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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토리아 : 휴식할 권리

『올리버 트위스트』는 여러 각도로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당시 영국에 만연하던 아동 노동

박찬일

2017-08-24

휴식할 권리

 

『올리버 트위스트』는 여러 각도로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당시 영국에 만연하던 아동 노동이나 노동 강도에 대한 끔찍한 고발로도 읽힌다. 근래 읽은 책은 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끔찍한 옛 영국의 노동현장을 그리고 있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과 『위건 부두 가는 길』이었다. 휴무도 거의 없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며, 그것조차 실업(失業)으로 이어갈 수 없는 노동자의 처지를 그는 냉정한 필치로 기록했다. 이런 글은 읽는 동안 고통에 시달린다.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자세로 탄광을 걸어가는 광원의 마음 —『위건 부두 가는 길』은 오웰이 탄광지대를 방문하고 겪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처럼 되고 만다. 최근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관한 기록들을 보고 하는데, 전투물자인 망간 광산에서 있었던 노동 착취(그것은 영화 군함도가 보여주는 현실과 흡사하다)를 고발하는 글에서 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하나 더하자면, 냉면을 취재하러 일본 북부 모리오카(盛岡)라는 소도시를 취재했을 때의 여담이다. 그 도시는 특이하게도 조선(한국)의 냉면이 도시 최고 인기 외식인 점이 신기하여 취재를 갔던 것인데, 역시 강제징용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었다. 모리오카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 2만 명 가까운 조선인이 강제 징용되어 탄광, 철광석 광에서 일했던 것이다. 그들이 나중에 냉면을 사 먹는 주 소비층이 되었다.

 

책표지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 『동물농장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조지오웰 / 『위건 부두 가는 길』 조지오웰

▲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 『동물농장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조지오웰 / 『위건 부두 가는 길』 조지오웰

 

노동은 휴식함으로써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모든 노동은 휴식을 조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휴식과 오락을 포함한다는 것은 노동이 신성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근대의 노동 개념은 24시간의 삼분할로 오랫동안 설명되었다. 하루 24시간의 3분의 1은 일하고, 또 3분의 1은 쉬며, 나머지는 즐기거나 일상을 이어간다는 것이 온당하다는 분할이었다. 그리고 북유럽 여러 나라들과 선진적 노동 개념을 만들어낸 이들에 의해 노동 시간을 더 줄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것이 세계적 추세다. 물론 여전히 그런 혜택조차 누릴 수 없거나, 그런 휴무를 받더라도 의미 없는 저임금 노동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도 주5일 근무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 노동 시간을 더 줄여서 일자리를 만들자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주장에 의하면 우리 노동은 주당 34시간까지 줄어들 수 있겠다. 어쨌든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맞는 듯하다.

 

플레이팅을 하고 있는 요리사

▲ 플레이팅을 하고 있는 요리사

 

헌데 이런 변화가 거의 수용되지 않는 업종도 있다. 노동조합 결성률 내지는 가입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요리 업종이다. 요리사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경우가 불과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대형사업장 구내식당에서 근무하는 요리사들이 있지만 이들은 대다수 이미 아웃소싱된 상태다. 보통 5인 미만의 초소형 업장이 대다수이고, 요리사 스스로 노동자라는 각성도 거의 갖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낮은 노동조합 가입률은 노동시간이 길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더 적은 노동시간과 더 많은 임금을 위해 싸워온 노동조합의 역사를 봐도 당연히 짐작된다. 주5일은 여전히 배제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요식업의 무한 경쟁 등을 감안하면 휴식 없는 노동으로 내몰리는 게 너무도 흔하다. 이런 것은 특이하게도 노동시간을 지속적으로 줄여온 유럽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고급 요식업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이는 ‘스타주(Stage)’라는 요식업계 특유의 노동 관습 때문이다. 고급 식당은 무보수 노동을 뜻하는 스타주 지망자들이 늘 넘쳐서 심지어 1, 2년씩 대기해야 기회를 얻는 일도 다반사다. 물론 그들과 함께 일하는 정규 요리사들(홀 직원도 비슷한 조건이다)도 보통 하루 14시간 정도의 노동을 감내한다. 심하면 하루 16시간도 치러내고, 그것을 훈장처럼 여기기도 한다. 국내에 있는 다수의 고급 식당들(이른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도 법규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은 물론이다. 노동시간과 노동일(주 5일을 넘는)에서 법규를 지키지 못 하고(또는 안 하고) 있다.

 

밤중에도 일하고 있는 음식점 주방

▲ 밤중에도 일하고 있는 음식점 주방

 

예전 선배들의 회고담은 더욱 가혹하다. 우리가 기억하듯 식당들은 흔히 격주 휴무로 지냈다. 그것도 정부가 75년도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 강제적으로 가게의 정기 휴무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또는 추석과 설날을 제외한 모든 날(!) 일하는 것도 흔했다. 보통 영세한 작은 식당들은 지금도 그런 경우가 많다. 주로 사업주, 즉 사장들이 그런 노동 상태에 놓여 있다. 직원들은 쉬게 하면서 본인은 셀프 노동착취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인터뷰한 다수의 식당 주인들은 하루 열 시간 넘게 가게를 지키면서 끊임없이 일했다(어떤 때는 하루 16시간 이상을 일했는데, 가게에서 먹고 자면서 이루어지는 장시간의 고강도 노동을 치른다). 휴식시간도 거의 없어서 밥 먹는 시간이 유일하게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일이 가게 이름을 적을 수는 없지만 대개 비슷한 처지다. 주인이 쉬려면 직원을 더 고용해야 하는데, 채산성이 떨어지는 영세 식당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자신이 사업주이므로 스스로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는 인식도 없다. 그들도 실은 모두 노동자이며 휴식과 복지를 부여 받아야 하는 대한민국 시민인데도 말이다.

 

요식 업종은 사실 남의 휴식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바치는 구조다. 남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 내가 헌신한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그러나 대개는 일정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해서 그 일 자체의 신성함을 좀먹고 있다. 얼마 전 한 시외버스 기사가 졸다가 도로에서 참사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는 2교대로 하루 18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그 문제가 지금 특정 직업의 연속노동 금지와 관련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기도 하다. 그도 타인의 안락을 위해 자신은 보호받지 못하는 직종의 사람이었다. 그들의 서비스를 받아서 안락과 휴식을 즐기는 또 다른 노동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조건이 아닌가.

 

“우리는 휴식할 권리를 가졌다.”
그것은 노동 이전의 전제가 아닐까 싶다. "인간은 쉬는 동물이다" 라고 먼저 말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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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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