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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쿠엔스, 요리하는 즐거움

유희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설파한 이는 하위징아다. 여기서 유희는 일반적인 놀이가 아니라

박찬일

2017-09-26

호모 코쿠엔스, 요리하는 즐거움

 

유희하는 인간, 노동과 유희의 양립


유희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설파한 이는 하위징아다. 여기서 유희는 일반적인 놀이가 아니라 모든 정신적인 문화활동을 범주에 넣고 있다. 문화활동은 저작, 미술, 무용, 음악 같은 것을 아우른다. 이 견해는 이후 인류의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거론된다. 유희는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며, 사회관계에서는 개별 인간의 개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방법으로도 사용된다. 적극적인 호모 루덴스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며, 온전하게 영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도 한다. 특히 노동문제가 대두된 20세기 후반에 이 개념은 더욱 큰 지지와 분화를 이루어냈다. 인간은 놀이함으로써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나아가 노동은 유희와 양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견해가 지지를 받게 된 것이다. 놀지 않으면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의미로서, 그 양립은 더욱 큰 반향을 불러왔다. 일상을 3분할 할 때, 잠자고, 놀고, 일하는 정립의 의미를 찾아냈던 셈이다. 이는 더욱 확장해 휴식의 개념까지 포괄하게 되었고, 현재의 주간 노동시간(최대 32시간 노동제에 대한 논의)을 공유하게 된다. 즉, 삼분할의 정립(鼎立)에서 더 나아가 놀이와 휴식에 대한 보장을 늘림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개념이 제시된 것이다.


(왼)다이닝 룸


(오) Still Life with Peacock Pie by Pieter Claesz (1627)

(왼)다이닝 룸 / (오) Still Life with Peacock Pie by Pieter Claesz (1627)


호모 퀴진느? 요리하는 인간으로


요리는 전통적으로 가사 ‘노동’의 일환으로 해석되었다. 요리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개념은 오래된 문헌에서는 제시되지 않으며, 실제 유사한 설명을 찾아내더라도 이는 권력자에 대한 봉헌으로서의 기쁨, 주린 공복을 해결할 수 있다는 원초적 기쁨으로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19세기 철학자들에 의해 먹는 즐거움, 요리의 기쁨에 대한 개념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생산력이 증가하고 부르주아 계층에게 미식의 즐거움을 선사하던 사회적 분위기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절대왕정 시기에 선택된 소수에게 제공되던 미식의 탐구가 부르주아 전체 계층으로 확장되면서 철학적 질문을 던질 토양이 조성되었던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식을 철학의 범주에서 다룰 뿐, 요리하는 ‘호모 퀴진느(Homo Cuisine)’의 성격이 부여된 것은 아니었다. 요리는 여전히 노동의 일부였으며, 부르주아들은 새롭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던 상업적 레스토랑 출입, 요리사와의 교류에 몰두하는 경우는 있어도 직접 부엌에서 팬을 잡는다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중세 르네상스 시기에도 문필가나 수도자 등에 의해 일부 요리에 대한 집필(심지어 레시피까지도)이 전해지고 있으나 이는 대개 호사 취미에 그치고 있어서 전반적인 ‘놀이’의 경향을 띠고 있지는 않다(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직접 식당을 차리고 요리법에 대한 묘사를 남긴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다빈치다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만큼 천재적인 발상이며 거꾸로 대중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리하는 주방


호모 코쿠엔스, 진정한 유희왕


요리하는 인간이 그것을 유희로써 시도하는 대중성을 확보하게 된 건 현대의 일이다. 특히 밀레니엄 이후 이런 경향이 분명해지면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여러 분석(기사와 논문)이 쏟아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놀이를 더욱 세분화했으며, 새로 탄생한 여러 디지털 기기들을 사용하여 오타쿠로 표현되는 밀도 짙은 놀이 태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요리에서도 이런 시각이 생겨나고 분화되었다. 물론 잠시의 맹아기는 존재했다. 호모 코쿠엔스(Homo Coquens), 즉 ‘요리하는 인간’으로의 유희가 더욱 확대되기 전에 미식 행위의 대중화가 먼저였다. ‘미식가 놀이’는 인터넷 등의 개인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서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이런 ‘놀이’가 기존의 보수적인 미디어를 파괴하기에 이르렀다(미국의 『자갓 서베이』는 인터넷에서 매긴 사용자의 점수로 식당의 서열을 분류해내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의 경우 1인 미디어를 통한 미식가 놀이가 보수적 미디어의 해당 역할을 해체해버리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즉, 신문과 잡지 같은 보수적인 매체의 미식(대개는 식당 소개 등의) 보도보다 더욱 공신력을 갖게 된 것이다. 사실상 보수적인 미디어가 미식을 다뤘다고도 할 수 없는 일종의 ‘문필가 놀이’에 그쳤다는 것도 물론 지적해야겠다. 미식을 공학적으로 이해하고 학습한 새로운 블로거층은 이런 보수적 미디어의 미식 보도를 ‘선비 놀이’로 격하하면서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다.


(왼) 텍사스 페어에서 열린 쿠킹쇼 ©Andreas Praefcke


(오) 레스토랑 가이드 『자갓 서베이』 인증 식당 안내문

(왼) 텍사스 페어에서 열린 쿠킹쇼 ©Andreas Praefcke/ (오) 레스토랑 가이드 『자갓 서베이』 인증 식당 안내문

 

이런 식당 평가와 함께 요리하는 인간으로서의 여러 놀이들, 직접 팬을 잡고 요리하는 장면을 중계하는 형태의 놀이는 이른바 블로거 대세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성장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인간은 요리하는 데서 놀이의 즐거움을 얻는다는 확신이 생겨났고, 또한 이런 기쁨이 타인과 공유될 때 확장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에서 백만 년 전의 요리(이를 테면 유인원이 불에 구운 고기. 이것은 현대의 그릴한 고기와 완전히 동일하며 열원(장작이나 숯 등)조차 백만 년을 초월하여 같다!)가 재현되는 것을 우리는 동시대에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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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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