간(‘이모’와 이야기의 서술자인 ‘나’) 관점에서 로봇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중심주의 역시 포스트휴먼 시대에는 점점 해체되거나 비판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 동물, 자연, 기계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문학, 즉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이 요구된다.


태평양 횡단 특급 표지 / 히즈 올 댓 대리 살인자 첼로 기생 무궁동 스퀘어 댄스 허까비 사냥 꼭두각시 들 끈 얼어붙은 삶 미치광이 하늘 태평양 횡단 특급 듀나 소설집

▲ 『태평양 횡단 특급』 듀나, 문학과지성사, 2002


듀나의 「첼로」에서 첼로를 켜는 소녀 로봇에 매혹된 이모는 그 로봇이 그저 로봇 3원칙에서 아주 작은 쾌락을 얻기 때문에 자신과 함께한다고 생각해 환멸에 빠진다. 하지만, 이모는 사랑을 잊지 못해 다시 소녀 로봇에게 돌아간다. 인간과 로봇과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독특하지만, 이야기 구조상으로는 평범한 인간들의 사랑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소설에 대한 또 다른 독법이 존재한다. 로봇에 대한 이모의 태도 속에 엿보이는 이중성이 포스트휴먼 또는 새로운 기술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양가적 태도와도 같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매력적인 인간형 로봇으로 상징되는 첨단의 과학기술에 사랑(우호적 태도)을 느끼지만, 그 인위성에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아마 포스트휴먼 시대,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의 이러한 애증과 양가적 태도는 불가피한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첨단 기술을 전적으로 사랑할 수도, 전적으로 미워할 수도 없다. 사랑에도 아름다운 거리가 필요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를 신처럼 만들어줄 마술과 같은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지혜로운 사랑의 방식이 절실하게 요구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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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노대원
노대원

세상사와 인간사가 궁금해서 책을 들여다봤습니다. 그 중엔 문학책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다 문학평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문학을 통해 세상살이와 삶을 말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나 봅니다.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선생님을 꿈꾸는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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